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의 몽골 생태기행을 이끌어주기로 한 몽골인 쏨야의 호언장담이다. 쏨야와는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일행 중 한 명인 김관석 충북대 축산학과 교수의 제자다. 김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쏨야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8년 전 한국에 유학 와서 졸업하고 몽골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배운 축산기술을 바탕으로 목장을 운영하던 쏨야는 진짜 몽골을 보여주는 여행을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쏨야의 페이스북 계정을 둘러보고 몽골 생태기행을 그에게 의뢰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 주목했던 것은 그의 생태적인 문제의식이 아니라 뒷배경이었다. 일단 김 교수와의 돈독한 관계가 있으니 우리를 환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한국에 유학 올 정도의 재력이 있는 집안의 목장이니 방문하면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쏨야가 럭셔리 게르 사진을 두루 올린 것을 보고 몽골 하이엔드 여행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제대로 된 현지 여행사를 구하기 힘들다. 다른 일을 하면서 여행사를 겸업하는 경우도 많다. '곳간에서 스타일 난다'는 말이 있다. 현지 파트너가 여유가 있는 사람일 때 여행 기획에는 유리한 측면이 많다. 경험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구소련 승합차 푸르공 2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인원(12명)으로 탐험대를 구성하기로 하고 쏨야에게 몽골 생태기행 기획을 부탁했다.
기획과 관련해 쏨야에게 4가지 정도의 디렉션을 주었다. 하나, 당신 가족의 목장을 충분히 만끽했으면 한다. 둘, 노천온천이나 사막을 경험해 보고 싶다. 셋, 몽골올레 2코스와 3코스를 걸으며 강이 흐르는 숲 사이를 걸었으면 한다. 그리고 허르헉 등 몽골 전통음식을 두루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 유라시아 8경 유람의 시작, 몽골초원 기행
8월24일 몽골행 대한항공 비행편에 올랐다. ‘비행기 탈 때 신발을 벗고 탔었나, 신고 탔었나’ 헷갈릴 정도로 오래간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헤아려보니 코로나19 유행 시작 무렵 쿠바 기행을 다녀온 후 900일 만이었다. ‘어른의 여행클럽, 트래블러스랩’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지 1000일 정도 된 시점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어른의 여행’은 관계를 통해서 만들고 관계를 맺어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애 전환 여행’이 ‘바쁜 현대 도시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생의 중간 정산’이 되고 ‘인간관계의 중간 급유’가 되는 여행을 기획하고자 했는데 쏨야와 함께 하는 몽골 생태기행은 이를 만족하는 여행이었다. 몽골원정대의 답사는 일부러 몽골올레 축제 기간에 맞췄다. 몽골올레는 제주올레 브랜드를 몽골에서 도입한 것으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는 시사저널 때부터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몽골 생태기행은 트래블러스랩에서 기획한 ‘유라시아 8경’ 답사 중 하나였다. 유라시아 8경으로 꼽은 곳은 캄차카 반도(러시아), 아무르강(러시아) 몽골초원(몽골) 바이칼호(러시아) 알타이산맥(몽골) 천산산맥(카자흐스탄) 파미르고원(타지키스탄) 코카서스산맥(조지아) 등이다. 8월 몽골초원 기행에 이어 10월에 코카서스와 천산산맥을 답사한다.
유라시아 8경의 첫 시작을 알리는 몽골 생태기행, 쏨야가 보내온 일정표는 ‘몽골 농활’ 일정표를 방불케 했다. 소 젖짜기와 송아지 물가에 데려가서 물 먹이기, 소똥 치우기와 마른 소똥 줍기 그리고 주운 소똥으로 캠프파이어 불붙이기. 말몰이와 말타기 그리고 말 잡아채기 등 목장의 루틴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도록 이끌었다. 여행은 우리를 다시 소년과 소녀 시절로 되돌려 주곤 하는데 쏨야네 목장체험이 그랬다.
쏨야네 목장은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남동쪽으로 세 시간 정도 차로 가는 곳에 있었다. 전형적인 남몽골의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낮은 구릉 사이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고 그 사이에 마치 점처럼 하얀 게르가 박혀 있었다. 하늘과 들과 간혹 보이는 게르 외에는 양과 소와 말 등 가축뿐이었다. 평온했다.
# 끝없이 펼쳐진 남몽골 초원의 매력
몽골은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그 아래 남몽골과 그 위 북몽골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지역은 확연하게 달랐다. 기후와 지형이 다르고 이에 따라 생활하는 모습도 크게 차이가 났다. 산악지형인 북몽골은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도 비옥하다. 그래서 몽골의 농업은 주로 북몽궐에서 이뤄진다. 평지지형인 남몽골은 상대적으로 기후가 거칠고 토양이 척박해서 유목 위주다.
쏨야네 목장이 있는 남몽골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 북몽골에 올라오면서 눈에 띈 것은 담장과 울타리였다. 북몽골은 집에 담장을 두르고 목장에 울타리를 친다. 즉 경계를 둔다. 남몽골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남몽골은 게르 주변에 담장도 없고 목장에 울타리도 없다. 경계가 필요 없을 만큼 이웃과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이 몰리는 북몽골엔 경계가 선명했다.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테를지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북몽골을 여행한다. 몽골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테를지국립공원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콘도 & 펜션 리조트 지역을 방불케 할 만큼 난개발 되고 있었다. 타운하우스처럼 열 지어 지어진 게르들은 밤이 되어도 조명을 끄지 않았다. 보통 몽골은 별을 보러 간다고 하는데 테를지에서는 광해로 별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남몽골은 척박했다.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구소련 시절 24km마다 역참(기차역)을 두었던 것처럼 24km마다 구멍가게를 하나씩 두었다. 여기서 생필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소도시에 마트가 있어서 필요한 장은 거기서 보았다. 식당도 거의 없어서 저녁 한 끼를 사 먹기 위해 80km를 달려가기도 했다. 쏨야가 집 근처의 명소라고 데려간 우물도 100km 가까이 달려가서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몽골인들은 우리와 거리감이 달랐다.
척박하지만 여기가 진짜 몽골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상상 속의 몽골이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이나 산 없이 보이는 것은 땅과 하늘뿐인 남몽골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초원 한가운데 서면 그냥 ‘천지인’이 완성되었다. 단지 대자연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가 대자연에 방점을 찍는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쏨야네 목장에서도 100km 정도를 더 남쪽으로 가서 쏨야가 완벽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평원을 만날 수 있었다. ‘몽골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풍광이 이거였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다가가면 다가간 만큼 멀어지고, 돌아서면 내가 돌아간만큼 또 따라오는, 지평선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육지에서 바다의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망망대해가 아니라 망망초원에서 느끼는 아득함이 좋았다.
원래 석양마니아인데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 석양을 가르며 트럭이 천천히 지평선을 달렸다. ‘다시 몽골을 찾는다면 이걸 보기 위해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설레는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을 진행한 솜야는 기획력이 있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갓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여행기획자의 제1원칙에 충실했다. 그 덕에 우리는 ‘인생 풍경’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