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 인문 기행'을 주제로 한 특강이 끝나자 교장선생님들이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싸인 대신 명함을 드렸다. 예상했던 일이다. 전직 기관장 모임에서도 나는 아이돌이었다. 아마 대기업 전현직 임원을 대상으로 한 여행 특강을 해도 이런 '렬렬한' 반응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여행자로 치면 중상급자다. 방학이 있어 다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보다 여행을 많이 해보았고, 퀄리티 있는 여행 경험 또한 많을 것이다. 연수의 기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그들이 왜 나에게 열광했을까?
간단하다. 여행의 미적분을 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풀어주는 곳은 많다. 가성비 좋은 패키지여행을 만드는 걸 잘하는 여행사는 많다. 나는 이런 여행의 사칙연산에 약하다. 싱가포르 여행 때 현지 티켓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검색한 사람은 조카였고, 나는 매번 감탄했다.
문제는 여행의 미적분이다. 두루 여행을 경험해본 사람은 그 이상을 원한다. 그리고 그 이상을 이끌어줄 사람을 알아본다. 여행의 가성비 숙제를 풀어줄 곳은 많다. 관건은 가심비다. 조카가 가성비 좋은 여행 방식을 검색하는데 정통하다면, 즉 여행의 합리적 소비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나는 싱가포르에 가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곳을 찾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생애 전환 여행, 인생 2막의 여행은 달라야 한다. 왜? 죽음으로부터 역산하면 지금 해야 할 여행의 방식이 선명해진다. 무조건 돈을 아끼는 여행, 한 번 가서 여러 곳을 두루 둘러보는 여행, 좋다는 곳은 무조건 가보는 젊은 날의 여행법은 더 이상 의미 없다.
다시, 교장선생님들은 왜 나의 여행 기획에 뜨겁게 반응했을까?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노는데 최선을 다한 사람을 알아본다. 내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들은 이해했다. 그들은 남들보다 빨리 출세했다. 빨리 출세했다는 것은 빨리 나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이를 깎아줄 여행이 필요하다. 내 여행은 거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나이를 깎는다는 것은 나보다 어린 세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시니어들에게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여행을 함께 할 때 주지하는 것이 있다.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 따로 또 같이, 선을 넘지 않는 배려'가 여행을 통한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 클럽의 가치라고.
여행 기획에 있어서 1타 강사라고 자부한다. 누구든 나에게 여행 기획을 내밀면 바로 열 가지 정도 부족한 점을 지적할 자신이 있다. 우리의 여행은 아직 날카롭지 못하다. 여행 기획을 뾰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에 대한 이해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생애 전환 여행, 인생 2막 여행, 시니어 여행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마음은 한비야인데, 몸은 하나투어', 대부분의 바쁜 현대 도시인들이 그렇다. 2030에는 휴가 때 동남아 휴양지에 가고, 4050에는 유럽 패키지여행을 해보고, 은퇴한 후 6070에는 오지나 럭셔리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 순서를 조금만 바꿔도 여행의 질이 달라진다. 오지는 '다른데 다 가보고 안 가본 데 가고 싶어서' 가면 늦다. 모험심이 있을 때 가야 재밌다. 시스템이 안정적인 유럽 패키지여행은 나이가 들어서 가도 된다. 동남아 휴양지도 휴가 때마다 가면 거기서 거기다. 럭셔리 패키지는 젊었을 때는 어쩌다 한 번, 나이 들어서는 두 번 중 한 번 정도로 더 빈번하게 가면 된다.
여행은 경험치의 세계다. 자주 가면 여행자로서 성장한다.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을 계속 이용할 필요 없이, 호텔팩으로 바꿔서 현지 여행만 직접 골라도 여행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그러다 자신감이 붙으면 자주 갔던 곳에 지인들을 데려가서 여행감독 역할을 해도 좋고.
젊을 때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다시 올 이유를 찾는 것도 괜찮다. 답사를 왔다는 마음으로.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여행보다는 멈추기 좋은 곳을 가는 것이 낫다. 월드컵을 중계하며 이영표가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다"라고 했는데, 여행도 마찬가지다. 인생 2막의 여행은 여행지에서 잘 뽑아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을 때 필요한 것은 큐레이션 능력이다.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경험을 쌓으면서 나와 가장 잘 맞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곳에 머무르는 여행이 잘 뽑아내는 여행이다.
4050 세대가 여행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여권에 도장은 많이 찍히는데, 사실 여행다운 여행을 하기 힘들다. 가족을 데리고 가거나 일로 가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 여행처럼 모험적이지도 않고 나이 먹어서 가는 여행처럼 여유롭지도 않다.
그래서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을 구축하고 4050 세대를 위한 여행 숙제를 풀고 있다. 그들의 ‘여행감’을 살리는데 주목한다. 여행이 인생 중간정산이 되고 인간관계 중간급유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시 여행감을 회복하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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