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울주에서 즐기는 시간여행
밀양, 담양, 광양처럼 볕 양(陽) 자를 쓰는 고을은 공통점이 있다. 큰 읍성이 있던,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지로 대체로 풍요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담양떡갈비, 밀양돼지국밥 등 육식 문화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다. 언양 여행은 언양불고기 한 접시로 풍요의 기억을 소환하며 시작해도 좋다.
울주에서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은 바람도 쉬어간다는 영남알프스 능선의 최고 명소 간월재, 동해 최고의 해맞이공원으로 알려진 간절곶, 선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그리고 외고산옹기마을 등이 꼽힌다. 이런 명소는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여행 감독으로서 가을 울주 여행에 다른 여행법을 제안하려고 한다. 울주군 문화관광 담당자들과 답사하고, 실제 울주산악영화제 때 캠핑여행을 이끌었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울주 시간여행’이다.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의미다. 그 증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선사시대인까지 닿는다. 선사시대인의 욕망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반구대암각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울주 시간여행을 시작해서 태화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나가듯이 근대와 현대의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보면 된다.
언양불고기를 먹으며 울주의 풍요로운 시절을 기억하고 난 뒤 언양 읍성 산책을 권한다. 언양읍성이 많이 복원되어 운치를 더하고 있는데 이곳에 성곽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공양왕(1345-1394)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무 말목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고 너비도 넓고 치성과 해자 등도 있어 조선시대 성벽 축조 과학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후반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신자들이 몰렸던 울주는 국내 천주교 성지 중 한 곳이다. 1927년 완공된 언양성당은 드물게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으로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이런 격조 있는 모습과 다르게 천주교가 가진 고난의 역사를 대변한다. 순교자 오상선 등 울주의 천주교 박해 역사를 기리는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다.
언양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오영수문학관은 근대에서 현대로 울주의 시간을 이어주는 곳이다. 그의 대표작 <갯마을>은 인간의 순수함을 뺏어간 현대 물질문명과 이념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언양불고기도 좋지만 언양알프스시장에서 곰탕 한 그릇 마시고, 복순도가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 시절의 신산한 삶을 재현해도 좋을 것이다.
가을 울주여행법으로 제안하는 방식 중 하나는 경북 문경시와 ‘배틀 트립’을 해보라는 것이다. 여행감독으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하면서도 비교되는 곳이 있는데 울주와 문경이 그렇다. 술맛과 음식 맛을 가장 잘 파악하는 방식 중 하나가 비교 시음 혹은 비교 시식인데 두 곳을 비교하면서 여행하면 지역의 특성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울주에 복순도가가 있다면 문경에는 문경주조와 두술도가라는 좋은 술도가가 있다. 이를 담아 마실 막사발이 문경은 유명한데 울주에는 외고산 옹기가 있다. 울주에 트레비어라는 전국구 수제맥주가 있다면 문경에는 가나다라브루어리라는 요즘 MZ세대가 좋아하는 수제맥주가 있다. 울주의 언양불고기에 맞설 문경의 대표 음식은 약돌한우를 꼽을 수 있다.
두 지역은 자연환경의 결도 비슷하다. 백두대간을 영남대로가 가로지르는 문경은 산악지형이 웅장한 편인데 영남알프스가 있는 울주도 이에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국토의 단전 위치에 있는 문경이 여러 레포츠의 성지로 꼽히고 있는데 울주산악영화제로 산악인들의 최대 잔치가 열리는 울주 역시 마찬가지다. 산과 계곡을 찾는 사람들에게 두 곳 모두 사랑받는다.
또 다른 여행법은 간절곶 해맞이공원에서 간월재까지 해발 고도를 높여가며 여행하는 방법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폭풍에 남편을 잃는 아픔을 받아들이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갯마을>의 주인공 해순의 시선에서 간월재에 서서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꿈꾸는 산악인의 시선까지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울주다.
마지막으로, 외고산옹기마을에서 시간을 담아낼 작은 옹기 하나 찾아낸다면 울주 여행은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다. 옹기는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지녔다. 충청도 북쪽은 옹기가 뚜껑이 납작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옹기는 뚜껑이 작고, 옹기가 깊다. 전라도 옹기는 어깨가 높고 경상도 옹기는 어깨가 낮다는 작은 차이를 알 수 있다.
‘커도 커 보여서는 안 되고 작아도 작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옹기만의 도가 있다. 다양한 여행법으로 울주를 누빈 뒤, 마지막으로 옹기를 살피며 옹기의 도를 이해한다면 울주 가을 여행은 더욱 뜻깊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