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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9. 2021

24시간 불이 켜진 고대도시 여행법

여행감독의 명품 해외여행 큐레이션 - 조지아 제2편


올드 트빌리시 지역의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우리로 치면 '북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조지아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트빌리시를 관통하는 므크바리(Mtkvari) 강의 남쪽 지역이 올드 트빌리시인데 반대쪽 강북 지역이 요즘 핫플로 부상하고 있다. 


올드 트빌리시에 살고 있는 조지아 관광청 담당자에게 강북 쪽이 좀더 화려하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트빌리시에는 두 개의 구역이 있다. 올드 트빌리시와 ‘그 밖의 사람들이 사는 구역(the others)'으로 나뉜다." 권력자나 종교 지도자 등 모든 결정권자가 올드트빌리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교회부터 가장 중요한 교회까지 중요한 시설들이 올드 트빌리시에 몰려 있어서 걸어 다니며 두루 볼 수 있다. 산책하듯 둘러보면 된다. 강과 언덕을 따라서 걸으면 되기 때문에 길도 헷갈리지 않는다. 언덕길부터 걷고 나중에 강가에 이르렀을 때는 유유히 흐르는 므크바리 강을 보면서 쉬면 된다. 



트빌리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다. 공존은 건축을 통해 나타난다. 미래의 후손들과 겨루는 첨단 건물이 곳곳에 성채처럼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지금의 불경기를 말해주는,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반창고처럼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오래된 성벽이 가로지른다. 이 공존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을 보여준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오래된 건물들의 발코니를 감상하면서 걸으면 조지아 관광이 시작된다.


조지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지아정교의 교회다. 가장 '조지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지아는 페르시아(이란) 오스만투르크(터키) 제정러시아(러시아)에 둘러싸인 나라다. 중국과 일본에 숱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있는 기독교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강한 세력이 나오면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 조지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한 것은 바로 조지아정교였다. 조지아인들은 조지아를 구성하는 세 가지로 조지아정교와 조지아어 그리고 와인을 꼽는다. 페르시아 몽골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등 당대의 강대국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교회를 둘러싼 성 위에서 맞이했다. 코카서스 산맥 깊숙이 피난을 가면서 먹을 것 대신 교회의 성물을 챙겼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압박도 이겨낸 조지아정교는 이제 마지막 외세인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정교의 특징은 관용이다. 모든 종교는 비신도와 신도를 구분하고 신도와 사제를 공간적으로 혹은 역할적으로 구분해서 엄숙함을 구현한다. 그런데 조지아정교는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충분히 엄숙하고 경건했다. 이것이 유럽의 어떤 오래된 성당보다도 혹은 이스탄불의 어떤 화려한 모스크보다도 조지아정교 성당이 가슴에 더 깊숙이 박히는 이유였다. 종교적 관용은 성당 밖으로도 확대된다. 이렇게 어렵게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에 관대하다. 조지아인의 83% 정도가 조지아정교를 믿고, 10%는 이슬람교, 2%는 아르메니안정교, 그 외 가톨릭과 신교, 유대교 등을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관용적인 자세가 타 종교로도 전이된다는 점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는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함께 이용하는 모스크가 있다. 한쪽은 시아파가, 다른 한쪽은 수니파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에 3곳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유대교 역시 다른 종파가 하나의 교회를 사용한다. 조지아에는 다른 종교 혹은 다른 교단에 대해 관대한 태도가 자리 잡혀 있다.


트빌리시 구도심 산책은 메테키 다리를 건너 므크바리(Mtkvari) 강 언덕에 있는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에서 얼추 마무리된다. 무려 37번이나 다시 지어진 이 교회는 조지아정교 수난의 상징이다. 구소련 시절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교회 옆에는 트빌리시를 세운 박탕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이 구도심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메테키 다리를 다서 건너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Narikala) 요새에 올라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다. 요새에서 내려오면 폭포로 가는 협곡이 있다. 폭포는 크지 않지만 협곡 위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이 볼거리다. 협곡 입구에는 벽돌무덤 단지처럼 생긴 유황 온천 지대가 있다. 가족 욕실도 있어서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구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트빌리시 벼룩시장도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진귀한 골동품들이 많고 구소련 물품들이 많아서 물건을 고르는 재미가 유별나다. 


올드트빌리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현대화를 많이 느낄 수 있다. 문화의 혼합에 익숙한 조지아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이 더해진 것을 설명할 때 조지아인들은 ‘재즈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재즈의 합주처럼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24시간 마트 약국 패트스푸드가 있다. 심지어 은행도 24시간 연다. 현금지급기만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원이 근무를 한다(카지노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빌리시에서는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대부분 비번을 걸어두지 않는다). 



트빌리시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전통음식을 먹으면서 전통춤과 전통음악 연주를 관람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므크바리 강을 따라서 이런 곳이 50여 곳이나 있다. 조지아 전통춤은 마치 탭댄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경쾌하고 스페인 플라멩코처럼 정렬적이다. 전통음악(Polyphony)은 안데스산맥의 노래들처럼 멜로디가 신비로운데 그중에는 우리의 아리랑과 후렴구가 비슷한 노래도 있다.


트빌리시는 야간관광하기에도 좋은 도시다. 조지아의 치안이 좋은 편이기 때문인데, 이유가 있다. 이전까지 조지아 경찰은 부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이 대대적인 경찰개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무늬만 해경 해체’가 아니라 정말 경찰을 해체해 버렸다. 기존 경찰 조직을 전부 해체하고 새로 경찰을 뽑아서 조직을 재구성했다. 경찰서도 가장 화려한 건물로 새로 짓고 유리로 외벽을 지어 투명한 경찰임을 강조했다. 급료도 비약적으로 높여주었다. 이제 조지아에서는 경찰이 ‘신랑감 1위’로 꼽힌다. 조지아 경찰은 대체로 친절하고 영어도 잘해서 의사소통도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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