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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1. 2021

당신이 올 가을에 섬여행을 가야 하는 7가지 이유

못가 본 섬이 아름답다, 도시인을 위한 자발적 섬 유배


# 섬은 불편한 사치다 

섬은 사치다. 다만 불편한 사치다. 사치에 방점을 찍은 사람들은 감동하고 불편함에 방점을 찍은 사람들은 타박한다. 불편한 사치를 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섬은 최고의 여행지다. 이것이 청년들과 열 번의 섬여행을 하고 얻은 결론이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그들은 너무나 많은 감성을 찾아낸다.  


섬과 청년은 좋은 조합이다. 청년이 몰리면서, 제주가 바뀌었다. 제주가 끝없이 재발견되었고,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지금 제주는 낭만깡패들의 서식지가 되었다. 더 이상 제주는 변방이 아니다. ‘홍대 옆 제주’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청년문화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이런 제주의 변화가 다른 500개의 유인도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통영, 여수와 고흥, 완도와 진도 그리고 신안의 섬이 그 후보다. 이중 한 곳에 ‘삼도섬관광통제영’을 두고 섬여행을 활성화 시켰으면 한다(최근 설립된 '한국섬진흥원'이 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섬여행이 두루 활성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시인의 눈으로 본 섬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한다.  



# 섬은 여행의 미래다 

청년들과 맨 처음 갔던 섬은 고흥군의 연홍도였다. 연홍도의 매력은 작은 섬이라는 것이었다. 당산에 올라가면 섬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았다. 그래서 청년들은 ‘섬에 왔다’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우리나라 섬 중에는 생각보다 큰 섬이 정말 많다. 차로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커서 막상 들어가 보면 섬이 아니라 ‘육지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연홍도는 작아서 섬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청년들과 연홍도에 왔을 때 ‘섬여행은 불편한 사치’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를 발견했다. 우리가 묵었던 집을 재벌 회장님이 별장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된장회무침을 아주 잘하는 집으로 민박집도 아닌 평범한 가정집이다. 그런데 그 집에 재벌 회장이 매년 와서 일주일 정도씩 묵으면서 조용히 낚시만 하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봐라 전 세계 휴양지와 좋다는 호텔을 다 돌아다녀봤을 재벌 회장이 결국 찾는 곳이 섬 아니냐? 섬은 여행의 미래다” 


섬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안좌도의 딸린 섬 박지도에 갔을 때 청년들은 흉가에 매료되었다. 자연은 흉가마저도 아름답게 치유해 주었다. 섬은 늘 새로웠는데, 박지도에서는 흉가가 새로웠다. 청년들은 ‘흉가에 빠져들기는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어찌 생각하면 섬의 치부일 수도 있는데 청년들은 흉가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 시계가 고장 난 섬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어요” 섬에 청년을 데려가면 공통적으로 처음에 하는 말이다. 타임루프를 돌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다. 바꿔 말하면 도시의 시계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리라. 아무튼 섬이 청년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그 첫머리에 섬의 한적함이 있다.  


사실 섬의 시간은 멈춰있지 않다. 오히려 더 빨리 흐른다. 섬의 시계는 하루에 두 번 흐르기 때문이다.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해의 시계가 한 번, 물이 차고 빠지는 달의 시계가 한 번, 이렇게 두 번 흐른다. 그래서 섬에 사는 사람은 두 배로 부지런해야 한다. 바다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물때를 놓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섬에서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섬에 사는 사람은 한 가지 일만 맡아서 살 수 없다. 이장은 우체부 역할도 해야 하고, 연락선도 운전해야 하고, 잔칫날 돼지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한 사람이 몇 가지 역할을 맡아줘야 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 분주함 속에서 한적함을 읽어낸다는 것이 섬의 아이러니다.  



# 섬은 스승이다.  

뱃사람들은 물길을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지나온 풍경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이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눈앞의 풍경이나 지나온 풍경이나 섬 초보에게는 거기서 거기인지라. 어쨌든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그의 각오보다 그가 지나온 길을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섬에 다니며 배우게 된 것이 참 많았다. 섬이 가르쳐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배웠다. 그중의 하나가 섬의 명당이다. 여러 번 섬에 가보면서 느낀 것인데, 풍경이 좋은 곳과 살기 좋은 곳은 달랐다. 사람들은 섬에 가면 풍경이 좋은 곳을 먼저 찾는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근사한 석양을 볼 수 있고,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 그리고 다른 인가와 떨어져 있는 곳이 그런 곳이다.  


신기한 것은, 정작 그런 곳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섬에서 마을을 이루는 곳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물이 나는 곳, 바람이 약한 곳, 포구가 가까운 곳, 텃밭을 가꿀 수 있는 평지가 있는 곳, 대략 그런 곳들이다. 거의 예외가 없다. 육지 사람들이 명당으로 생각하는 곳은 단지 ‘불편한 곳’이었을 뿐이다.  


육지 사람이 보기에 명당이라고 생각할만한 곳에는 대게 무덤이 있다. 이것도 거의 예외가 없다. 그곳은 죽은 자의 자리인 것이다. 섬의 명당 원칙도 사람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고 대단해 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자리는, 사람이 서는 자리가 아니라, 죽은 자의 자리라는 것을. 그런 자리는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야지, 멈추고 차지할 생각을 하면 심신이 고단할 뿐이라고.  



# 불멍 물멍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섬멍'  

섬의 구분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시인의 눈에 섬은 크게 ‘관광섬’과 ‘양식섬’과 ‘할매섬’으로 나뉜다. 관광섬은 볼 것이 많은 섬이지만 한적한 매력을 잃어버린 섬이다. 양식섬은 부유한 섬이지만 따뜻한 정을 잃어버린 섬이다. 대단한 볼거리도 없고 어장도 황폐한 할매섬에 도시인들은 매력을 느낀다. 도시에 없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들에게 힐링 중 하나는 ‘멍때리기’이다. 그래서 ‘멍때리기 대회’를 열기도 한다. 섬만큼 멍때리기에 좋은 곳이 없다. 일전에 통영 연대도에 갔을 때 만지도로 연결된 연도교 건너편에 멍때리기 좋은 곳을 발견했다. “야, 여기서 책 읽으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라고 말하는데 만지도 바위 위에 정말 그림처럼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멍때리기 좋은 섬 중 한 곳은 소청도다.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마치 우주의 다른 행성처럼 보이는 소청도 분바위에서 책을 읽고 싶다. 지구 생성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스트로마 톨라이트’ 화석 옆에서 영겁의 세월을 상상하고 싶다. 이 얼마나 사유하기 좋은 공간인가?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불멍'과 '물멍'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섬멍'은 진정 최고다.



# 청년은 섬이다.  

섬 개발이 한창이다. 지자체마다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섬 개발을 할 때 청년에게 기회를 주라고 권하고 싶다. 청년과 만나면 섬이 바뀌지 않고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섬에서, 그들이 멋진 그림을 그려줄 것이다.  


섬의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면서 수억 수십억을 우습게 쓰는데, 그렇게 해서 개발해도, 섬은 여전히 불편하고 먼 곳이다. 불편을 감당하면서 낭만을 찾아낼 수 있는 청년과 만나야 한다. 청년문화가 일궈지면, 그다음은 탄탄대로다. 청년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청년이 오면 중년이 따라오고 중년이 오면서 소년을 데려올 것이다.  


제주의 오늘은 500여 개 유인도의 내일이다. 청년들이 섬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차리고, 그래서 섬에 다른 청년들이 찾아들고, 그들이 함께 어울리며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섬은 청년이다.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이들이 섬을 즐기게 해야 한다.  



# 훌륭한 섬지기들이 있다

고흥의 작은 섬 애도(쑥섬)에서 쑥섬카페를 운영하는 김상현 씨는 섬의 가장 높은 곳에 ‘하늘 정원’을 가꾸고 있다. 꽃이 피어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같은 고흥의 섬 연홍도는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가꾸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통영 삼인행의 이동열 씨는 '섬마을 영화제'와 '섬마을 음악회'를 열며 우리를 유혹한다. 도저히 가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아직 섬이 낯선 사람들이 많은데 섬지기들과 같이 가면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노형래 갯티연구소 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보다 섬을 더 사랑하고 훨씬 많은 섬에 가보았기 때문이다. 섬은 경험치의 세계다. 많이 가본 사람이 많이 안다. 이들은 미지의 섬으로 나를 안내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  


여기에 한 명을 더하자면 섬캠핑 블로거 ‘아볼타(김민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섬에서 캠핑을 가장 많이 해본 블로거다. 여러 섬 선생 중 아볼타가 섬을 만나는 방식이 평범한 도시인이 섬을 만나는 방식과 가장 닮아 있다. 새로운 섬에 갈 때마다 그는 노크하듯 수줍게 섬에 이야기를 건다. 섬의 어르신들을 만나 인사를 건네고 마을 이장이나 어촌계장을 찾아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한다. 도시인이 섬과 만나는 방법 중 가장 권할만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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