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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8. 2021

땅콩을 따던 소년, 나의 첫 아르바이트 체험기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고 여행감독으로 살아간다

땅콩을 따던 소년 : 


하루에 만 원을 버는 것이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 

삼십오 년 전, 지금 우리 둘째 나이 정도에. 


나의 첫 공식 알바는 땅콩 따기였다. 

땅콩은 뿌리 작물이다. 뽑아 놓은 땅콩 뿌리에서 흙을 털고 땅콩을 따서 포대에 넣는 과정이 필요했다. 

비닐 비료 포대에 넣으면 800원, 마대 포대에 넣으면 1200원.

 

땅콩밭은 지천이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중이라도 땅콩밭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서 땅콩을 땄다. 

노느니 이 잡는 게 아니라 노느니 땅콩을 땄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그렇게 하루 종일 땅콩을 붙들었다. 


그때 만원은 넘사벽이었다. 

비료 포대로 12개 반을 따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목표였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서 흙을 묻힌 채로 따서 넣기도 하고 땅콩 덤불을 넣기도 했다. 그래도 12개 반은 넘사벽이었다. 


새벽부터 땅콩을 따기 시작한 어느 날,

정말 오줌 싸고 뭐 볼 시간도 없이 땅콩을 붙들었던 어느 날, 

드디어 만원을 채웠던 기억이 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얼마나 뿌듯했던지. 


땅콩을 따고,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흙을 덜 털고 땅콩 덤불 넣은 것으로 타박받으면서 세상살이 힘겨움을 알기 시작했다. 


땅콩을 따서 번 돈으로 표준전과를 샀고, 

그 표준전과로 공부를 해서, 

상장을 받고 미래를 꿈꿨다. 

땅콩 포대는 내가 내 스스로의 숙제를 풀어갈 수 있게 길을 내주었다. 


지금도 땅콩을 먹을 때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온다. 

누군가의 조막손을 혹은 누군가의 주름진 손을 거쳤을 그 땅콩 포대를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손을 생각한다. 


예전에 굴업도에 갔을 때, 

지금은 보기 좋은 초지가 되어있는 언덕이 1980년대에는 땅콩밭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걸으면서 자꾸 뒤돌아 보았다. 

그 언덕 어딘가에 어린 내가 앉아 땅콩을 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우리 아이들의 손을 본다. 

땅콩을 따기에 좋은 손이다. 

이 손으로 땅콩을 딴다면 그들도 세상을 느끼게 될 것이다. 


땅콩이 아닌 그 무엇이든 지금 세상의 포대에 넣으며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럼 나에게 더 이상 의지하지 않을 것이고, 

밤에 캠핑장 화장실에 갈 때 무섭다고 같이 가자고 조르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손이 땅콩을 안 집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더라도 좀 나중에 집었으면...

그렇게 어른이 되면 왠지 나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 같은 서운함이... 


아무튼! 

땅콩이 그렇게 나에게 세상을 열어주었듯, 

땅콩이 아니더라도, 다른 무엇인가가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견하면서도 섭섭할 것 같다.

 

땅콩을 열심히 따면 미래가 열릴 것 같은 그 시절이 그립다. 

원고, 강연, 심사, 자문, 컨설팅… 

미래는 아직 열리지 않은 듯, 

여전히 나는 현재의 땅콩을 따고 있다.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이 된지도 1년이 넘었다. 

월급 받기를 그만두고 (하루살이는 아니고) 한달살이로 1년 넘게 버텨오면서,

땅콩을 따던 소년을 기억한다. 

내가 다시 땅콩을 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내가 딴 땅콩이 얼마나 되는지, 포대를 세어보았다.

참 부지런히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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