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May 22. 2021

기차를 활용한 '스위스 그랜드 투어'

도로 여행이 바둑판이라면, 기차 여행은 장기판


도로가 바둑판이라면 선로는 장기판이다. 도로는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선로는 시간과 목적지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차의 단점이면서 장점이기도 하다. 효율을 기하기 위해 최적의 루트를 구축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차여행의 묘미다. 스위스 그랜드 트레인 투어는 그런 기차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이다.



스위스 기차 여행에서 이용할만한 라인을 몇 개 꼽아본다. 일단 취리히 루체른 몽트뢰를 잇는 골든패스 라인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적인 스위스의 풍경을 두루 볼 수 있는 라인이다. 다음은 몽트뢰에서 브베 리바즈 등 라보지역을 지나는 루트다. 레만 호수의 풍경과 호수를 둘러싼 고산 풍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라보 케이블트레인을 타고 돌담으로 축대를 쌓아 만든 계산식 포도밭을 둘러볼 수도 있다.



인터라켄 익스프레스나 체르마트와 생모리츠를 잇는 빙하 특급(Glacier Express)과 같은 고속열차는 탁 트인 지붕이 있어 설산 풍경을 보면서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알프스의 산은 히말라야 산보다 고도가 낮지만 기차가 산 바로 아래를 지나기 때문에 히말라야 못지않게 웅장하다. 마치 거인들 옆을 소인이 되어 지나는 느낌이다.


 

달리면서 풍경은 볼 수 없지만 산악 터널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뢰치베르크 베이스 터널(34.6km)을 지나 체르마트에 갔는데 인상적이었다. 총연장 57.1km인 고타드 베이스 터널에 이어 지난해 15.4km의 체네리 베이스 터널이 완공되어 NEAT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스위스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장 인공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율배반을 즐길 수 있다.



스위스는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한국인이 유럽 관광을 갈 때 세 번째로 많이 찾는 나라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스위스는 ‘거쳐서 가는 나라’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스위스를 보는 것은 ‘효율적’ 일지는 모르지만 ‘효과적’이지는 않다. 독일인의 정밀함과 프랑스인의 예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탈리아인의 여유를 두루 맛볼 수 있다.



기차 여행을 통해 들를 수 있는 곳 중 라보 지역은 스위스인의 자연 극복 정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레만 호수 주변의 포도밭은 중세 수도사들이 수 세기에 걸쳐 가파른 언덕에 돌담으로 축대를 쌓아 포도밭을 일구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약 40계단의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밑에서 보면 마치 요새 같다. 직접 받는 태양열 외에도 낮에는 레만 호수에 반사된 태양열을 받고 밤에는 돌담이 품은 열기를 받아 포도의  당도를 높인다고 광고한다.



산악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베트머알프 등 리더알프 지역에서는 알레츠 빙하를 따라 내려오는 빙하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눈이 아직 남아 있는 4~5월 넓은 스노슈즈를 신고 눈 위를 걸어 빙하를 따라 내려올 수 있고, 눈이 녹은 여름철에는 빙하를 종단할 수도 있다. 녹이면 전 세계 사람들을 몇 년간 먹일 수 있는 물이 나온다는 광활한 빙하를 내려다보며 걷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빙하 트레킹은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생긴 균열)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 협약을 맺은 체르마트도 트레일 명소로 빙하특급을 타고 갈 수 있다. 체르마트는 모든 운송수단을 전기로 움직이는 생태마을로, 마을 자체가 구경거리다.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에 나오는 마터호른 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데, 여성스러운 융프라우를 보기 위해 인터라켄에서 관광객에게 치이는 것보다는 체르마트에서 강인한 남성 같은 마터호른을 보며 휴양하는 편이 훨씬 낫다.



고타드 베이스 터널을 지나면 스위스에서 유일한 이탈리아어 권역인 티치노 지역에 갈 수 있다. 음식 맛이 좋고 인심이 후하면서 지역 차별을 당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라도와 닮은 지역인데, 프리 알프스 지역(알프스 근교)이어서 산세가 험하지 않아 부담이 없다. 동양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산수화 속 자연을 닮은 산과 계곡이 있고 멀리 만년설에 덮인 알프스 고봉이 두루 보여 최고의 경관을 선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라카 기행 2편,  이슬람의 개방성을 체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