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관련해서는 세상을 바꾸는데 나름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2011년~2012년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로 11만 권의 헌책을 모아 나눴고, 2013년 '강정 책마을 프로젝트' 때 4만 권의 책을 모아 컨테이너에 실어서 강정마을에 전달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캐리어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해 캐리어 1000개, 약 2만 권의 책을 모아 '여행도서관'으로 꾸렸다.
또 하나의 공이 '서울 책보고' 탄생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아파트단지 옆 건물이 방치되고 있었는데 알아보니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건물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헌책 정거장'으로 사용하자고 오성규 이사장에게 제안하고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에게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제안했는데 평소 책에 관심 많으셨던 시장님이 적극 도와주셔서 프로젝트가 구현될 수 있었다.
결과물은 내 구상과는 달랐다. 아마 헌책방 주인들의 민원이 반영된 결과인 것 같은데, 알라딘 헌책방에 대응하는 헌책 상설 벼룩시장이 되었다. 헌책을 기증할 수 있는 쌍방향 구조도 구현되지 못했다.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시민들에게 호응이 좋아 고척동에 제2의 책보고가 들어설 예정이다. 제2 책보고 소식을 듣고 2014년에 '책정거장' 아이디어를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 생각나서 여기 옮긴다.
서울시장 후보자를 위한 아이디어, 도서관만 말고 '책정거장'을 만들어라~
재미로재미연구소/소셜 디자인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4. 4. 6. 08:11
사진에 보이는 시설, 규모가 만만치 않죠? 암웨이가 창고형 매장으로 쓰던 잠실나루역 근처의 서울시 시설입니다. 최근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암웨이가 철수했더군요. 이곳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은데... 이렇게 사용하면 어떨까요? 거대한 책정거장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증받은 책이 잠깐 거쳐가는 책들의 중앙역으로 말입니다. '기적의 책꽂이'에서 해본 모형인데 이를 서울시가 좀 더 체계적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싶네요(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고...).
당시 정리했던 '헌책 정거장'의 의의입니다.
1) 공공도서관에서 매년 처분하는 수십만 권의 책을 효율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구청 소속의 도서관에서 한 해 처분되는 책이 수십만 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책을 여기에 모아 두고 작은도서관/마을도서관/공공 북카페에서 1000~2000권씩 골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새 책에 밀려 버림받는 책이지만 10만 권 이상이 모인 곳에서 1000~2000권 골라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을 골라갈 수 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폐기 처분하는 책이 이런 대형 책정거장을 만드는데 '마중물' 역할을 할 것입니다.
2) 일반인들의 도서 기증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기적의 책꽂이'를 하면서 착불택배로 책을 모아보니 1인당 평균 50권~100권의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집 책장에 잉여의 책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책을 한 곳에 모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책장 다이어트도 할 겸 '책헌혈'에 동참해 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착불택배'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산과 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시스템만 구축하면 모을 수 있는 책이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기적의 책꽂이' 때 1년 동안 11만 권의 책을 모았고, '강정평화책마을'을 위해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할 때는 4개월여 동안 4만 권의 책을 모았습니다.
3) '책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합니다.
책의 패자부활전이란 이런 것입니다. 보통 도서관에 기증되는 책 중에서 교재는 외면받습니다. 공부하느라 낙서도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도 환영받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병영도서관입니다. 군대에서 무엇이라도 배워가려는 사병들이 교재를 선호합니다. 이런 '책의 패자부활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기적의 책꽂이' 할 때 도서대여점을 그만두시면서 1만 권 이상의 만화책과 무협지를 기증해 주신 분이 계신데... 이 책을 골라가는 곳이 거의 없어 처분에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방 정신요양원 원장님이 연락을 주시더군요. 요양 환자들을 위해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그곳에도 보내드리고 전국의 정신요양원에 두루 보내드렸습니다.
4) '책의 재분배'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도서관에서도 나타납니다. 도시는 공립도서관 외에 작은도서관도 많고 큰 서점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자 하면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역은 다릅니다. 책을 보려면 10km 이상 나가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곳에 두루 책을 갖춘 지역아동센터 등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려는 수요에 비해 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은 많습니다. 구치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곳이 신청해서 책을 기증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환영받을 것입니다.
5) 책이 보관되는 동안에는 '또 하나의 도서관'입니다.
책이 책정거장에서 보관되는 동안에는 도서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방문자를 위해 방문 기증 시스템도 만들어 둘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세 권 기증하고 한 권 기증받는 모형으로 만든다면... 많이들 이용할 것 같고요. 책을 창고처럼 보관하지 않고 교환형-도서관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죠(상업적인 이용을 막기 위해 1인 1일 3권 정도로 제한하고...).
6) 책을 통한 다양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다문화도서관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비율을 바꿔서 한국에 온 외국인이 1권을 기증하면 세 권을 골라가게 하면... 서울의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을 모아 보면 잡지는 보통 무용지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잡지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한테는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받은 책으로 다문화가정에서 볼 수 있도록 다문화도서관을 만든다면 좋은 소통 모형이 될 것입니다.
7) 사이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책정거장에서 유통되는 헌책을 데이터화 하면 오프라인으로는 10만 권 정도 저장되지만 이 책정거장을 거친 수십 혹은 수백만 권의 책으로 구성된 사이버 도서관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는 책이 흩어져있지만 온라인으로는 기증된 책만큼의 사이버 가상도서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IT 기업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기증한 책이 어디에 기증되어 있는지도 파악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