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야홍' 현상과 '안산 숏컷' 논란과 '달파멸콩' 챌린지의 기원은 하나다. 모두 일베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일베의 언어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다. 차별과 혐오가 먹히는 것은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호남차별 여성차별 진보차별, 그 맥락은 같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호남인이, 여성이, 진보가 오히려 특혜를 받고 있다, 그러니 차별하자'는 단순 논리다. 이 차별과 혐오의 언어는 일본 '재특회'에서 똑같은 맥락으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나타났다.
'달파멸콩' 이 선전선동 밈의 발신지가 재벌가 한량이라는 게 조금 의외이기는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반복되는 홍역 중 하나다. '달파멸콩'은 정전선언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한 노력을 부정하는 손쉬운 언어다. 이 재벌가 한량은 '중국 공산당은 자신이 멸망시킬만한 공산당이 아니다'며 부정하면서 철지난 주적을 불러들인다.
'달파멸공'밈의 유행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강타한 '무야홍' 신드롬과 닮았다. 갑자기 2030 남성 층에서 홍준표 후보의 인기가 칙솟으면서 대선 지지도에서 이낙연 후보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고 야권 후보 적합도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앞서는 결과까지 나왔다. '무야홍'은 '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의 줄인 말이다. <무한도전>에서 유래한 '무야호~' 밈의 패러디이기도 한데, 2030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로 홍바람이 추석 차례 밥상을 덮쳤다.
이런 홍준표 현상에서 이준석 신드롬 때와 마찬가지로 진한 일베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가 제트기류를 타고 대선 3강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일베라는 저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베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 세계관이 소명한 사람이 바로 '꼴페미'와 '진보 십선비'들에게 할 말은 한다고 여기는 홍준표인 것이다. 올림픽 3관왕 안산의 쇼컷에 시비를 걸었던 2030 남성들은 자신들의 거친 세계관을 반영해 줄 후보로 홍준표를 점지한 것이다.
일베 현상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20대였던 남성들이 30대 남성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회적 미성숙 상태로 남아 홍준표 뒤에 숨고 있는 것이 지금 '무야홍' 현상의 비결로 보인다. 2014년에 우리 일베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일본 재특회에 대한 책을 보았다. 쌍생아처럼 닮아 있었다. 아마 백인 남성들의 흑인 차별 논리도 비슷했을 것이다. 일베와 재특회의 세계관에서 오늘 무야홍 현상을 들여다본다.
우리 안의 괴물, 일베는 어떻게 성장했나?
‘일간 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가 여전히 화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홍어’로 부르며 희롱하고, 여성을 ‘김치년’이라 부르며 비하하고, 이주노동자 자녀를 강간하겠다고 예고하고, 박정희·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무조건적으로 칭송하는 이 사이트 이용자들의 일탈이 언론에 두루 보도되었다. 이곳에 광고하는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광고 대행사들이 광고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일베에 대한 여론은 일방적이었다. 일베는 혐오스러운 글이 올라오는 곳이고 일베 이용자들은 ‘지질이’ ‘루저’일 것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남자친구가 일베한다’는 것은 젊은 여성의 고민 상담꺼리였다. 일베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일베 현상은 싱겁게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과연 그럴까? 언론의 고발 보도와 대중의 낙인이 일베 현상을 잠재울 수 있을까?
일베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일베는 건재함을 증명했다. 일베 밖에서는 모두가 ‘국가의 부재’를 한탄할 때 일베 안에서는 국민의 미개함을 꾸짖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죽였냐? 박근혜 대통령은 할 만큼 했다. 유족이 벼슬이냐?’며 정부를 두둔했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이용하려는 무리가 있다!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라며 정부를 옹호했다.
일베는 일종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공유한다.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돼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길 기대하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지.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라는 정몽준 막내아들의 말은 이런 일베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왜 맨날 국가 탓만 하느냐, 너희들이 못나서 당한 일이다’라며 국가가 아니라 국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모든 국민이 슬픔을 공유할 때 일베는 슬픔에 공감하려 하지 않고, 그 슬픔과 선긋기를 한다. 이런 논리다. ‘너의 불행은 어쩔 수 없어. 나는 4년제 대학인데, 너는 아니잖아! 나는 남자인데, 너는 아니잖아! 우리 부모는 돈이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 나는 학벌이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라며 현재의 행복과 불행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로 설명한다.
반면 그들은 '국가의 의무 불이행'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보호받는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저들까지 보호하면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버리는 카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인지가 설명이 된다. ‘버리는 카드’의 불행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버리는 카드’인 사람과 그들을 동정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든다고 역정을 낸다. 일베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았던 KBS 간부들의 생각이었고 설화를 일으킨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각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지방선거의 마지막 구호는 ‘박근혜 대통령을 살리자’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베적 사고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어진다. 흔히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관련해 국가에 책임이 있고 그 최종 책임자가 본인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행한 다음의 발언과 이후 상당기간 사과를 하지 않고 버틴 것은 이런 인식에서 나온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 많은 언론은 이 발언을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이 결정적 발언으로 대통령은,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에서 ‘구름 위의 심판자’로 자신을 옮겨놓았다.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최종 책임자는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대신 ‘책임질 사람에 대한 색출 의지’를 과시하는 단죄자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그렇게 가장 먼저 ‘탈출’했다."(‘국가도 기다리라고만 할 것인가’, 시사IN 345호)
일베와 재특회는 일란성쌍둥이, 재특회를 보면 일베가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일베는 세계관의 문제다. 일베 현상을 피상적으로만 보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책이 한 권 있다. 일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씨가 쓴 <거리로 나온 넷우익>(원제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이 바로 그 책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신세대 우익 단체로 ‘조선학교 무상교육 반대’ ‘외국국적 주민에 대한 생활보호 지원금 지급 반대’ ‘불법 입국자 추방’ ‘핵무장 추진’을 주장하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을 탐사 보도한 책이다. 많은 재특회 간부와 회원들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집요하게 취재해서 쓴 책이다.
일본 누리꾼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게시판인 ‘2채널’의 보수 성향 이용자들이 만든 재특회와 한국의 일베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둘의 행태를 보면 마치 평행이론의 사례인 듯 일본과 한국의 청년 우익 세력이 서로 조율하며 행동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군국주의 일본을 칭송하며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재특회의 모습과 독재정권을 칭찬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매도하는 일베의 모습이, 재일 한국인과 부락민을 비하하는 재특회의 모습과 호남과 여성을 비하하는 일베의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유사하다.
야스다 씨가 재특회 회원들에게 가입 동기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진실에 눈을 떴다’ ‘진실을 알게 되었다’였다. 인터넷을 통해 재특회의 주장을 접하고 감화해서 가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젊은 재특회 여성회원은 “2채널에서 정보를 검색하거나 ‘혐한류’를 읽거나 하면서 재일 특권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대로는 일본을 반일 세력에 빼앗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넷우익’이라 불리는 일본의 신흥 우익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확장되었다. ‘변형 오타쿠’ ‘공격적인 은둔형 외톨이’로 묘사되는 이들은 ‘일베충’으로 묘사되는 일베 이용자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일베 이용자들과 다른 점은 훨씬 조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2006년 ‘동아시아문제연구회’를 조직했다가 2007년 ‘재특회’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재특회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애당초 식민 지배는 없었으며, 강제 연행이나 종군위안부 등은 좌익 세력의 날조에 지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일본은 한반도의 인프라를 정비하고, 근대화를 도왔으며, 교육의 부흥에 힘썼다.’ 제국주의 일본의 자리에 박정희나 전두환의 이름을 넣으면 그대로 일베들의 주장, 즉 ‘일베올로기(일베+이데올로기)’가 된다.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재일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재특회는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 등이 자학사관을 가르치며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조장한다면서 엘리트 좌파를 비난한다. 이는 호남인 혐오를 조장하고 진보 인사를 ‘좌좀(좌파 좀비)’이라고 매도하는 일베의 논리 구조와 흡사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속성도 닮았다. 야스다 씨는 “내가 접한 재특회 회원들은 친구나 가족에게 활동 사실을 감추거나 처음부터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반쯤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라고 전했다. 일베 이용자들은 자신이 일베 이용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일밍아웃(일베+커밍아웃)’이라고 말한다.
1만 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전국에 34개 지부가 구축된 재특회는 일본 보수우익 단체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경비원 출신의 사쿠라이 마코토(닉네임)라는 탁월한 리더를 가진 재특회가 조직력에서 우위를 보인다면 일베는 인터넷 공간의 활용에서 한 수 위다. 일베는 25단계의 등급을 두어 추천을 많이 받는 회원일수록 등급을 올릴 수 있게 했다. 일종의 게임 요소를 사이트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약자를 강자로 둔갑시키고, 자신들은 약자 코스프레
흥미로운 것은 양쪽이 ‘이슈 파이팅’을 하는 프레임까지도 닮았다는 점이다. 둘 다 자신들을 ‘이념적 소수자’, 즉 약자로 규정하며 누리꾼의 피해의식을 자극한다. 재특회 회원인 니시무라 히토시 씨는 “끝도 없이 일본을 모욕하고, 날조된 역사로 보상금을 타내려 하고, 일본에서 일본인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정치 활동을 하는 재일 한국인에게 항의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재특회 회원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재특회는 유엔 인종차별위원회에 보낸 항의문에서 재일 한국인을 ‘외국에서 온 백인’으로, 그리고 일본인을 ‘원래 살던 흑인’에 비유하며 차별받고 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일베 이용자에게도 일베는 ‘이념 해방구’다. 오프라인이나 다른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지난해 동국대 정 아무개 교수는 일베에서 ‘신상이 털리는’ 곤욕을 치렀다. 강의 시간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이유에서인데 수강생이 일베에 관련 내용을 올리면서 본인의 페이스북 글들이 캡처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해당 교수는 그런 문제 제기가 일베에 ‘고발’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재특회의 중요한 프레임 중 하나는 좌파 집단을 부르주아 엘리트 집단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요네다 류지 재특회 홍보국장은 “우리는 일종의 계급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고, 엘리트 비판이다. 원래 좌익은 사회의 엘리트다. 예전의 전공투 운동도 사실은 엘리트 운동이었다”라고 말했다. 진보 성향 인물을 비하하며 ‘십선비’라고 부르는 일베 이용자들의 인식과 비슷하다.
문제 제기의 방식이 ‘혐오 발화’(인종·특징·외모 등을 이유로 타인을 모욕하는 언동)라는 점도 똑같다. 재특회 회원들은 일제강점기 때의 표현인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을 비롯해 ‘바퀴벌레 조선인’ ‘쫑코’ 등으로 비하해서 표현하고 집회할 때마다 “우리는 조선인을 죽이러 왔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런 표현 방식에 대해 홋카이도 지부장인 후지타 세이론(닉네임)은 “운동은 충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가라’ ‘쫓아내라’ 같은 말은 분명 반감을 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혐오 발화’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것은 2008년 촛불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까지는 부정적인 인터넷 문화로 배척되던 ‘혐오 발화’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보편화되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인기를 끌었던 비결도 바로 이런 혐오 발화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욕으로 도배한 그의 글은 조회수가 폭발했다. 이런 ‘혐오 발화’는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까지 이어졌다. ‘진보 성향 누리꾼들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러지 않았느냐’며 일베 이용자들이 극단적인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반동이다.
증오와 미움을 부르는 ‘혐오발화’의 일상화
선의가 아닌 악의에 호소하는 방식은 인터넷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2009년 겨울 재특회는 교토의 조선제1초급학교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학교 앞 공원을 학교 운동장처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일본의 많은 인권단체가 초등학생 앞에서 시위한 것을 맹비난했지만 재특회 회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한 회원은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재특회가 했다. 정의의 싸움이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재특회에 이 학교 문제를 제보했던 일본인은 “재특회가 다소 거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은 우리의 마음속 외침이기도 하다”라고 변호했다.
여기에 치졸한 소영웅주의가 더해지면서 운동은 더욱 과격해진다. 나중에 재특회를 탈퇴한 나카타니 다쓰이치로 씨는 “우리 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받았다. 그래서 거기에 부응하려고 다들 필사적이었다. 그게 무서워서 내심 움찔했지만, 그래도 내달렸다. 블로그나 동영상의 조회수를 늘리려면 과격한 방향으로 치달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비슷한 양태가 일베에도 나타난다. 덕분에 비밀이 없다. 일베 이용자들의 소영웅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국정원이 안보교육 명목으로 이용자들을 몰래 초대해서 접대해도 이들의 인증샷 때문에 바로 탄로가 난다.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와 탈북 영화감독 정성산씨가 강연한 내용, 그리고 교육에 초대된 이용자들이 국정원 ‘절대시계(일베 회원들은 국정원 마크가 있는 시계를 이렇게 부른다)’와 스마트폰 케이스, <어느 지식인의 죽음>과 <빠이 전교조> 책 한 권씩과 5만 원어치 문화상품권을 받았다는 사실도 곧바로 알려졌다.
이렇게 친하게 지내다가도 이탈하면 가차 없이 비난한다. 재특회 지부장 출신의 한 탈퇴자는 “이견을 제시하면 ‘조선인과 좌익의 앞잡이’라며 배제당한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일이든 소동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극우 언론인으로 추앙받던 조갑제씨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은 허황된 것”이라는 글을 쓴 후 일베 이용자들에게 ‘종북’으로 몰리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한류 드라마를 많이 방영한다는 이유로, 반공 재벌 미즈노 시게오가 설립하고 대표적인 보수 신문(<산케이 신문>)을 계열사로 둔 후지TV를 쳐부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특회나, 삼성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 설립한 CJ 계열의 케이블 채널(tvN)을 종북방송이라고 비난하는 일베의 모습은 정확히 겹친다.
야스다 씨는 재특회가 과격한 방식 때문에 다른 보수 우익 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만 계속 확장세라며 해마다 수입이 비약적으로 느는데 거의 전액이 기부금이라는 사실, ‘활동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활동비만은 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재특회는 ‘강력한 자력’이 있다.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국가적인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까지 일베를 공격하는 상황이지만 이 상황이 일베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야스다 씨는 책에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재특회와 그 관계자를 취재하다 보면 허탈한 일이 너무도 많다. 동영상과 인터넷만 보고 얼마나 나쁜 녀석인가 생각해 긴장하지만, 실제로 만나면 평범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 좋은 아저씨나 착해 보이는 아줌마, 예의 바른 젊은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녀석들은 그 위의 고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 수맥이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