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물회로 인상적이었던 곳은 포항 죽도시장과 대보항 등대횟집, 강릉 사천항 물회골목, 속초 청초수물회, 통영 연화도의 출렁다리횟집 등을 꼽는다. 여행감독의 3대 물회를 꼽아보라면 '통영 출렁다리횟집의 전갱이물회, 포항 대보항 등대횟집의 횟밥&해물탕 그리고 물회의 정석을 보여주는 속초 청초수물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는 물회로 크게 실망한 적이 두어 번 있다. 공덕역 단골집에서는 모둠물회를 시켜서 직장 선배들과 먹고 다들 죽다 살아났다. 그때 이후로 여름에 모둠 물회는 절대 안 먹는다. 방이시장에서 물회로 유명하다는 집에 가서는 가성비가 너무 안 좋은 건성 물회를 보고 데려갔던 지인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무려 10만 원짜리 물회였는데 야채들 사이에 해물 몇 점이 헤엄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고만고만한 물회를 먹다가 포항 죽도시장에서 물회를 먹고 '이게 제대로 된 물회다'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동대구횟집 혹은 새포항물회가 유명한데 어느 집이었는지는 오래되어 헷갈린다. 회를 물에 무책임하게 빠뜨리지 않고 새콤달콤한 얼음샤베트 소스장을 얹어서 나왔다. 서울에서 물회를 먹을 때마다 '왜 고기를 물에 빠뜨릴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죽도시장에서 좋은 솔루션을 보았다. 들어보니 그것도 10여 년 남짓 된 스타일이라고 했다.
'전라도 아재가 인정하는 경상도 맛집'에 디렉션을 주시는, 오래 포항에 살고 계시는 권일쌤에게 들어보니 원래 포항 물회 스타일은 '횟밥'이라고 했다. 얼음샤베트 소스장은 신상 물회 스타일이고 원래는 그냥 초고추장을 얹어 주었고 그보다 전에는 찰고추장에 막회를 비벼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통 포항 물회 맛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따라간 곳이 바로 대보항 등대횟집이다. 거기서 물회의 기원인 '횟밥'에 대해 알게 되었다.
횟밥은 뱃사람들이 배 위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찬밥 위에 회를 얹고 고추장을 떠서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비벼먹는 스타일이었다. 이때 고추장은 초고추장이 아니라 찰고추장이었다고 합니다. 퍽퍽해서 횟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미역국이나 해물탕을 같이 먹었다. 그런 맥락이 있어서 지금도 횟밥을 파는 곳은 꼭 미역국이나 해물탕을 내준다.
등대횟집에서 횟밥+해물탕이 얼마나 절묘한지 체험했다. 횟밥과 함께 나오는 해물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깊은 맛이었다. 명목상으로는 횟밥을 시키면 해물탕이 딸려 나오는 것이었는데, 해물탕이 너무 훌륭해서 해물탕을 시키면 공깃밥 대신 횟밥이 나온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포항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다.
강릉과 속초의 물회는 대체로 '관광물회'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서울보다 더 서울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인들은 회의 감칠맛을 즐기는데 한국인은 씹힘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우럭과 광어를 주로 먹는데 강릉과 속초에는 대중이 선호하는 광어를 메인으로 삼는 곳이 많다. 참고로 포항 죽도시장 등에서는 광어보다 가자미가 일반적이다.
보통 동해안에 갔을 때 물회를 먹으러 가는 곳은 강릉 사천항 물회골목인데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 광어를 메인으로 하는 것 같고. 고만고만한 곳들 중에서 발군은 속초의 청초수물회라고 생각한다. '공장제 요식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청초수물회는 물회의 스탠더드를 잘 정립한 것 같다. 해산물의 다양한 구성, 플레이팅, 양과 가격 등 여러 면에서 연구를 많이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다.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반주를 곁들여 한 끼 식사를 하기에 딱 좋다.
남해안에는 된장 양념 베이스 물회를 종종 볼 수 있다. 된장이 초장보다 회와 조합이 더 좋은 것 같다. 밸런스를 잘 맞추면 정말 최고인데, 회무침도 된장 베이스 양념으로 하면 더 구수해서 좋다. 초고추장 과잉 사회에서 정말 단비와 같은 맛이다.
남해안 물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통영 연화도의 전갱이물회였다. 전갱이 특유의 감칠맛이 돌아서 이전 물회에서 느낄 수 없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번 갔고, 회를 자주 먹는 분들이었는데 모두 인정하는 맛이었다. 회를 굳이 물회로 하는 이유를 전갱이물회를 먹으면서 알 수 있었다.
제주 물회는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해삼보다 멍게를 더 좋아하는데 제주 물회는 식감이 해삼 베이스라서. 전복도 물회에 맞는 해산물인가 싶고. 자리는 너무 거칠어서 삼키기가 힘들고. 내 이빨이 부실한 것인지. 암튼 제주 가면 회나 회국수를 먹지 물회는 잘 안 먹게 된다.
물회와 횟밥 그리고 회덮밥, 모두 회를 한 끼 식사로 해결하기 위한 방식인데, 더운 여름에 한 번쯤 생각나는 메뉴다. 모두가 마음속에 나만의 물회를 품고 사는데, 애정하는 물회집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