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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ul 31. 2022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자발적 섬 유배를 제안하다

신안섬 통영섬 여수섬 진도섬... 


코로나19로 시행하지 못한 여행 아이템 중에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자발적 섬 유배' 아이템이 있다. 이 여행은 신청 방식이 독특하다. 자신의 죄를 고해야 한다. 고한 죄를 보고 유배형에 처한 사람만 함께 떠날 수 있다. 유배를 떠나는 조선 선비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떠나고 나면 유배 또한 조금 불편한 방식의 여행이다. 그들은 유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성실하게 기록했다. 이 유배의 정한을 품은 여행을 기획해 보려고 한다. 먼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유의미한 유배의 특징을 꼽아 보았다. 



1> 안락함을 흔들다

유배의 본질은 본인이 구축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다는 것이다. 유배와 요즘 유행하는 스테이형 여행과의 가장 큰 차이라다. 스테이형 여행은 리조트 수준의 안락함을 추구하는데 유배는 그 본질이 안락함을 흔드는 것에 있으니. 현대인의 유배란 '안락한 불편'에서 '불편한 안락'으로 떠나는 일


2> 비켜서다

불편한 섬에 들어가면 복잡한 현실에서 비켜서게 된다. 뉴스를 보아도 '저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치 현실에서 비켜선 조선 선비처럼 한 발 옆으로 비켜서서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 


3> 호소하다

비켜선다고 해서 미련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유배가사 연구가인 염은열 교수는 '누군가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학'이라고 유배문학을 정의했다. 


4> 원망하다

'유배문학은 독선과 아부의 문학'이라고 평하는 고전평론가도 있다. '나를 유배 보낸 놈들은 악이고, 비록 나를 유배 보냈지만 임금을 향한 충정만은 변함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잠깐 유배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정철의 <사미인곡>을 보자.  


연지분 있다마는 누굴 위해 고이 할고 

마음의 맺힌 시를 첩첩이 쌓여 있어

짓는 것이 한숨이오, 지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은 그지없다



5> 둘러보다

호소와 원망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비로소 유배자는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일상을 둘러보게 된다고 한다. 낯선 곳의 풍속을 기록하기도 하고. 호기심 넘치는 정약전처럼 마을 청년의 생선 이야기에 빠져서 <자산어보>를 쓰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자기 회복이 되는 대상을 찾는다.     


6> 비워내다 

긴 유배의 시간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은 부질없는 것들을 떨쳐내는 특효약이다. 유배지에서 스스로 '위로안치'를 달성한다. 유배자는 지나온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서사의 시간을 갖는다. 초반에는 세상을 탓하고 정적을 원망하는데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7> 정리하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배자들은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에 차분히 나서게 된다. 보통은 책을 쓰는 일인데, 유배지에서 500여 권의 저서를 쓴 다산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유배에 공식은 없지만, 공식을 창출한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낸 유배자들이 있다. 


8> 완성하다 

많은 문학가들에게 유배는 자기완성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 유배문학의 투탑, 굴원과 소동파는 각각 <이소>와 <적벽부>를 유배지에서 완성했다. 굴원과 소동파는 유배를 가는 조선 선비의 롤모델이었다. '묻노니 이룬 것이 무엇인가? 황주, 혜주, 담주에 있도다', 소동파는 세 곳의 유배지에서 보낸 13년의 세월로 자신의 인생을 이 두 문장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런 유배의 원형을 어떻게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여행으로 풀어낼까? '디지털 시서화'로 자기서사로 풀어내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직접 서예를 배우거나 수묵화를 그릴 필요 없이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암튼 '디지털 시서화'를 궁리해서 올 가을에 '자발적 섬 유배'를 구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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