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통편집을 당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기분이 나빠서 쓰는 글은 아니다. 기자를 20년 한 입장에서, 주제에 맞지 않는다면 취재했더라도 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병가지 상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언론계 출신이 시비 걸 일은 아니다.
다만 방송 촬영을 위해서 여행사 대표들을 내가 섭외해서 불러왔을 뿐이고, 어쩌다 기온이 급강하한 날 야외 촬영을 했을 뿐이고, 간만에 방송에 나온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라고 설레발을 좀 쳤을 뿐이고...
우리가 통편집당하고 우리 자리에 들어간 것은 하나투어였다. 하나투어가 전 직원 출근제를 실시한다는 것이 대체재로 들어갔다. 오늘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투어에 대한 것이다. 기승전-하나투어가 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절묘한 우연이었다. 하나투어는 여행 개발을 안 해도 된다. 다른 여행사들이 개발하면 그것은 결국 하나투어 것이 된다. 사람들은 그런 여행을 모르는 여행사가 아니라 하나투어에서 가고 싶어 한다.
여행의 저작권은 보호받기가 힘들다. 비유하자면 사춘기 때 '내가 쟤를 먼저 좋아했으니까 넌 딴 애를 좋아해'라는 논리가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숙박을 직접 지었거나 식당을 직접 지은 게 아니면 독점이 힘들다.
보호받을 수 있는 여행 콘텐츠는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 정도다. 이 정도로 독점권을 확보하지 않으면 저작권을 지키기 어렵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남의 여행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여행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흔들리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음 프리미엄 패키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하나투어는 걸음마 단계다. 하나투어에는 '제우스'라는 프리미엄 패키지 브랜드가 있는데 관광경영학과 신입생도 기획할 있는 수준의 항공/호텔 업그레이드 방식 일색이다.
하나투어 제우스의 가장 큰 문제는 제우스가 없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안 보인다. 집사들만 보인다. 이러면 절대로 최고급이 될 수 없다.
언론사에 있던 후배가 이어령 선생을 헤드라이너로 세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유럽 패키지여행 에피소드를 말한 적이 있다. 참가자가 패키지여행의 서비스를 문제 삼자 이어령 선생이 "겨우 돈 몇 푼 내고 얼마나 더 대접을 받으려고 그래?"라고 하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고.
제우스는 고급 요양원의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시설과 서비스는 최고지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로만 가득 찬 마음의 지옥.
모르는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은 결코 고급일 수 없다. 아는 사람과 가거나 알아두면 좋을 사람들과 가는 여행이어야 한다. 여기서 제우스는 한계가 있다. 단지 항공과 숙박을 업그레이드한 '비'싸구려일 뿐이다.
여행의 독점은 보통 항공권과 숙소의 독점으로 나타난다. 기존 여행사 특히 하나투어의 강점은 '블록 항공권'이었다. 이전 실적을 바탕으로 인기 구간의 인기 계절에 항공권을 블록 치는 것. 그런데 당분간 이 장점은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여행이 어떤 속도로 어느 정도 회복될지 짐작할 수 없으므로.
숙소의 경우 천하의 하나투어도 대륙의 여행사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들의 막강한 자금력을 당해낼 수 없다. 여기서도 독점 구조는 어렵다.
다시 여행클럽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은 강력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는 여행클럽이 필요한 국면이다.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을 구축하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1990년대 초중반 X세대'의 30년 후 '여행 연합 동아리' 콘셉트이라 다양한 세대의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주진 못한다.
여기에 '여행감독'제도를 더했다. 우리는 기획사 역할을 하고 여행사가 제작사 역할을 해서 콜라보로 여행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행업은 이미 전문화된 업종이다. 여행 제작은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