코카서스(캅카스) 산맥 남쪽에 자리 잡은 조지아(옛 그루지야)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동유럽의 스위스’라 할 수 있다. 코카서스의 설산이 알프스의 설산처럼 병풍을 두르고 있고 언덕에는 소떼가 풀을 뜯고 있고 계곡이 힘차게 흐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위스 사람들도 조지아에 여행을 많이 온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이렇다. 알프스 풍경에서 포토샵으로 케이블카와 호텔 등 인위적인 것들을 지우고 나면 코카서스의 풍경이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은 조지아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한다.
위치상으로는 터키의 동쪽, 이란의 북쪽에 위치하지만 조지아는 동유럽의 한 국가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묶이는데, 인종적으로 백인에 가깝고 종교도 기독교 일파인 조지아정교다. 조지아에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풍부한 와인이 있고,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음식이 있고 스페인처럼 정렬적인 춤과 음악이 있다. 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여행지’로 처음 꼽히는 곳이 바로 조지아다.
조지아는 러시아의 문호들이 앞 다퉈 칭송했던 곳이기도 하다. 막심 고리키는 조지아의 철도 기지창의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고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그곳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말했다. 조지아는 막대한 부채를 지고 도망 온 톨스토이가 주둔군으로 복무했던 곳으로 나중에 이곳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장기간 조지아를 여행했던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 음식은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조지아 여행은 특히 입이 호강하는 여행이다. 조지아의 음식과 와인은 정평이 나있다. 비유하자면 조지아 음식은 ‘러시아의 전라도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해외 러시아 음식점의 메뉴 중 많은 부분이 조지아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스크바에 출장 갔을 때 가장 애용하는 음식점도 조지아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아에서 가장 자주 먹게되는 음식은 '므츠바디(Mtsvadi)'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작은 덩어리로 잘라 소금, 후추, 와인 등에 재워 샴푸리라는 쇠꼬챙이에 꽂아 굽는 바비큐 요리인데 '러시아식 샤슬릭'과 비슷하다. 이웃 아르메니아도 많이 먹는데 방식이 약간 다르다. 조지아는 주로 살코기를 쓰고 아르메니아는 비계를 되도록 같이 쓴다.
와인은 조지아의 자존심이다. 와인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을 정말 사랑한다. 와인 인심이 정말 후하다. 잔치를 준비할 때 예상 인원에 곱하기 26을 한다. 즉 한 사람당 26잔을 돌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기쁜 날은 26잔을 준비하고 장례식과 같은 슬픈 날은 18잔을 준비한다. 전통 방식은 뿔잔에 마시는 것인데 뿔잔은 세워둘 수가 없어서 받으면 ‘원샷’을 해야 한다. 마트에 가보면 와인을 4~5리터 PET 통에 담아서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인이 조지아의 자존심이었기에 외적들은 조지안들의 자존심을 짓밟기 위해 포도밭을 파괴하곤 했다. 그들에게 포도나무는 단순한 식물 이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조지아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전쟁에 징발되었는데 그때 포도나무 가지를 가지고 갔다 한다. 그리고 포탄이나 총에 맞아 죽어갈 때 자신이 쓰러진 그 자리에 포도나무 가지를 심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 맛있는 음식과 와인, 여기에 조지아의 매력을 하나 더 꼽으라면 조지아정교를 꼽을 수 있다. 이슬람교 국가들 사이에서 박해받으면서도 기독교를 지켜왔기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지아정교의 성당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성당 내부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기단과 기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제와 신도가 같이 서서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고 예배하고, 비신도인 관광객들은 조용히 둘러보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학습하는 등 하나의 사회가 구현되었다. 조그만 성당 안이 하나의 우주가 된 셈이다.
숱한 외침을 받았지만 조지아인들은 외지인에 대해서 호의적인 편이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았던 마야 씨는 “조지아에 관광객은 없다. 오직 적과 손님이 있을 뿐이다. 당신 손에 무기가 아니라 와인잔이 들려있다면 당신은 우리의 손님이다"라고 말했다. 구소련의 일원으로 오랫동안 사회주의를 경험해서 그런지 노인들의 인상은 좀 무뚝뚝한 편이지만 말을 걸어보면 바로 미소를 보낸다.
조지아에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경찰서와 경찰관이다. 예전에는 구태와 부패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투명성과 현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강력한 경찰개혁 덕분이다. 전임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부패한 경찰을 완벽하게 해체한 후 새로 경찰을 채용해 재구성했다.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조지아 경찰은 새로 태어났다. 경찰서는 투명 유리로 통창을 내서 내부가 보이도록 지었고 경찰관의 급료는 샐러리맨의 몇 배를 주어 부패에 노출되지 않게 했다. 덕분에 경찰관이 조지아 여성들에게 신랑감 1위가 되었다.
국민소득이 높지는 않지만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관광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학생에게 넷북을 지급했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고 노령연금도 지급한다. 쿠바처럼 의료체계도 좋은 편이다. 의대가 유명해서 인근 국가에서 유학도 많이 오는 편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여서 여행객이 기댈 마음의 여유가 있다.
구소련 국가지만 조지아는 최근에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임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친미 외교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사업가들의 투자를 많이 이끌어냈다. 조지아 젊은이들도 미국 문화를 선호한다. 구소련 시대를 경험했던 노인들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지만 젊은 사람들은 러시아어가 프랑스어나 독일어보다도 선호도에서 밀린다. 러시아 끼릴문자도 거의 볼 수 없다.
조지아는 관광지가 갖춰야 할 여러 요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그래서 오감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조지아 여행은 길면 길수록 좋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조지아를 둘러보아야 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꼭 들러야 할 곳을 꼽아본다. 트빌리시, 시그나기, 보르조미, 카즈베기, 이 네 곳이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는 역사가 깊은 곳이고, 성곽도시 시그나기는 낭만적인 곳이고, 보르조미는 숲과 계곡이 좋은 곳이고, 카즈베기는 설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두루 만족감을 준다.
카즈베기 산이 있는 북동부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조지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다. 만약 조지아에 왔다 가면서 카즈베기산에 와보지 않으면 조지아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조지아인들은 ‘유럽의 기원은 조지아다’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 조지아에서 발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천이 코카서스라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카프카스라고도 하는 코카서스는 여러 신화의 배경인데, 카즈베기산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산이다.
카즈베기로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 바로 트빌리시 전에 조지아의 수도였던 므츠케타다.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조지아정교의 중심이다. 조지아를 관통하는 두 주요 강의 합수 지점에 스베티스코밸리 교회가 있는데 조지아정교의 역사가 집대성된 곳이다. 외적이 침입할 때 조지아인들이 마지막까지 지켰던 곳이 이 교회로 교회 안에는 강으로 탈출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므츠케타 교회에서 올려다보면 즈바리(Zvari) 수도원이 있는데 이곳 역시 조지아정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처음 포도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가져와서 만든 교회로 종교를 철폐하려는 소비에트의 명령을 어기고 아 수도원을 재건했던 건축가가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기도 했다. 주로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서는 므츠케타를 지나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즈바리패스를 넘게 된다. 빙하 녹은 물이 눈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카프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 이름)를 점령하라’는 의미로 ‘블라디카프카스'를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세운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을 넘는 ‘밀리터리 하이웨이'라는 군사도로를 냈다. 이 길이 지금 산업도로와 관광도로로 쓰인다. ‘밀리타리 하이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흑해로 옮기는 송유관을 볼 수 있다. 산유국을 옆 나라에 둔 덕분에 조지아는 석유와 전기를 싼 값에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도시가스가 산골짜기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에너지 상황이 좋다.
카즈베기는 풍광이 압도적이다. 평범한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도 작품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나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꼽는 곳이 바로 카즈베기다. 카즈베기산이 있는 자바케티 지역은 알프스 마테호른산 밑의 체르마트 마을을 연상시킨다.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디자인호텔로 유명한 룸스호텔이 있다. 카즈베기산 반대편 언덕에 자리 잡아 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절이 들어설만한 곳에 만들어진 호텔인데 전망이 일품이다. 디자인호텔에 등록될 정도로 세련된 호텔이지만 1박 가격이 13만원~15만원 정도로 시설에 비해서는 저렴했는데, 인기가 많아지면서 숙박료가 올랐다.
해발 5047m 카즈베기산은 평범한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올라야 할 곳이 있다. 게르게티 언덕에 있는 성삼일치 교회다. 해발고도가 2천 미터가 넘는 이 교회는 전쟁이 났을 때 조지아정교의 성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조지아인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처음 장소를 정할 때 ‘독수리가 고기를 묻어 두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지아정교의 경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게르게티 언덕에서 찍은 사진이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 줄 것이다. 발아래 구름을 두고 아련한 설산을 배경으로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되고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누가 찍어도, 누구를 찍어도, 어디를 찍어도, 언제 찍어도, 예술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사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