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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13. 2021

'욱테크', 부모가 화를 다스리는 법

아이에게 화를 안 내는 부모를 제일 존경한다


나이가 들면 존경하는 사람이 적어진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렇게 점점 감성이 무뎌가는 속에서도 존경심이 샘솟는 사람들이 있다. 유난한 아이 앞에서도 한결같이 의연한 아빠보살들이다. 옆에 있는 내가 다 욱할 지경인데도 냉정을 잃지 않는 아빠를 보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았을 때 육아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욱하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욱하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부끄러움이 솟아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욱은 수습도 잘 안 된다. 욱하고 난 다음 바로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은 두 행동 사이의 맥락이 잘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난감하다. 자칫하다간 사이코패스처럼 보일 수도 있고.


욱하고 난 다음에는 원초적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내 안의 아버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잊고 싶었던 아버지가 보인다. 어렸을 때 수시로 벌어지는 가정폭력을 보고 자랐다. 심각했다. 밤이 무서웠다. 어린 나에게 밤은 스승이 아니라 악마였다. 한 번 시작한 폭력은 아버지의 숨이 가빠질 무렵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반복되곤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아 더 무서웠다.


아버지의 욱은 형 중의 한 명으로 이어졌다. 형의 욱은 주로 어린 나를 향했다. 형과 나는 나이 차이가 열일곱 살이나 되었는데, 나는 형의 욕받이요 매받이였다. 형은 마을 어귀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오곤 했다. 그때부터 공포의 시작이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자는 척해보았자 소용없었다. 바로 위 누나와 함께 폭력의 세레나데를 감상해야 했다. 


형은 밥상을 자주 엎었다. 형이 밥상을 엎는 모습이 아직도 스틸 사진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밥을 빨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밥그릇에 이것저것 말아서 최대한 빨리 먹는 버릇이 생겼다. 다 먹지 못한 밥이 엎어지면 배로 서러웠으니까. 그 형을 향해 원초적 증오심이 생겨났다. 나중에 커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어린 주먹을 불끈 쥐며 설운 밤을 지새웠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아버지와 형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뒤로는 그 공포와 증오는 사라졌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욱할 때마다 내 안의 아버지와 혹은 큰형과 마주치는 것 같아 두려웠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겁도 났다.


지켜보던 아내가 엄명을 내렸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담당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아이들에게 욱하는 기분이 들면 바로 내 방으로 가서 SNS를 들여다보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반복하니 효과가 있었다. 나름 유체이탈이 되었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보면서 방관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처음에는 들기도 했지만 내가 나서봤자 수가 나는 것도 아니라는 체념이 익숙해졌다.



다른 아빠들은 어쩌나 궁금했는데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아빠 어디 가>를 흉내 낸 ‘아빠랑 어디가’ 여행을 꾸준히 진행했다. 엄마는 집에 두고 아빠들이 아이들만 데리고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그중 몇몇은 정말 존경스러운 인내심의 소유자들이었다.


‘아빠랑 어디가’는 엄청난 팀워크가 필요한 여행이다. 많은 인원이 여행을 하면 각자 역할이 있다. 그걸 하다 보면 자기 아이를 챙기지 못하기 쉽다. 그럴 때, 내가 우리 아이를 챙기지 않아도, 누군가 나 대신 우리 아이를 먹일 거야, 씻길 거야, 놀아줄 거야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팀워크가 갖춰진 ‘아빠랑 어디가’ 여행에서는 내가 일이 늦게 끝날 때 먼저 아이만 보내기도 하고 일이 있어서 먼저 올 때 아이를 두고 오기도 했다. 서로 빚을 주고받는 일종의 품앗이다.


‘아빠랑 어디가’를 통해 다른 집 아빠들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밀착해서 볼 수 있다. 다른 집 아이들의 유난 떠는 모습과 그에 반응하는 다른 집 아빠들의 평범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를 지켜보며 2단계 위안을 얻는다. 하나는 '우리 아이만 유난을 떠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다른 하나는 ‘다른 아빠들도 참을성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나는 보통 아빠다’라는 묘한 안도감을 얻곤 했다.


모든 아이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난을 떤다. 기껏 돈 들여 시간 들여 가족여행을 갔다가 욱해버려서 분위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빠랑 어디가’와 같은 여행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유난한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에게 관용도가 높아진다. 보통 아이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며 고집을 부릴 때 아빠가 욱하게 되는데, 다른 아이들과 섞여 있으면 아이의 트집도 희석된다. 다른 아이들이 감내하는 걸 혼자 고집을 부리는 아이가 없지는 않지만 평소보다는 월등히 나아진다.


아빠 또한 욱할 타이밍을 조절하게 된다. 여행의 분위기를 위해서 혹은 체면을 위해서. 다른 아빠가 대신 지적을 해주기도 하고, 아니면 간단한 투정 정도는 받아주기도 하면서 고비를 넘긴다. 이런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은 가족 여행과는 뭔가 다른 단체 여행의 경험을 획득하게 된다. 가족여행도 좋지만 ‘여럿이 뭔가를 함께 이룬 느낌’을 주는 이런 단체 여행도 좋다. 아마 아이도 이런 여행이 나중에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다른 집 아빠도 다르지 않다는 것도 확인하니 불만도 줄어들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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