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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20. 2021

러시아 황제의 휴양지에서 마시는 코카서스의 에비앙

여행감독의 명품 해외여행 큐레이션, 조지아 제3편

조지아여행의 시그니처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카즈베기산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카즈베기산은 히말라야와 알프스에서 느낄 수 있는 신령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신화의 중심지에 있는 교회에서 보는 풍경 또한 선계다. 세계적인 디자인호텔로 꼽히는 룸스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카즈베기산을 조망하는 것은 조지아여행의 방점이다. 


 

알프스에 에비앙이 있다면 코카서스에는 보르조미가 있다. 보르조미 생수는 조지아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다. 보르조미 생수가 나오는 남코카서스 보르조미 지역은 제정러시아 시절 황실의 휴양지이기도 했다. 우렁찬 계곡을 따라 시원한 산책로가 나있다. 산도 좋고 물도 좋은 이곳을 러시아 황실이 휴양지로 택한 이유는 온천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산은 추운데 물은 따뜻해 침엽수와 활엽수가 교차하는 숲이 형성되어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조지아 아이들이 천식을 앓으면 부모들이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한다.


보르조미를 가는 길에 잠깐 들를 도시가 있다. 스탈린의 고향 고리시다. 독재자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었다. 이 스탈린에 대한 조지아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나이 든 세대는 우리의 ‘박정희 향수’처럼 스탈린 향수가 있다. 중공업 육성정책으로 조지아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스탈린과 소비에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스탈린을 싫어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 청년들을 징발해서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인 70만 명 정도가 징집되어 그중 35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스탈린 집권 기간 동안 희생당한 조지아인이 5만 여 명이고 시베리아 등에 유형을 당한 사람도 15만 명에 이른다.


스탈린은 조지아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조지아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스탈린에 대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반러 감정으로 이어졌다. 조지아 청년들 중에는 외국어로 러시아어를 하는 경우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나 독일어보다 적다고 한다. 하지만 조지아는 스탈린 시대의 흔적도 강해서 고리시의 스탈린 기념관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보르조미 가는 길에는 전형적인 조지아 농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농촌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은데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환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조지아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는데 은퇴한 노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조지아의 노인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소비에트연방시절의 영향이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면 더없이 친절하다. 조지아 젊은이들도 정이 많다.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정이 많은 백인의 모습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조지아인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내가 있다’라는 교육을 받는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남이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 혹은 친구이므로 나와도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조지아인들은 외지인들에게 대체로 호의적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조지아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조지아 역시 한류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한류 팬인 조지아인을 만날 수 있었다. 카즈베기에서 묵었던 룸스호텔의 매니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의 팬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스스로 한국어를 공부해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가이드 마야 씨의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 〈주몽〉의 팬이었다. 



보르조미 계곡은 조지아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많다. 보르조미 고지대에는 스키 리조트도 있는데 이곳 역시 주로 어린이들 스키캠프가 진행되는 저렴한 리조트다. 스키리조트로 올라가는 협궤열차도 볼거리다. 조지아를 가족여행으로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이곳에서는 계곡 트레킹을 꼭 해봐야 한다. 계곡은 물살이 거세서 수영을 하기에는 위험하다. 하지만 수영을 할 수는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온천 주변에서 캠핑도 할 수 있다. 계곡 옆에서 캠핑을 즐기고 온천에서 목욕을 한 다음 돼지고기 꼬치구이 므쯔바리를 만들어 먹는 조지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카즈베기 산이 있는 북동부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조지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다. 만약 조지아에 왔다 가면서 카즈베기산에 와보지 않으면 조지아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조지아인들은 ‘유럽의 기원은 조지아다’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 조지아에서 발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천이 코카서스라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카프카스라고도 하는 코카서스는 여러 신화의 배경인데, 카즈베기산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산이다.


카즈베기로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 바로 트빌리시 전에 조지아의 수도였던 므츠케타다.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조지아정교의 중심이다. 조지아를 관통하는 두 주요 강의 합수 지점에 스베티스코밸리 교회가 있는데 조지아정교의 역사가 집대성된 곳이다. 외적이 침입할 때 조지아인들이 마지막까지 지켰던 곳이 이 교회로 교회 안에는 강으로 탈출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므츠케타 교회에서 올려다보면 즈바리(Zvari) 수도원이 있는데 이곳 역시 조지아정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처음 포도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가져와서 만든 교회로 종교를 철폐하려는 소비에트의 명령을 어기고 아 수도원을 재건했던 건축가가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기도 했다. 주로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서는 므츠케타를 지나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즈바리패스를 넘게 된다. 빙하 녹은 물이 눈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카프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 이름)를 점령하라’는 의미로 ‘블라디카프카스'를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세운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을 넘는 ‘밀리터리 하이웨이'라는 군사도로를 냈다. 이 길이 지금 산업도로와 관광도로로 쓰인다. ‘밀리타리 하이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흑해로 옮기는 송유관을 볼 수 있다. 산유국을 옆 나라에 둔 덕분에 조지아는 석유와 전기를 싼 값에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도시가스가 산골짜기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에너지 상황이 좋다.


카즈베기는 풍광이 압도적이다. 평범한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도 작품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나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꼽는 곳이 바로 카즈베기다. 카즈베기산이 있는 자바케티 지역은 알프스 마테호른산 밑의 체르마트 마을을 연상시킨다.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디자인호텔로 유명한 룸스호텔이 있다. 카즈베기산 반대편 언덕에 자리 잡아 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절이 들어설만한 곳에 만들어진 호텔인데 전망이 일품이다. 디자인호텔에 등록될 정도로 세련된 호텔이지만 1박 가격이 13만원~15만원 정도로 시설에 비해서는 저렴했는데, 인기가 많아지면서 숙박료가 올랐다.


해발 5047m 카즈베기산은 평범한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올라야 할 곳이 있다. 게르게티 언덕에 있는 성삼일치 교회다. 해발고도가 2천 미터가 넘는 이 교회는 전쟁이 났을 때 조지아정교의 성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조지아인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처음 장소를 정할 때 ‘독수리가 고기를 묻어 두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지아정교의 경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게르게티 언덕에서 찍은 사진이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 줄 것이다. 발아래 구름을 두고 아련한 설산을 배경으로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되고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누가 찍어도, 누구를 찍어도, 어디를 찍어도, 언제 찍어도, 예술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사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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