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감독으로서 어른을 위한 여행클럽을 구축하고 있다. 그 전제는 여행이 생애 전환 기술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참 사회생활이 정점을 치달을 때, 돌아보면 번아웃된 자신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과 소원해지는 빈곤을 깨닫게 된다. 그때 좋은 여행은 인생의 중간정산이 되고 좋은 여행친구는 인간관계의 중간급유가 된다.
양현모 작가는 여행이 생애 전환 기술이 된다는 명제의 좋은 전범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양 작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조기 은퇴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교사 시절 매주말 여행을 즐겼던 그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여행 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다양한 여행 아이템을 지닌 양 작가 덕분에 풍요로운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다.
여행은 경험치의 세계다. 누구나 여행지에 관한 책과 사진 혹은 영상을 보며 여행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관점을 가진 사람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양 작가는 여행클럽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아침가리계곡으로 사람들과 함께 계곡트레킹을 갔을 때의 일이다.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코로나19로 탐방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태풍이 와서 계곡을 통제하는 것도 아니고 전염병 때문에 계곡을 통제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했다. 혼자 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우르르 데려온 입장이라 더욱 그랬다.
그때 양현모 작가의 풍부한 경험이 빛을 발했다. 아침가리계곡 인근의 개인약수 계곡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맘때쯤 개인약수 쪽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가보니 계곡의 수량도 풍부하고 물도 맑았다. 막대기를 두들기면 바위들이 <겨울왕국> 트롤처럼 일어나 춤출 것같이 이끼도 예쁘게 끼여 있었다. 한여름 피서산행으로 그만이었다.
인생 2막은 국영수가 아니라 예체능에서 갈린다. 성적이 아니라 향유라는 이야기다.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제 몸을 움직여 ‘불편한 사치’를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양 작가는 인생 2막의 우등생이다. 드로잉과 수묵화로 개인전을 열만큼 역량 있는 화가가 되었고 캠핑과 등산 등 아웃도어 활동 역량도 프로급이기 때문이다.
양 작가의 인생 2막 여행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아지트 구축법’이다. 자신이 공간의 주인과 꾸준히 관계 맺기를 한 후에 지인들을 그 공간으로 이끈다. 일반 숙박업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마치 외갓집에 다녀가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곳을 전국에 여러 곳 구축했다.
처음에는 폐교를 임대해서 직접 공간을 꾸며서 활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간을 채우고 꾸미는 재능이 있는 사람과 공간을 활용하고 향유하는 성향의 사람이 다른데 양 작가는 후자 쪽이었다. 주말이면 이산 저산 등산을 가고 백패킹으로 여기저기서 캠핑을 하는 그에게 한 장소에 붙들려 있는 방식은 그리 맞지 않았다.
지난겨울 양 작가가 구축한 연가리계곡의 산장에 가보았다. 곳곳에 양 작가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산장 주인은 양 작가가 함께 만들어 준 시설이라며 이곳저곳을 우리에게 안내했다. 양 작가는 제주도 애월에서도 자신이 전시를 했던 전통가옥 갤러리를 함께 꾸미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덧칠한 뒤에 지인들을 초대한다.
‘아지트 구축법’과 함께 양 작가의 여행법 중 주목할 부분은 ‘노하우 공유법’이다. ‘셋이 함께 가면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 격언이 있는데, 양현모 작가는 여행에서 좋은 스승이 되어준다. 누구나 여행을 가면 새로운 취향과 취미에 관심을 보이는데 양 작가는 자신이 가진 등산이나 아웃도어 경험 그리고 드로잉과 스케치 노하우를 기꺼이 알려준다. 간단히 핵심을 설명하고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보통의 여행은 사진이 남는데 양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그림이 남는다. 사진은 흔하지만 그림은 드물다. 같이 갔던 여행을 그림으로 복기하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뭔가 여행의 격이 높아지고 추억을 더 깊이 음미하는 느낌이다. 함께 드로잉과 스케치를 하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지만 양 작가 혼자 그려서 나중에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 작가에게서 배울 마지막 여행법은 ‘창조하는 여행법’이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은 창조의 기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드로잉과 스케치를 통해 양 작가는 이 기쁨을 누린다. 지난해 제주 올레축제 때 올레길을 걸으며 그렸던 그림을 전시하고 서울 미음갤러리에서는 여행의 순간들을 수묵화로 재현한 그림을 전시했다. 두 전시회의 제목은 모두 ‘양현모의 그림길’이었다.
양현모 작가의 여행법 세 가지, ‘아지트 구축법’ ‘노하우 공유법’ ‘창조하는 여행법’은 생애 전환 기술로서 여행을 활용하려는 중장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방식이다. 여행을 더 재미있게 하려면 의미 있는 여행을 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모두 의미 있는 일을 하면 계속 재밌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