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칼럼을 제안받았을 때 많이 주저했다. 그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당사자인 두 독자의 평이 걱정되었다. 지금은 그저 심드렁할 따름이지만 나중에 철이 들고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어떤 평가를 내릴지, “아빠는 뭐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칼럼을 썼어?”라며 타박이나 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썼다. 반성문을 쓴다는 생각도 있었고 만국의 ‘불량아빠’들을 대표한다는 변명도 있었다. 예전에 나영석PD를 인터뷰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회의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고.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내 글이 잘못된 아빠를 대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감 없이 썼다.
불량아빠의 변명은 다른 아버지들의 변명과 같다. 바쁨~ 바쁨~ 바쁨~ 바빴다. 정말 바빴다.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속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을 만드는 성격 탓도 컸다. 나의 30대는 곡절 또한 많았다. 파업을 했고 중징계를 당했고 동반 사표를 내고 매체를 창간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선 투쟁에도 앞장섰다.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소셜미디어 활동도 열심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헌책을 모아 책이 꼭 필요한 곳에 보냈던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와 ‘강정십만대권프로젝트’는 나의 주말을 희생하며 진행해야 했다.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 때문에 매주 토요일 자원봉사를 갔는데 1년 반 동안 약 11만 권의 책을 모으는 기적을 행하기는 했지만 그 시간만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했다.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를 한참 하던 때가 첫째 아이 유치원 다닐 때였다. 맞벌이라 주중에 아이를 처가에 맡겨서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날은 고작해야 주말 이틀인데 그중 하루를 자원봉사에 털어 넣었던 셈이다. 아이와 친해질 겨를이 없었다. 한 번은 얼결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데 깜빡하고 데리고 지하철을 타려다 아이가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야?"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늘 서먹서먹했던 아이가 “아빠 (저리)가”라고 나를 밀어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변명을 하며 프로젝트를 계속했다. 책을 나누는 일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라고, 결국 우리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자위했다.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는 안 쓰는 캐리어에 책을 담아 기증하는 ‘캐리어 도서관’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여전히 나는 책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며 자원봉사에 나간다.
벌인 일 중에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었던 일도 있기는 했다. ‘아빠랑 어디 가!’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여행 가는 아빠 여행팀을 만들었다. 주로 캠핑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엄마는 쉬게 하고 아빠들끼리 여행을 가서 아이들을 돌봤다. 아빠들끼리 나름 협업이 잘 되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줄 수 있었다. 아이의 여행 친구를 만들어 준 것에 작은 보람을 느낀다.
일을 벌이는 성격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304050 세대를 위한 여행 동아리 형태의 여행클럽을 구축하겠다면서 거의 매주말 여행을 간다. 더 나은 여행을 고민해서 우리 아이들과도 더 나은 여행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코로나19 국면이라 인원을 줄이느라 데리고 가지 못해 아쉬웠다.
그럴듯한 변명과 명분을 내걸기는 했지만, 달리 말하면 육아와 관련해서는 겉돌았던 아빠라 할 수 있다. 아이와 한 몸처럼 지내는 일체형 아빠의 칼럼이 아니라 아이 주변을 겉도는 인공위성의 심정으로 쓴 육아 칼럼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빠들이 있으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빠들에게는 나름 공감의 여지가 있었으리라 자위해 본다.
아이들에 대한 나의 마지막 변명은 그래도 숙련된 관찰자로서 둘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년의 기자 경험이 남긴 유산은 사물에 대한 관찰을 할 때의 집중력이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으로 답변을 유도해서 나름 인터뷰도 하고 있다. 일생을 바쳐 취재할 대상이니 앞으로도 열심히 관찰할 것이다. 둘 옆에서 영원한 관찰자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