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도시 서울'이라는 테마로 이태원을 취재했다가 이태원의 한 골목을 나이지리아인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그 거리의 주역은 파키스탄인들이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 상인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해 파키스탄 상인들은 거의 물러나고 그들이 상권을 완전히 접수했었다. 유흥업 등 ‘전방위 사업’을 펼치며 이태원의 한 세력을 형성했다. 이태원에서 필리핀인과 러시아인을 고용해 클럽을 열기도 했던 이들이 코시국에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이 이태원에 정착한지도 제법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 빠져나갔을 지도 모르지만...
'Unity is Progress’(뭉쳐야 산다). 이태원 외국인 전용 클럽 지역에서 아프리카 음식을 팔고 있는 임마뉴엘 씨(31)의 식당에 걸려 있는 표어이다. 카메룬·튀니지·필리핀 출신 직원을 거느리고 무역업까지 겸하고 있는 임마뉴엘 씨의 국적은 나이지리아이다. 나이지리아인 특유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이 지역 최고의 거상으로 떠오른 그의 성공에는 이태원의 작은 역사가 담겨 있다.
9·11 뉴욕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공격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거점을 점령하는 동안 한국의 이태원 외국인전용클럽 지역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외출 규제로 미군의 발길이 뚝 끊긴 이 지역을 이슬람교 신자들이 ‘접수’한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곳을 장악한 것은 이슬람교 사원을 드나들던 파키스탄 상인들이 이곳에 사무실을 차리면서부터이다. 천막과 원단을 본국에 수출하는 상인이 늘면서 덩달아 이슬람 음식인 하랄푸드를 파는 음식점도 곳곳에 생겨났다. 덕분에 이태원은 치즈 냄새 대신 카레 냄새로 뒤덮였다.
그러나 인도와 국경 분쟁이 일면서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고 라마단 기간까지 겹치자 파키스탄 상인들은 대부분 철수했다. 다시 황량해진 이태원 뒷골목의 새로운 주인이 된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이다. 리어카로 짐을 옮기는 튀니지인, 흑인 전용 이발소를 운영하는 가나인, 흑인 전용 화장품 가게를 연 카메룬인의 모습은 이제 이태원 뒷골목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나이지리아인들은 특유의 사업 수완을 발휘해 무주공산이 된 이태원 뒷골목의 맹주가 되었다. 이화시장과 해방촌을 중심으로 100명이 넘는 나이지리아 상인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인들은 아프리카의 ‘개성상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들은 파키스탄 상인보다 한 수 위의 상술을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한국에서 사들인 물건을 본국에 되파는 데 비해 그들은 본국 외에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도 물건을 수출하는 등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맞추어 신축성 있게 대응했다.
힙합옷을 팔고 있는 마이클 씨(30)의 경우 미국에서 사들인 옷과 한국에서 만든 옷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마이클의 가게 앞에서 역시 힙합옷을 팔고 있는 스테판 씨(35)도 90% 정도를 일본과 나이지리아에 수출한다.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에 이들은 손님이 들어와도 극성을 떨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상인들의 또 다른 강점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파키스탄 상인들이 주로 같은 나라 사람을 상대로 식당과 핸드폰 가게를 여는 등 ‘동포 산업’에 의존한 데 비해 이들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케네디 씨(33)의 경우 건물 한 층을 통째로 빌려 다른 나이지리아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 그는 동료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숙소를 확보할 수 있도록 거들고 있다. 오코예 씨(32)는 한국·필리핀·러시아 여성을 고용해 플렉스라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컨트리 뮤직이나 로큰롤 위주인 다른 클럽과 달리 그는 힙합·레게·테크노 뮤직을 틀어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었다.
이태원의 경기를 되살리고 있는 나이지리아인들은 한국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무역 역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야박하다. 불법 체류할 가능성이 있다며 공항에서 입국을 막아 애를 먹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케넬트 씨(38)는 “비자를 내줄 때 철저히 심사해야지, 왜 들어온 사람을 돌려보내느냐”라고 항의한다.
한국 정부에게 전달해달라며 나이지리아연합회 쉐군 회장(32)이 했던 말이다. “100만 달러 이상 가지고 있는 나이지리아 거상들이 속속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들까지 얼굴이 까맣다고 되돌려 보낼 것인가? 제발 월드컵이 한국인들의 눈을 뜨게 해 주길 바란다.”
기후가 맞지 않아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산다는 임마뉴엘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할 계획이다. 아프리카 식당을 연 것도 한국에 빨리 정착하기 위해서였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그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