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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09. 2023

인간관계의 운동화끈과 리본끈

대학 입학 30주년 기념모임에 다녀와서...


6시간 동안 행사를 하고, 3시간 동안 뒤풀이를 하고, 3시간 동안 운전을 하고, 다시 3 시간 동안 해장술을 했는데… 잠이 들어야 마땅한데 시차 때문인지 잠이 안 온다. 다른 동기들도 말한다. 자정 넘어 밤을 달려 해 뜨기 전 동해에 온 것은 대학시절 이후 처음이라고.


지금 삼척의 내 아지트엔 나처럼 15시간을 달려온 동기 여섯이 함께 있다. ‘입학 30주년 행사 마치면 곧바로 동해바다로 가자’는 미친 제안을 덥석 물었던 미친 동기들. 내가 쓰러져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들은 여전히 거실에서 해장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다. 



해외 일정 때문에 국내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다른 동기들에 비해 참가를 별로 하지  못했고 준비에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지난 6개월은 참 재미졌다.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으로서 나름 재미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이 재미는 이때가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누렸다. 


내게 ‘입학 30주년 기념행사’는 운동화끈을 다시 묶는 일이었다. 같은 해에 고대에 입학한 동기들이 인연의 끈을 다시 묶는 일. '직업적 모임 기획자'로서 참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다시 묶일 수도 있구나…'



사실 사람이 모이는 일 중에 최고의 모임은 여행이다. 파티가 단편영화라면 여행은 장편영화라 할 수 있다. 그 장편영화를 기획하는 여행감독으로서 '모임 전문가'라고 나름 자부하는데, 그런 내가 지켜보기에 한 해 동안 경이로운 텐션을 유지하는 모임이었다.  


보통의 모임이 리본끈이라면 입학 30주년 모임은 운동화끈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본으로 묶인 모임은 화려하다. 하지만 이 리본은 한번 가위질로 끊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리본이 아니라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다. 화려한 모임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텐션을 잃은 모임이 되살아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운동화끈으로 묶인 모임은 다르다. 풀려도 다시 묶을 수 있다. 30주년에 다시 만난 동기들에게 든 느낌은 바로 운동화끈을 다시 묶는다는 느낌이었다. 한 번 끊어지면 끝이 아니라 풀어지면 또 묶으면 되는 사이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 무서운 이유는 운동화끈처럼 다시 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혈연 지연 학연은 관계가 수직적이다. 반면 대학 동기 모임은 수평적이다. 수평으로 다시 묶이는 끈은 드문 경험이다. 여행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보자, 같이 모여서 등산하자, 함께 좋은 와인을 마시자며 다양한 끈이 새로 묶였다.  



예전엔 틀어진 관계를 되돌리려 사람들이 노력을 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관계의 회복에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다들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도시인의 고독’을 낳는 비결이다. 그런 세상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관계를 확인했다는 것은 정말 복된 경험이다.  


우리 나이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안 해본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행사와 뒤풀이 뒤에 동해까지 달려오긴 했는데, 경매하러 온 늙은 선장을 졸라 살수율 높은 꽃게를 사서 새벽부터 게맛도 보았는데, 이 나이에 이렇게 안 자고 놀아도 되는지, 걱정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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