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15. 2023

중산층의 재해석

여행감독의 입장에서 중산층을 재해석한다면...


우리 사회는 집을 둘러싼 세대 전쟁이 치열하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평생을 달려온 아버지 세대와 ‘하우스 푸어’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들 세대가 집값을 두고 기싸움을 벌인다. 집이 자산의 전부인 아버지 세대는 집에 대한 신앙을 아들 세대가 계승하기를 요구하지만, 아들 세대는 그런 신앙을 버린 지 오래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에게 집은 ‘넘사벽’이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출생)인 아버지 세대가 ‘내 집이 있는 삶’을 꿈꿔 왔다면 2차 베이비붐 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출생)인 아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한다. 그래서 요구하는 바도 다르다. 집을 보유한 사람이 다수인 윗세대는 정부에 집값 하락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압박하지만 집을 빌린 사람이 다수인 아랫세대는 정부에 집값이 아니라 전셋값 대책이 우선이라고 말한다(나를 비롯해).



사회의 주력이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전환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도 소유에서 존재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중산층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아버지 세대의 중산층은 집의 소유를 빼고는 정의할 수 없다. ‘집이 없는 중산층’은 아버지 세대에서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 세대는 다르다. 지금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는 존재의 질이 먼저다. 중산층 개념도 재정의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가 따르는 OECD 기준(중위소득 50%~150%)에 의하면 중산층은 월소득이 250만∼750만원(2012년, 4인 가구 기준)인 가구라고 한다. 4인 가족의 월소득이 250만원인데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의 중산층과는 거리가 있다. 월 소득이 750만원이라도 집이 없으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우리의 관점에서는 기준이 너무나 느슨한 편이다. 



OECD 기준은 중산층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중산층의 필요충분조건은 이보다는 높은 경제적 성취를 요구한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중산층은 중형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중형차를 타고 회사에서 중간자 위치에 있는 사람 정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안정된 오늘을 바탕으로 발전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중산층이다. 이 정도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합격 점수'를 넘는 중산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중산층 기준에 대해 다양한 문제제기가 제기된다. 선진국의 경우 '중산층'의 기준을 경제적 위치가 아니라 '건전한 문화인'인지 혹은 '행동하는 상식인'인지를 중심으로 정의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한 중산층 기준이 있는데, 외국어를 구사하고,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이 있고,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중산층의 요건으로 꼽는다.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기준이 있는데, ‘페어플레이 정신’ ‘불의·불평·불법에 대한 저항’ ‘약자를 두둔할 것’ 등이 중산층의 기준이 된다.



중산층은 기준이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경제적 기반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 주고,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이 갖춰야 할 소양과 태도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것은 어떨까? ‘이번엔 내가 낼게’라고 말하고도 낼 자신은 없지만 내고 싶은 마음만은 진심인 사람. 무리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손을 내밀기 전에 손을 잡아주는 사람.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중산층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다. 


여행감독의 입장에서 중산층 개념을 재정의 한다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지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공간, 시간, 인간이라는 '3간'을 바꿔 놓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르게 만나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주말에 일상에서 벗어나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있는지, 휴가 때 어느 여행지를 가는 것과 상관없이 일상으로부터 괴리된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 은퇴 후 삶의 공간을 바꿔서 다른 삶을 도모해 볼 여지가 있는지, 이런 것이 여행감독 입장에서 생각해 본 중산층의 개념이다. 


여행은 인생을 다르게 사는 일이면서 또한 두 번 사는 일이다. '중산'을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여행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여행복지'를 누리고 있느냐 없느냐가 현대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척도다. 어떤 셰프가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 자신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사실 '당신이 하는 여행이 당신 자신이다'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여행감독으로서 '모두를 위한 여행복지'에 좀더 애쓸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의 운동화끈과 리본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