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음식은 재즈적이다. 서울 음식을 클래식이라고 한다면 전라도 음식은 재즈다. 클래식의 핵심은 하모니와 밸런스다. 서울 음식이 그렇다. 재즈의 핵심은 개성과 믹스 앤 매치다. 전라도 음식이 그렇다. 홍어 삼합을 보라. 얼마나 재즈적인가, 홍어가 트럼펫처럼 치고 나가면 신김치가 재즈피아노처럼 간드러지게 만들고 돼지고기 수육이 베이스기타처럼 받쳐준다.
전라도 음식은 손맛이다. 그래서 '우리집은 무슨 요리를 잘한다'를 내세우지 않는 집이 많다. '나는 다 잘한다'는 의미다. 어떤 재료를 갖다 주어도, 어떤 조리법이든 다 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전히 전라도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지역이고, 식당들의 평균 점수도 높고, 대체로 가성비도 좋다.
하지만 개선될 부분도 있다고 본다. 전라도 출신 아재가 전라도 여행에서 '보류'로 분류하는 전라도 음식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4050 아재입맛을 기준으로 본 아쉬움이다. 전라도 음식을 기대하고 여행감독을 따라온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고민한 내용이기도 하다. 암튼, 전라도는 더 맛있어질 수 있다.
1) 홍어정식은 투머치다. 전라도 음식은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다. 절묘한 조합의 미학이다. 홍어는 삼합으로 충분히 완벽하다. 그런데 홍어회무침 홍어전 홍어튀김 홍어애탕 등등 홍어음식을 순서대로 십여 가지 먹는 것은 만용이다.
2) 마찬가지로 젓갈백반도 투머치다. 전라도 음식 중 다른 곳에서는 조연인 식재료가 주연이 되는 경우가 있다. 애호박찌개가 그렇다. 다른 곳에서는 돼지고기애호박찌개라고 부를 것을 전라도는 애호박을 주연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젓갈을 주연으로 올리는 것은 좀 무리인 것 같다. 염전 바닥을 핥을 생각이 아니라면.
3) 육전 전문점은 투머치다. 전복라면은 전복집 요리인가, 라면집 요리인가? 라면집 요리다. 육전집은 고깃집이 아니라 전집이다. 여기에 고깃집 가격을 내는 것은 투머치다. 전라도에 가면 꼭 '생고기'를 먹어보길 권한다. '육사시미'라는 거한 이름을 쓰지 않지만 진짜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4) 굴비정식, 꼬막정식, 백합정식, 낙지정식 등등의 주제의식을 강조한 밥상은 후크송을 듣는 느낌으로 먹을만하다. 하지만 구색만 맞춘 집에 가면 실망할 수 있다. 잘하는 집에 가야 한다. 법성포에 가면 굴비정식집이 수십 여곳, 벌교에 가면 꼬막정식집이 수십 여곳 있다. 정말 잘 골라가야 한다.
5) 건정은 굳이 민어를 탐하지 않아도, 농어로 충분히 족하지 않나 싶다. 투뿔 소고기로 숙성시키지 않고 2등급 이용하듯이 농어건정으로도 만족할만한 맛을 얻지 않나 싶다. 어쨌든 생선을 적절하게 건조해서 다른 맛을 뽑아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6) 다른 음식에 들이는 정성에 비해 밥에 소홀하다. 스탠 공기가 아닌 밥그릇에 고슬고슬한 밥을 내놓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경기도 이천에 가면 밥맛으로 만도 충분히 행복한 곳을 만날 수 있는데 곡창지대인 전라도에 이런 집이 드물다.
7) 밑반찬에 샐러드를 놓는 등 1980~1990년대의 아웃 오브 데이트한 그 시절의 플렉스 한 밥상을 내놓는 곳이 아직 많다. 그릇도 대충 쓰고 그릇에 음식도 대충 담는 곳이 많다. 그리고 반찬 가짓수는 많은데 젓가락 갈 곳이 없는 밥상도 제법 나온다.
8) 재료 본연의 맛을 내려는 노력이 경상도보다 부족하다. 무조건 무치고 버무리고 때려 넣어 끓이려고 든다. 경상도가 지리라면 전라도는 매운탕이다. 전라도 매운탕 맛은 좋다. 하지만 생선 종류에 따라서 지리로 먹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적정 양념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9) 경상도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음식점이 없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레시피로 덤비는 식당을 찾기 힘들다. 반면 경상도에 가면 이런 시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전라도 음식은 다른 곳에 비해 정체되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