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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pr 26. 2022

MZ세대에게 배우는 '루틴이 있는 삶'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구성된 '행복의 루틴'이 필요하다


올해 ‘동유럽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를 체코의 데친시를 중심으로 진행해 보았다. 시즌1 시즌2, 두 번의 참가자 중에서 ‘여행감독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수행한 참가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낸 참가자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맛있는 빵을 파는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고 제일 좋은 과일을 파는 가게에서 제철 과일을 사와서 일행의 아침을 열어주는 것으로 그의 루틴은 시작되었다. 분명 멋진 한 달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트렌드 분석가를 만났는데 요즘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루틴이 있는 삶’을 꼽았다. 다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내려 하고 이를 반복한다고 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중히 하는 세대라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루틴을 구성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MZ세대의 루틴은 대부분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루틴 짜는 법’으로 유튜브 검색을 해보았더니 ‘데일리 루틴, 습관보다 더 효율적인 반복 목표 실천법’ ‘아침형 인간 - 모닝루틴 시간대별로 공개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겐 그만의 루틴이 있다’ ‘인생을 바꿔줄 규칙적인 루틴 만드는 법’과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줄줄이 나왔다.


루틴을 짜는 데 있어서도 스펙 강박이 엿보였다.'자기 책임 윤리'와 '능력주의'에 함몰된 모습같아 안타까웠다. '소확행'이란 이 자기계발 루틴의 쉼표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MZ세대의 자기계발 루틴을 중장년을 위한 행복의 루틴으로 변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는 건축가가 자신의 뉴욕 루틴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은 뉴욕에서 건축을 배우던 때가 가장 좋았다고, 힘들고 바쁘게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그래서 뉴욕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면 한 번씩 간다고. 그런데 뉴욕에 가서 대단한 명소를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자신이 보냈던 평범한 일상을 재현한다고.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바쁜 뉴욕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커피 마시기, 센트럴파크에서 나만의 루트로 어슬렁거리기, 퇴근길 펍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이런 것들을 재현하고 온다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소확행으로 가득 찬 일상의 루틴을 구축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해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롭게 느껴지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낸다면 일상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흔히 여행을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보는 눈을 갖는 행위라고 한다. 그런 눈을 가지고 일상을 재해석한다면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행복 루틴'을 짜는 일은 일상을 여행으로 변용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둘러보면 나에겐 하찮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의미를 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일상을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면 '나만의 행복 루틴'을 짤 수 있다.



명산보다 뒷산이라고, ‘아차산 루틴’을 즐기는 편이다. 자주 가기 때문에 아차산의 좋은 곳, 좋은 순간, 좋은 풍경을 두루 알고 있다. 기본 루틴을 구축했지만, 그때그때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변용한다. 또 혼자 오를 때 루틴과 여럿이 함께 오를 때 루틴이 다르다. 자주 가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롭다. 사람은 반복하는 행동 안에서 또한 섬세해지기 때문이다.


‘루틴이 있는 삶’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첫 질문부터 막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남들이 좋다는 것을 ‘내가 해도 좋겠지’ 하며 따라 하곤 한다. 루틴이란 삼겹살 쌈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내가 원하는 부위를 골라서, 내가 원하는 만큼 굽고, 내가 원하는 쌈채소를 집어,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밥과 고기를 넣고, 내가 원하는 쌈장과 고명을 넣어서 먹는 일이다.


‘루틴이 있는 삶’을 위해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창조를 위한 루틴일 때 지겨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만큼 설렘을 주는 것이 없다. 어쩌면 칸트가 매일 똑같은 코스를 똑같은 시간에 산책했던 이유는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에 최적화된 루틴은 지겨울 겨를이 없다. 가수 조용필씨나 소설가 김훈씨와 같은 대가들의 삶이 그랬다. 그들은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루틴 안에서도 빛나는 창조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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