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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31. 2021

'악연의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을 왜 기획했나

다크투어리즘 아이템으로 기획했던 '메이지유신 기행'(2015)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의 현장을 찾아 성찰의 계기로 삼는 관광을 뜻한다. 일본 규슈는 다크 투어리즘과 관련해 주목받는 곳이다. 한국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기에 맞춤한 여행지다. 규슈 출신 중에 통감부, 조선총독부, 조선 주둔군사령부 책임자로 있으면서 우리와 악연을 맺은 인물이 많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범들도 이곳 출신이다. 그런 '악연의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을 주강현 전 국립해양박물관장님과 기획한 적이 있다.  


장면 하나. 영상물을 보며 한국의 여행담당 기자들에게 나가사키 현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던 스즈키 시로 나가사키 현 한국사무소장이 군함을 닮은 섬이 나오자 갑자기 얼버무린다. “아 저기는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홍보하지 않는 곳입니다. 한·일 간의 불편한 과거사가 얽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영상 속 섬은 하시마(군함도). 아베 일본 총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해서 이슈가 된 바로 그 ‘지옥섬’이다. 일본 미쓰비시가 운영하던 이 섬 탄광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120여 명이 사망했다(영화 <군함도>의 실제 배경이 되는 섬이다).



장면 둘. ‘가미카제 마을’로 알려진 일본 지란 마을 평화공원에서 서울대 사회대 교수 40여 명을 앞에 두고 전남대 이영진 교수(HK연구교수)가 일본 영화 〈호타루〉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미쓰야마 후미히로(본명 탁경현)는 천황 폐하나 대일본제국이 아니라 조선 민족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출격한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출격 전야에 아리랑을 구슬프게 불렀습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는 그 외에도 일본을 위해 죽어야 했던 조선 청년이 많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헛된 죽음을 되새기려는 노력이 우리보다 일본에서 더 많았습니다.” 이 교수는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지란 마을을 찾는 일본인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장면 셋.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가 서울대 인문대의 AFP(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를 수강하는 CEO 36명과 함께 옛 조슈 번의 중심 도시였던 하기 시의 쇼카손주쿠 학숙을 찾았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조그만 시골 학숙에서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인공들을 길러낸 스승 요시다 쇼인은 불과 서른 살에 생을 마감한 백면서생이었습니다. 조선은 이 시골 무사들에게 멸망했습니다.” 이 여행에는 근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전 역사학회 회장, 전 국사편찬위원장)도 동행했다.


장면 넷. 안식년을 맞아 일본 규슈 세이난가쿠인 대학에 온 경성대 박훈하 교수가 후쿠오카 시 사와라 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서성였다.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던 곳이다(지금은 후쿠오카 구치소만 남아 있다). 박 교수는 윤 시인을 생각하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박 교수는 규슈에 있는 동안 곳곳을 돌며 대다수 한국인이 관광지로만 알고 있는 곳에서 역사의 그늘을 들여다보았다. 



이처럼 여행을 하며 불편한 역사의 진실을 응시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전쟁과 재해 등 비극의 현장을 찾아 추모와 성찰의 계기로 삼는 관광)’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다크 투어리즘이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4·3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제주도 4·3평화공원,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수감되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그리고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대패했던 칠천량해전을 기억하자는 거제시 칠천량해전공원이 다크 투어리즘의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다크 투어리즘과 관련해 요즘 가장 주목받는 곳은 일본 규슈이다. 이곳에 메이지유신의 토대가 된 삿초 동맹의 두 축 중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 현, 다른 한 축인 조슈 번/야마구치 현은 혼슈에 속함),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리는 지란 마을,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희생된 하시마(군함도),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곳이었지만 임진왜란의 전초기지가 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곳이었지만 ‘정한론’ 등 제국주의 의식이 싹튼 곳이다. 



조슈 번의 중심도시였던 야마구치 현 하기는 우리와 악연이 깊다. 한·일합병의 주역인 조선 공사(이노우에 가오루·미우라 고로), 통감(이토 히로부미·소네 아라스케), 주차군사령관(야마가타 아리토모·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은 물론, 내각총리(가쓰라 다로) 등이 모두 이곳의 쇼카손주쿠 학숙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기에서는 5명의 일본 총리가 나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기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한국 여행자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방문자가 늘면서 한국어 안내 책자까지 구비해놓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일본의 근대화도 그 시작은 미미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가 조금만 깨어 있었더라면 나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하기 못지않게 악연인 나가사키 현 하시마(군함도)에는 한국 관광객이 여전히 드물다. 일본 전문여행사 엔타비의 김윤중 대표는 “단언하건대 한국인 대상 관광 상품 가운데 하시마(군함도)가 포함된 것은 없다. 비싸기도 하지만 괜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학술연구차 하시마에 다녀온 이영진 교수(전남대)는 “군함도에 가는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군함도에 들어가 조선인 위령탑을 찾아보는 한국인 관광객은 더더욱 없다. 조선인 위령탑은 옆 섬에 따로 만들어져 있어 배를 빌려 타고 다녀와야 한다. 수고스럽지만 보고 오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나가사키는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곳이다. 일본은 네덜란드인이 교역할 수 있도록 데지마를 무역항으로 내주었다. 처음 교역 파트너는 포르투갈이었지만 기독교 포교를 적극적으로 하자 이들 대신 네덜란드를 선택했다. 이후 네덜란드인으로부터 받아들인 ‘난학’이 일본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나가사키 현의 시마바라 반도에서는 우리의 동학운동과 비슷한 농민 반란이 일어났는데, 주축은 아마쿠사 시로 등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기독교 탄압이 강해졌다.


서양문물의 수입과 관련해 또 주목할 곳은 생태관광지로 손꼽히는 다네가시마다. 이곳 주민들이 표류한 남만국 장사꾼의 배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인으로부터 철포(조총)를 입수한 것이 1543년의 일이다. 이후 이곳은 일본 철포를 제작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철포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반면 우리는 표류한 외국인들을 그저 신기한 사람으로 대했을 뿐이다. 이 다네가시마는 현재 일본의 우주 진출을 위한 우주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곳 가운데 한 번쯤은 둘러볼 곳이 몇 군데 있다. 사가 현의 가라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출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였던 ‘히젠 나고야 성’이 있던 곳이다. 성터에 있는 ‘나고야 성 박물관’은 드물게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북선 모형과 이순신 장군 영정까지 전시한 이 박물관은 임진왜란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하고 한·일합병이 ‘불평등조약’이라고 설명한다.


구마모토 현의 구마모토 성은 일본의 3대 성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 성을 축조한 사람이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일본군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다.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성을 참고해서 구마모토 성을 축성했는데 이때 조선의 기술자를 다수 동원했다(성 근처에 울산마을이 있다). 성벽 하단의 곡면은 적이 타고 올라오기 힘든 구조로 울산성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나가사키 현과 함께 규슈의 인기 관광지인 가고시마 현은 시마즈 가문이 통치하던 사쓰마 번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 붙들려간 조선 사기장들은 도자 기술을 발전시켜 사쓰마 자기를 만들어냈다. 유럽인들이 중국 자기 대신 수입해간 사쓰마 자기는 중국 자기의 문양에 일본의 고유한 색감을 입히고 유럽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고급화를 도모했는데 이 도자기를 수출한 돈이 메이지유신의 혁명자금으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부흥하고 제국주의로 변질하는 과정을 둘러본 답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너무 늦게 왔다’는 것이다. 서울대 CEO 인문학 과정 답사여행 팀에 참여한 은종환 전 에코시안 대표는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너무나 무관심하게 대해왔다.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근대화일 것이다. 일본 근대화의 현장은 또한 조선 패망사의 현장이다. 일본의 여행지 가운데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CEO 인문학 답사여행을 기획하고 일본 우익 세력이 제국주의자로 변질되는 과정을 담은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를 쓰기도 한 이광훈 대표는 “역사학자 베링턴 무어는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설명은 왜 다른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전제한다’고 했다. ‘일본이 왜 흥했는가’를 보려고 하는 건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스타트업 기업가들도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시골 무사들에 주목한다. 그들이 달걀로 바위 치기를 시도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목숨 걸고 한다’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을 더 채찍질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역사의 단추를 제대로 끼우기 위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주강현 전 국립해양박물관장이다. 2005년 펴낸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의 서문에서 그는 “아키히토 일왕이 태평양전쟁 전몰자 위령을 위해 사이판을 방문하고, 일본 극우파가 ‘야스쿠니 신사 20만 참배 운동’을 하고, 자위군 보유를 명기한 자민당의 수정헌법 초안이 발표되고, 새역모(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역사 왜곡을 주도하는 등 극우 제국주의 세력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신왜구(新倭寇)’를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가 이 서문을 썼던 때보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이제 일본 우익은 우경화를 넘어서 혐한을 부추길 만큼 파렴치해졌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응시하지 못하고 불편한 과거와 만나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은 일본이 어떻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고 대륙 침략을 획책하게 되었는지를 살필 답사여행을 기획했다. 주 교수가 직접 안내하는 ‘정한론의 길:메이지유신의 본향을 찾아’라는 제목의 이 답사여행은 부산항에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들어가서 야마구치 현과 규슈 일대를 돌아보는 5박6일간의 일정이었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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