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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07. 2021

도시 아이들에게 캠핑이 꼭 필요한 이유

캠핑의 시작은 다른 가족을 따라서 가거나 글램핑으로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어릴 적에 벌레를 무척 싫어했다. 벌레를 싫어했던 아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것도 싫어했다. 벌레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런 아이가 곤충과 익숙해진 것은 캠핑의 도움이 컸다. 캠핑장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 줍는 재미에 홀려 자신이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캠핑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빠들, 이를테면 ‘왜 좋은 숙소 놔두고 땅바닥에서 자느냐’고 생각했던 아빠들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캠핑을 염두에 두게 된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캠핑 갔다 온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아빠를 채근하기 때문이다. 이제 아빠의 취향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캠핑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아빠들에게 나는 무조건 글램핑(glamping)을 권한다. ‘글래머러스 캠핑’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글램핑은 텐트 설치를 비롯해 모든 서비스를 캠핑장에서 해주는 ‘이지 캠핑’의 한 종류다. 주로 대도시 근처에서 하는데 캠핑 장비가 없는 초보 캠퍼에게 좋다. 캠핑의 하드웨어는 이미 설치되어 있고 소프트웨어만 개인이 구현하는 모형이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바비큐 세팅도 해준다.


캠핑은 야외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인데 이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텐트를 치고 걷는 일은 집을 지었다 부수는 일이다. 이것도 힘든데 음식까지 준비하려면 기다리던 가족들의 민원이 쇄도한다. 그래서 캠핑 한 번 다녀와서 육수 한 사발 시원하게 뽑아낸 뒤에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하는 아빠들이 적지 않다. 데뷔전이 은퇴전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웬만큼 시설이 되어 있는 글램핑장에서 시작하고 캠핑 기분만 내보는 것이 좋다. 



아빠들에게 캠핑이 의미 있는 이유는

아이에게 아빠의 일하는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낮잠 자는 아빠, 텔레비전 보는 아빠, 컴퓨터 게임하는 아빠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캠핑의 진정한 의미다. 글램핑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가족들의 배를 불려주고 모닥불을 피워 따뜻하게 한 다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게 하면 가장으로서 매력이 뿜뿜 솟는다.


쉬운 것만 해도 충분하다.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은 고깃집에서도 많이 했던 일이다. 아침은 버너에 누룽지를 끓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한국인은 탄수화물이 부족할 때 허기를 느끼는 경우가 많으므로 누룽지 정도는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우려서 조용히 티타임을 갖는 것도 좋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나지막이 음악을 틀어주면 금상첨화다. 모닥불이 잦아들 무렵 은은한 무드 등을 키는 것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캠핑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설명서로 해결되지 않는다. 첫 캠핑을 아무런 준비 없이 가서 우왕좌왕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최악이다. ‘가면 어떻게 되겠지’ ‘옆 텐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하고 갔다가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가 처음부터 캠핑에 흥미를 잃는다. 쉬운 글램핑부터 시작해서 캠핑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캠핑에 적응하는 것이 좋다.


캠핑 전문가들은 캠핑을 하다 보면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캠핑 장비를 사는 것은 캠핑을 몇 번 해보고 난 뒤에 사라고 충고한다. 자신에게 맞는 캠핑 스타일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장비를 사라는 것이다. 갑자기 캠핑을 준비하게 되면 엉겁결에 캠핑 장비를 사게 되는데 반드시 다시 사게 된다. 처음 고를 때는 가성비가 좋아 보여서 샀는데 이용하다 보면 자신의 스타일에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램핑은 캠핑의 불편함을 싫어하는 엄마를 설득하는데도 좋다. 한국의 글램핑장 시설은 정말 글래머러스하다.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 일부러 찾을 정도다. 글램핑장에 같이 갔던 재미교포 선배는 “캠핑 와서 샤워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이 정도로 편리한 캠핑장은 없다”라고 말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캠핑장에서 ‘잠만 잘 분’을 위해 글램핑장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야매 캠핑’일 수도 있지만 글램핑으로 아웃도어 생활의 힘찬 시작을 해보길 바란다.



캠핑을 향한 아빠들의 이런 도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아이가 ‘숲맹’ 혹은 ‘생태맹’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글램핑을 가서는 아이에게 숲으로 들어가 보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호기심이 자연스레 아이의 발걸음을 숲으로 이끌었다. 원래 벌레가 많다는 이유로 숲을 싫어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노는 재미에 자신이 숲과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수확은 아이를 자연으로 이끄는 더욱 강력한 미끼다. 아이와 캠핑을 갔을 때 밤이 눈에 띄어 몇 개 주워 왔는데 아이가 부러워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밤을 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가에 떨어진 밤만 주웠는데 줍다 보니 산을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숲을 싫어하는 아이도 밤 줍는 재미에 홀려 따라 들어왔다. 보통 험한 산이 아니었다. 모기도 많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밤 줍는 재미에 빠져 아랑곳하지 않았다. ‘채집’이라는 원초적 경험이 숲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이었다.


캄캄한 곳에는 절대로 혼자 가지 않았던 아이가 멀리 떨어진 화장실도 혼자서 다녀오곤 했다. 간단했다. 머리에 헤드랜턴만 씌워주면 아이의 모험심이 아이를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좀비를 잡아오겠노라며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MBC <아빠 어디 가>에서처럼 자신들이 탐험하는 것을 찍어달라며 아빠를 ‘제작진’으로 옹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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