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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11. 2021

아이 학교 행사에서 엄마들과 아빠들의 차이

엄마들이 레이다를 돌릴 때 아빠들은 멘붕에 빠진다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면 전철역 근처의 꼬치구이 집에서 한 잔 하곤 한다. 인근에서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그런데 이 가게에는 사연이 있다. 그 출발은 아이 학교 아버지회의 단체 캠핑이었다. 캠핑 때 식사조로 손맛을 뽐낸 아빠들이 있었는데 그중 몇몇이 동업해서 이 가게를 차렸다. 아버지회 멤버들이 마중물이 되어 이용해 주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얼마 전에는 업장도 확장했다.


아이 학교 아버지회 이름은 ‘굿파더’다. 참 단순한 이름인데 돌이켜보니 참 적절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름은 아빠들의 목표이기도 했으니까. 엄마들 중엔 엄마 역할의 아마추어가 드물고 아빠들 중엔 아빠 역할의 프로가 드물다. 그런 아마추어들의 집합이었던 ‘굿파더’는 초기에 무척 엉성했다. 의욕은 충만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일을 줘야 하는 학교 측도 주저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학교에서 부모를 부르는 자리에 가보면, 엄마들은 서로 인사하고 친해지려 하는데, 아빠들은 쭈뼛쭈뼛 서로를 외면한다. 엄마들이 '도움 되는 엄마가 누굴까' 레이더를 돌리는 동안 아빠들은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혼자 멘붕에 빠져 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아이를 찾고 가끔씩 눈을 마주치며 텔레파시를 즐긴다. 큰아이 작은아이 유치원 행사에서 거듭 확인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비슷했다. 아버지의 자리는 거의 없었다. 아이 학교 행사에 가보면 굿파더 회장은 종구품 정도 되는 미관말직이었다.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서열 1위다. 그를 시작으로 학부모회 독서어머니회 녹색어머니회 등 쭈욱 소개하다 굿파더 회장은 맨 마지막에 소개하거나 아예 소개를 안 하기도 한다. 아버지 중에는 직급이 교장선생님보다 높은 중앙부처 공무원도 있었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위치는 대략 머슴 정도의 위상이었다.


학교 행사 때 아버지들은 주로 서성거렸다. 뭔가 도움이 되기 위해 왔지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잘 모르고, 도와준다고 하는 일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몸 쓰고 힘쓰는 일을 도맡는다. 처음에는 미안한 듯 부탁하던 교사들도 이제 당연히 아빠들이 할 일인 것처럼 미션을 준다. 아빠들 입장에서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기분에 즐겁게 일을 했다. 



아빠들을 관통하는 마음은 ‘미안함’이었다.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도 바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공통된 정서였다. ‘굿파더’ 활동의 자발성은 그 미안함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단체 가족 캠핑 행사 등 스스로 일을 만들어 스스로 역할을 찾아갔다. 나도 혼자 답을 찾지 못한 입장이어서 아빠들과 함께 하며 ‘굿파더’ 흉내를 내곤 했다.


예전 단체 캠핑 때 그런 일이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캠핑장 청소를 마치고 철수하려는데 캠핑장 직원들이 와서 텐트 안을 걸레로 닦고 가라고 했다. 기가 찼다. 우리가 왔을 때 비가 들이치고 먼지가 쌓여서 우리가 청소해서 썼던 텐트였다. 그래서 항의했다. “당신은 콘도나 펜션 이용한 뒤에 걸레질까지 하고 나가나? 그걸 요구하려면 그 상태로 우리에게 대여해줬어야 요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뺀 모든 아빠들이 걸레를 들고 텐트 바닥을 닦고 있었다. 울컥했다. 논산훈련소의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 체험을 하던 어머니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어머니들은 자식이 하는 것은 자신도 꼭 해보고 싶다며 체력도 안 되는데 각개전투장에서 열심히 구르고 화생방실 가스 속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도 다들 “자식에게 너무 미안하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그 어머니들이 생각났다.



‘굿파더’ 활동을 하면서 좋은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을 체감했다. 차라리 예전의 좋은 아버지상이 단순 질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가부장제가 학력고사라면 지금 ‘프렌디’는 학적부에 기반한 수시 입학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하다. 어렵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과녁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엉거주춤한 '친구 같은 아빠'라는 개념이 있을 뿐. 그 친구가 인기 있는 친구인지 왕따 당하는 친구인지,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함께 있으니 답을 찾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귀감이 되는 아빠들이 많았다. 몇몇은 ‘아빠 학교’를 다녀오기도 했다.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마음가짐에 진정성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무렵 ‘굿파더’에서 만난 다른 아빠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많은 자극이 되었다. 우리 부모세대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4년 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굿파더 시즌2’를 하려고 했는데 여자아이의 세계는 조금 달랐다. 첫째는 아빠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따라온 아이들과 언제든 스스럼없이 어울렸는데 둘째는 자기를 중심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소수의 친구를 끈끈하게 만났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없는 ‘굿파더’ 행사는 둘째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 또한 주말이면 여행감독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굿파더’ 활동과는 멀어졌다.


그래도 ‘굿파더’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아빠들과는 지금도 계속 만난다. 몇몇은 내가 만든 여행동아리에도 들어와서 좋은 여행친구로 함께 여행도 다닌다. ‘굿파더’ 활동 덕분에 그저 거주지에 불과했던 아파트 단지가 내게 마을이 되었다. 퇴근길에 불러내면 5분 만에 달려 나와서 매콤한 닭꼬치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동네 친구들이 생겼다. 아니 불러낼 필요도 없다. 꼬치구이 집에 가면 이미 누군가 와 있다. 그냥 잔만 들고 합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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