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1. 2021

선조가 가꾼 '오래된 정원', 이를 누리는 수목인문기행

수목 또한 인간이 그려낸 무늬다. 이를 읽어내는 것은 흥미롭다


# 수목 인문 기행

인문이란 인간이 그려낸 무늬다. 

수목 또한 인간이 그려낸 무늬 중 하나다. 

그러므로 수목을 읽어내며 가는 여행 또한 인문 기행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경험한 수목 인문 기행을 되짚어 보았다.   


# 반려동물에서 반려식물로

반려동물에서 반려식물로. 국민소득이 3만 불에서 4만 불 구간으로 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려동물을 기르던 사람이 가졌던 도덕적 우월감은 이제 반려식물을 기르는 사람의 몫이다.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식물의 말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것으로. 잎의 두께와 색깔, 흙의 굳기와 온도 습도를 챙기는 ‘식물 집사’들의 시대다. 그림책에서도 식물 관련 책들이 각광받고 있다.    


# 플랜테리어 카페 

반려동물 카페가 유행이었다가 이제 대세는 식물 카페가 되었다. 또 식물 안에서도 꽃에서 풀로, 인위적인 것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신속하게 옮겨가고 있다. 여행감독으로서 식물에 대한 관심을 관광자원의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유행이 나타난다. 지방 여행 정보가 ‘기승전-맛집’이었는데 요즘은 ‘기승전-카페’로 가고 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카페로 가다가 요즘은 플렌테리어가 잘 되어있는 식물카페가 인기다. 


  


# 도시에 자연 끌어오기 

도시에 자연을 어떻게 요령껏 가져오느냐, 이것이 웰니스의 키워드다. 웰니스의 3요소를 꼽으라면 요가나 명상, 식물 그리고 물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공통점은 정적 상태를 유지하고 조금만 이물질이 껴도 밸런스가 깨진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어떤 식물을 실내에 끌어들이느냐가 인테리어의 수준을 좌우한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작은 화분 하나로 ‘소확행’을 도모하기도 한다.   


# 자연에 도시 가져가기 

도시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사실 이것이 요즘 여행의 핵심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공물과 자연물의 이데아가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연물의 이데아를 닮는 인공물의 시대’에서 ‘인공적인 것 스스로 이데아가 된 세계’로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자연에 들어간다고 마냥 무아지경에 빠지지 않는다. 도시라는 안전장치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한 잔의 드립 커피일 수도 있고 한 벌의 원피스일 수도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일 수도 있다. 자연에 들어갈 때 도시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행복감을 배가한다.   



# 조상들이 설계한 ‘오래된 정원’

그런 면에서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수목은 자연스러운 것과 다른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수목 또한 인간이 그려낸 무늬다. 광양 읍성터의 고목들, 삼천포 대방진굴항의 고목들, 남해 물건리의 방풍림 그리고 황홀했던 경주 대릉원의 고목숲, 여기에는 인간이 진하게 써 내려간 삶의 무늬가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여행은 다분히 인문적이다. 인문여행의 한 형식으로 수목여행을 살핀다.   


# 정원에 쓰인 조선 선비의 인문 함수

담양의 정자는 잘 알려진 관광자원이다. 그런데 정자의 정원 또한 관광자원이 혹은 그 이상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소쇄원의 수목이 지니는 유교적 의미, 관방제림을 조성한 지방관의 고심, 메타세콰이어길을 조성한 군수의 혜안 그리고 죽녹원을 설계한 정원 전문가의 구상. 모두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다.   



# 근대와 현대의 시간이 교차하는 수목

광주의 호랑가시 언덕에 서양 선교사들이 남긴 흑호두나무와 피칸나무 그리고 은단풍나무는 서양 문화의 전파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언덕에 늠름하게 서있는 500년 된 배롱나무는 이 언덕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증거 한다. 나주의 대표적인 부잣집이었던 목서원의 금목서와 은목서 그리고 담 넘어 나주향교의 벼락 맞은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를 통해서는 근대 엘리트와 조선 선비의 취향 선호를 비교해볼 수 있다.   


# 노거수 따라 마을여행 

신라 대릉원의 노거수, 광양 읍성터의 노거수, 삼천포 대방진굴항의 수목은 숲을 둘러싼 역사를 설명해 준다. 이런 관림의 노거수 말고 마을의 노거수는 마을의 역사를 들려준다. 그런 이런 노거수는 소개를 보면 수목만 소개하고 마을로 이야기를 이끌지 않는다. 그 나무가 수백 년 동안 지켜보았던 마을의 이야기가 없다.  


  


# 식물로 사람의 흔적을 더듬다

식물학자는 식물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읽는다. 한 때 화전민촌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는 곳에서 인간이 남긴 식물로 식물학자들은 ‘시간의 나이’를 읽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이 뿌린 씨앗으로 공간을 읽는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멋진 식물 탐험이 될 것이다.     


# 블록버스터 식물 유감

수목에도 블록버스터가 있다. 벚나무, 수국, 핑크뮬리는 대한민국 3대 블록버스터 식물이다. 전국의 벚꽃동산이 수국동산 되었다가 이제 핑크동산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삼천리 금수강산을 벚꽃과 수국과 핑크뮬리로 꾸며야 한다는 관광 전문가들이 있다. 개인이 벚꽃이나 수국 혹은 핑크뮬리를 좋아해서 정원을 꾸미는 것이야 권장할 일이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 민간 식물원과 수목원의 땀냄새를 맡으러 가는 여행

지산지소처럼 지산지목이라는 말을 쓴다. 그 지역에 맞는 수목을 써야 제대로 숲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흔한 가로수가 아니라 지역의 특산 식목을 가로수로 조성한 곳을 알아본다.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서 수목을 조성했던 이들을 조명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민간 수목원의 아성인 천리포수목원을 비롯해 관록의 포항 기청산식물원, 패기의 포레스트수목원 등 민간 조성 수목원이 관광산업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들인 노력을 알아봐 줄 필요가 있다. 


  

# 남북 교류의 씨앗 뿌리기

: 남북 산림 협력의 측면에서도 수목 관광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우리 조상들은 나 한 간 달 한 간에 강산은 둘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겠다며 ‘차경’을 정원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북한의 산하를 차경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북한의 산림을 복원하는 것이다. 북한 산림 복원을 위해 양묘장을 조성하는 것은 북한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일이기도 하다. 


# 남북이 함께 '비밀의 숲' 가꾸기 

일본에는 22세기 숲이 있다. 100년 동안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얘기다. 남과 북이 함께 22세기 숲을 가꿔서 후손들에게 넘겨주었으면 한다.  북한은 우리와 기후대가 달라서 수목도 다르게 형성된다. 이런 북한지역 수목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남북 교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 백두산과 금강산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만 북한이 식물보호구나 자연보호구로 설정하고 보존하는 곳은 자강도 오가산과 낭림산 그리고 함경북도 관모봉같은 곳이다. 이곳을 남북이 함께 '비밀의 숲'으로 남겨도 좋을 것이다. 


# 식물 여행의 종착점

나를 닮은 식물 찾기. 그래서 식물을 2인칭으로 대해 보기.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다산의 여왕이라는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를 가꿔서 사람들에게 분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올 가을에 섬여행을 가야 하는 7가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