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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9. 2021

여행감독이 주목한 특별한 여행가들

성직자, 역사가, 혁명가, 소설가, 모험가의 여행 스타일


출판 에디터는 사람을 만나면 책이 나올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보게 된다고 한다. 여행감독도 비슷하다. 그에게서 여행이 나올지 안 나올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이 나온다면 1박2일인지 14박15일인지 아니면 한 달 살기인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을 여행가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여행의 관점에서 보면 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다. 


 신뢰하는 여행가는 세 종류다. 하나 제너럴리스트. 둘 스페셜리스트. 셋 아카데미스트.  

하나, 여행은 많이 다녀본 사람이 장땡이다. 정보는 비교에서 나온다. 많이 다니면 모든 정보가 상대평가를 통해 정밀해진다. 이를테면, 히말라야와 코카서스와 알프스와(혹은 일본 알프스와) 태백산맥을 두루 다녀봐야, 비로소 그 산을 설명할 수 있다. 

둘, 여행은 오래 머문 사람이 또한 장땡이다. 기실 여행가의 깨달음이란 것은 오해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 멈춤을 통해 그 오해는 비로소 이해로 바뀐다. 친한 현지인을 소개시켜 줄 정도가 되어야 여행가다. 

 셋, 가보지 않은 여행가도 때로 도움이 된다. 바로 학자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아니 충분하고도 남는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여행지에서 지식을 확인하고 갱신하고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지다.


성직자, 역사가, 혁명가, 여행가, 소설가, 시인, 모험가, 장애인, 학자와 기자, 기획자 중에서 여행의 관점에서 흥미로웠던 사람들을  몇 명 꼽아보았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만 일상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특히 창조적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이 열 명의 여행가들이 좋은 예다.  



성직자의 여행 - 오도릭의 <동방기행> 

: 오도릭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다. <동방기행>은 베네치아에서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갔다가 중앙아시아로 돌아온 여정을 담았다. 후대에 문명의 기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당대에 현장을 돌았던 여행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류도 많지만, 인문지리, 생활풍습, 물산, 종교, 유적·유물을 꼼꼼히 기록했다.  


오도릭 전에 카르피니, 뤼브뤼키, 마리뇰리 등이 여행을 떠났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도릭도 프레스터 존(동방 어딘가의 그리스도 국가)을 찾아서 떠났다. 기독교적 독선이 곳곳에 나타난다. ‘무함마드는 지옥의 자식, 그 신봉자는 위선자와 가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상반된 종교’라며 이슬람교를 오독한다.  


역사가의 여행 - 사마천의 <사기>

: 사마천은 ‘붓수저’를 들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장서가였다. 하지만 고답스럽지 않았다.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각기 장단점을 분석하고 취할 것만 취했다. 사마천은 아버지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계승했다.  

장서가인 아버지 덕분에 사마천은 금문과 고문에 능통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외국어에 능통한 셈이다. 그래서 어떤 판본이든 읽을 수 있었다. 독서가였지만 사마천의 아버지는 ‘현장 독서’를 중시했다. 그런 아버지의 후원 덕분에 사마천은 중원과 변경을 유람하고 <사기>를 남길 수 있었다. 노신은 후에 ‘<사기>는 역사가의 절창이요, 가락 없는 (굴원의) 이소다’라고 평했다.  


혁명가의 여행 - 김구의 <백범 일지>

: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무전여행가였다.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옥에 갇혔던 백범 선생은 탈옥을 주도한 후 탈옥 동기들을 찾아 동가식서가숙 하며 전국을 유람했다. 대접이 섭섭했던 사람은 따로 메모하기도 했다. 그렇게 삼천리 금수강산을 둘러본 김구는 최고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호찌민의 세계여행은 백범의 여행과 대비된다. 세계 여러 나라를 살펴보며 그는 여러 이념이 현지에 어떻게 안착하는지를 살폈다. 보편성 속의 특수성을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적절히 결합해 베트남 독립을 이룩했다. 호찌민과 체 게바라가 공통적으로 좋아한 책이 있다. 지도책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서 지식을 지성으로 승화시켰다.  


여행가의 여행 - 토니 휠러 <론리 플래닛> 

: 수많은 여행서 중에서 <론리 플래닛>이 특별했던 이유는 ‘다른 여행자들이 쳐다보지 않는 여행지를 재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1972년 성탄절, 시드니에 도착한 그들에게는 꼴랑 27센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험을 계속해서 <론리 플래닛>을 수천만 달러의 여행그룹으로 키워냈다.  

환갑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로 사는 부부를 지난해 제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어디가 가장 좋았나’ ‘어디가 가장 끔찍했나’ ‘어디를 여행해보고 싶나’ 등등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부는 해초무침을 오래도록 씹으며 조용히 화순항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은은한 눈빛은 마치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설가의 여행 - 김훈 <자전거여행>

: 작가의 여행기는 감성으로 꽉 차 있다. 김훈도 그렇다. 걸작 <자전거 여행>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진도편을 읽으면 <자전거여행>에 이미 그의 소설 <칼의 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는 빙의다. 이순실의 탈을 쓴 김훈이 임진왜란을 체험하고 있다. 답사를 통해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후 그런 감성이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 김훈 선생과 함께 풍도 답사를 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풍도 앞바다에서 펼쳐진 청일전쟁 해전이었다. 풍도에 가서 그는 청나라 수병들이 묻혔다는 무덤을 수소문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당시 조정에 보고된 전황 장계를 알려주며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여행지를 방문할 때 그 공간의 역사를 들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의 여행 - 이문재 <마음의 오지> 

: 시인들은 오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진짜 오지는 마음속에 있다. 내 마음이 사람들을 밀어내고 오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은 <마음의 오지>에서 ‘마음속에 마음의 주인조차 어쩔 수 없는, 외면하고 싶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은 오지들이 있었다’라고 썼다. 여행과 오지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 


이문재 선배의 형과 동생들은 현실의 오지에 있었다. 술을 마시면 그는 오지의 형과 동생에게 전화를 해댔다. 그들은 싫은 내색 없이 익숙하게 받아주었다. 전화선을 따라 여행하는 셈이다. 취재를 갈 때마다 그곳에 그를 반기는 형과 동생들이 환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모험가의 여행 - 윤승철,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 무인도에 간다는 것은 낭만적이지만, 현실은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뭔가를 버리고 가야 하는 곳인데 그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더 역설적인 것은 무인도에 더 많이 가 본 사람이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뭔가를 버리고 무인도에 가는 이유와 배치된다. 이것이 무인도에 가는 사람의 딜레마다.


여행은 역설이다. 무동력 요트 세계일주를 한 김승진 선장은 ‘애완동물도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 세계일주의 규칙이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기’가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우리는 여행서를 찾고 여행사를 찾는데 여행에 대한 훈련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훈련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의 여행 - 홍서윤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행은 의지의 문제다. 홍서윤 씨와 같이 캠핑을 해보았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과의 캠핑은 처음이었다.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캠핑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는 말에게는 열 명의 사람이 한 마리의 말도 먹이지 못하지만 물을 마시려는 말은 한 사람이 열 마리의 말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서윤씨는 밝았다. 단순히 밝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밝을 수 있는 비결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여행은 그 밝음의 원천 중 하나였다. 여행을 통해 장애인의 행복하 권리를 넓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학자와 기자의 여행 - 주강현 교수와 함께 기획한 ‘말라카 기행’ ‘메이지기행’

: 학자의 여행은 답을 남기지만 저널리스트의 여행은 질문을 남긴다. 말라카기행은 좋은 질문을 제법 건진 멋진 여행이었다. 마호메드의 도시 쿠알라룸푸르, 정화의 도시 말라카, 쑨원의 도시 페낭, 마하티르의 도시 랑카위가 보여준 것은 ‘이슬람과의 공존 가능성’이었다. 이 여행에서 처음 건진 질문은 ‘말라카해협에 장보고 장군이 다녀갔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것이었다. 무역풍과 해류의 방향 때문에 아마 불가능했겠지만 ‘그가 이곳을 다녀갔다면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확장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깊은 아쉬움이 남았다. 서구 열강이 이 해협을 각축할 때 그런 사실이라도 우리가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메이지 기행은 다크투어리즘이라는, 마음이 무거운 여행이었다. 왜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본은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일본 메이지유신 유적지를 돌아보며 헤아려 보았다. 여행 전에 읽은 책이 많지 않았지만 여행을 통해 일본 근대화의 퍼즐이 맞춰졌다. 더불어 아베의 꿍꿍이도 읽어낼 수 있었다. 두 여행은 주강현 교수가 기획하고 나는 조감독으로 보조했던 여행인데 '답사 여행'의 좋은 전범이었다.  


기획자의 여행 - 강기태 ‘섬청년탐사대’ 

우리가 왔을 때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주고 가는 여행, 여행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눈을 갖는 여행을 ‘섬청년탐사대’와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 ‘섬의 쓰레기를 줍는 여행’에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단계는 여행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창조 여행’이 아닌가 싶다. 


백지상태와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의 섬은 여행가들이 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 여행을 여행대학 강기태 총장과 함께 하는데, 자기 돈 내고 자원봉사하러 가는 여행에 면접을 보았다. 단호했다. 마음 맞는 사람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밀도 있는 여행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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