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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9. 2021

김영란법 5년, 그들이 살던 세상

김영란법이 사문화되는 듯한 느낌적 느낌이...


2016년 9월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염치가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을 한다. 김영란법 시행 후의 우리 언론의 모습이 그랬다. 법 시행 전에 한우가 한숨을 쉬고 굴비가 비명을 지른다고 호들갑을 떨던 언론이 시행 후에도 희한한 논리를 적용해 이 법에 부작용이 있다고 호도했다.  


관련 기사들을 보면 기자 일을 20년 동안 했던 사람으로서 얼굴이 후끈거린다. ‘출입처에서 기자들에게 밥을 사주지 않아 기자들이 쫄쫄 굶고 기사를 썼다’라는 기사도 있었다. 이 기사의 전제는 당연히 출입처에서 기자들에게 밥을 사준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제 돈으로 밥을 사 먹는다는 것은 상상력의 범위 안에 없었다. 


야구담당 기자들이 8천 원을 내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야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예전에 한 프로야구 선수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평소 기자들에 가진 불만을 토로했는데,  야구담당 기자들이 선수들을 위해 차려 놓은 뷔페식당에서 먼저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고 난 후 경기 전에 미리 식사를 하는데 기자들이 먹고 지나간 뒤 남은 음식을 먹게 되어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그 밥상을 받지 못한다고 기사까지 쓸 일인가 싶었다. 


이밖에도 독특한 논리로 법의 부작용을 부각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법 시행으로 특권층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더 힘들어졌다는 기사도 있었고, 법인카드 사용량이 줄어 경제가 위축되니 투자가 준다는 기사가 불과 법 시행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왔다.  머지않아 불황의 책임도 김영란법에 묻게 될 것 같다.  이런 화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모든 게 김영란 법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논리다. 


이런 논리라면 김영란법은 오히려 산업에 기여할 수도 있다. 포상금을 받기 위해 법 위반자를 신고하는 ‘란파라치(김영란법과 파파라치를 합성한 말인데 적합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를 양성하는 학원은 한 달에 500명 이상이 수강한다고 한다. 이들이 사용할 몰래카메라와 녹음기 수요도 늘 테니 이 법은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말이다. 



언론인들의 김영란법에 대한 감수성이 일반인들과 너무나 달라서 ‘그들이 살던 세상'이 도대체 어땠기에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법 시행 직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호화 유람선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런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 


사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해진 측면도 있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아쉬운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홀가분하다. 생각을 바꾸니 인생을 다시 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자들은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특혜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살던 세상과 작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길에 먼저 올라 선 것이다. 


‘이게 다 김영란법 탓'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화훼 농가가 울상이라고 한다. 선물용 난과 장례식장 화환의 주문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는 우리가 승진을 하거나 죽었을 때만 꽃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꽃의 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내용들은 바꿔 말하면 부정부패를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된다.  부정부패에 의존한 경제와 부정부패를 청산한 경제, 이중 어느 것이 우리 경제를 발전시킬 것인가? 선진국의 경험이 증명하는 간단한 문제다. 이 성장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되돌린다면 우리는 영원히 ‘비정상사회'로 남게 될 것이다. 


김영란 법 5년, 그들이 세상과 작별했지만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비정상의 정상화'가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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