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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May 09. 2022

천하의 김정운 교수가 깍듯이 모시는 여수 화가

인생도처유상수, 여수의 고수는 바로 박치호 화백


여수의 박치호 화백은 김정운 교수를 통해 처음 뵈었다. 자존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 교수가 여수에서는 누군가의 ‘똘마니’를 자처했다. “고 기자, 나는 여수에서 다른 사람은 안 만나. 박치호 화백만 만나고, 박 화백이 만나라는 사람만 만나고, 박 화백이 사라는 것만 사고, 하라는 대로만 해.” 박치호가 누구길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뵌 박 화백은 ‘인생도처유상수’의 ‘상수’라 할만한 분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김정운 교수가 ‘똘마니’를 자처할 만했다. 소탈하면서도 격조가 있었고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났다. 서울에서도 소문난 멋진 살롱을 가지고 있던 김 교수가 “내 화실은 예고편이고 박 화백의 화실이 본편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직접 가보니 수긍이 갔다.


박 화백은 여수에 통달하고 세상에 통달하고 사람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가 안내하는 여수는 이전에 알던 여수가 아니었다. 깊이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여순항쟁(여순반란사건이 아니라며)’을 예술을 통해 재조명하려는 노력이나, 불우한 장애인이었던 손상기 화백이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도모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박 화백의 화풍은 거센 바람을 맞으며 이를 이겨내고 단단해진 바위 같았다. 인물의 토르소를 무채색으로 그렸는데, 얼굴도 손발도 없는 어두컴컴한 몸뚱이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여순항쟁’의 한이 그 무채색 토르소에 녹아들어 있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토르소 그림의 ‘이어반복(異語反覆)’이 흥미로웠다.


박 화백의 토르소 작품에서 느낄 수 있던 주된 감상 중 하나는 민중미술의 격조였다. 굳이 갈래를 나누자면 박 화백은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의 주된 정서 중 하나인 ‘부유’는 ‘여순사건’의 예술적 후유증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사건이 아닌 사람을 파고들었다. 



박 화백의 시그니처 이미지는 토르소다. 손발과 머리가 없는 몸통으로만 표현한다. 토르소 외에 눈코입이 없는 두상도 자주 그린다. 손발과 머리가 없는 토르소, 눈코입이 없는 두상은 기억의 마모를 보여준다. 왠지 그 무명의 형상들이 이름을 찾지 못한 여순항쟁 피해자들의 도상처럼 보인다.


민중미술은 보통 가해자에 대한 희화화로 시작한다. ‘저항예술제’에 갔을 때 수십수백의 박근혜 도상을 보았다. 그만큼 화가 나고 밉고 싫고 혐오하고 증오해서였겠지만, 비꼬고 희화화하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다. 그런 불편한 동어반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주제의식을 붙들고 내면을 파고드는 박 화백의 이어반복은 그래서 의미가 더 있다. 민중미술도 결국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수렴되었을 때 빛을 발한다.


반복되는 토르소 그림은 작가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도 읽히고 그 안에 나의 토르소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를 알기에, 작가가 어떻게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 또 어떻게 세상을 관조하는지,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아무튼 박 화백을 통해 작가의 작업실이 훌륭한 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화백의 작업실은 살롱으로도 매력적이다. 일반인이 아티스트의 아뜰리에로 상상하는 이데아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인들과 여수를 여행할 때 박 화백 작업실 방문을 여행의 헤드라이너로 삼았다. 아무리 뛰어난 인테리어도 예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박 화백 작업실에서의 커피 한 잔이나 와인 한 잔은 그 어떤 핫플레이스에서의 시간보다 귀했다.


박 화백과의 인연이 쌓인 섬은 여수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금오도다. 걷기 여행자들에게는 ‘금오도 비렁길’ 때문에 잘 알려진 섬으로 여수 섬 중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섬 중 하나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빼어나지도 싱겁지도 않은 금오도는 남도 섬의 은은한 매력을 보여준다.


도시인들이 섬을 여행할 때 ‘경관 사냥꾼’이 되기 십상이다. 기암절벽 혹은 너른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화백을 따라 섬을 서성이면 왠지 모를 ‘유배의 정서’가 느껴진다. 유배자의 심정으로 하릴없이 섬을 두리번거리는 기분이다. 섬 풍경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금오도 유송항에는 박 화백의 단 칸 셋방 작업실이 하나 더 있다. 여기서 작가는 항구에서 마주 보이는 수항도를 365일 반복해서 그린다. 작업실 벽에는 작가가 그린 수항도 그림이 어지러이 붙어있다. 어떤 날은 일어나서 씻기도 먹기도 전에 수항도부터 그린다고도 했다. 떠내려갈 일도 없고 변할 것도 없는 섬이 매일 달리 보이는 화가의 시선이 경이로웠다.


여행가의 시선을 말할 때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작가의 시선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 같은 섬을 보면서도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눈이 작가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항도 시리즈 역시 또 하나의 ‘이어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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