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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Mar 23. 2023

몽골 게르의 마유주 익는 소리

몽골초원 은하수기행 제2편


# 관광 게르가 아닌 레알 게르 체험 


몽골의 전통은 손님이 오면 게르를 내준다는 것이다. 쏨야도 자신의 신혼 게르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몽골인이 생활하는 게르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짜 게르를 이용해 보니  몽골에 자기 텐트를 들고 캠핑을 간다는 것은 ‘잔칫집에 도시락 싸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저 자리에, 왜 저렇게 게르를 설치했을까, 그것을 알아보는 일도 재미난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게르는 남향으로 설치한다. 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문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게 낸다. 문을 통해 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송아지 축사나 말 축사가 있다. 게르에서 가까운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 가축들이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풀어 두어도 멀리 가지 않는 이유다). 겨울을 나는 게르는 언덕 사이의 바람을 피하는 곳에 설치한다. 



게르는 몽골의 척박한 기후에 최적화되어 있다. 몽골초원은 우리보다 일교차가 크다. 하루에 여름과 겨울을 다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에도 새벽에는 제법 추운데 게르에서는 중앙의 난로에 불을 피울 수 있다. 그때 느끼는 푸근함은 남다르다. 건조할 것 같은데 여름에는 생각보다 몽골에 비가 자주 온다.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 아침에 비가 오면 텐트를 철수할 때 난감하다. 안전 이슈도 있다. 몽골초원은 낙뢰가 제법 자주 발생한다. 몽골 트레킹 때 가장 큰 리스트가 바로 이 낙뢰다. 텐트는 낙뢰를 피하기에는 너무나 허약하다. 


테를지에 설치된 관광 게르가 아닌 실제 몽골인들이 생활하는 게르를 활용하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양을 골라서 엄숙하게 잡고 해체해서 허르헉과 내장 순대를 비롯해 몽골 전통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전부 볼 수 있다. 게르 안의 덥힌 공기를 활용해 마유주를 발효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수시로 저어주면서 술이 익어가는 향을 즐겼다. 게르는 침실이면서 거실이면서 또한 부엌이 되어서 일행과 오붓하게 수다를 나눌 시간이 많아서도 좋았다. 



# 몽골 게르에서의 루틴 


보통 섬에 사람들을 데려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몽골 초원도 그랬다. 그런 무료함 속에서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시간마다 챙겨야 할 빛의 감동이 있었다. 새벽에는 뒷산에 비친 반사광을 즐겼다. 쏨야는 일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언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올라와서 일출을 보던 곳이라고 했다. 


언덕 위에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산의 높이를 더해주기 위해 돌을 쌓아주는 것이 몽골인들의 풍습이라고 했다. 돌무더기 옆으로는 풍화작용으로 하얗게 변한 말의 머리뼈가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런 곳에 둔다고 했다. 돌무더기에 돌을 몇 개 던져 올리고 몽골인들처럼 세 바퀴를 돌며 소원을 빌면서 일출을 기다렸다. 곧 장엄한 일출이 우리를 휘감았다.   



게르의 일상은 분주했다. 그 일상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숨결을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목동과 함께 송아지들을 연못에 데려가 물을 먹이고 말몰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말을 타고 했던 일을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하고 있었다. 석양에는 송아지들을 어미소 곁으로 데려가 젖을 먹였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젖을 빤 다음 소젖을 짜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일행은 소똥을 치우고 또 마른 소똥을 주워 모았다.   


주워 모은 마른 소똥으로 밤에 캠프파이어를 했다. 소똥은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지 않고 숯처럼 은근하게 타면서 온기를 선물했다. 소똥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은하수를 즐겼다. 은하수가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몽골은 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니라 은하수를 보기 위해 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던 쏨야 어머니가 자청하고 몽골 전통음악 몇 곡을 불러주었다. 


쏨야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몽골 등 중앙아시아 음식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느끼할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털과 가죽은 따로 말리고 고기는 허르헉을 만들고 내장은 순대를 만들고 머리는 통째로 삶아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남은 내장순대는 으깨어서 만두를 만들어 주었는데 훌륭한 점심 도시락이었다.   



쏨야네 목장에서 ‘진짜 몽골’을 경험한 일행은 ‘몽골에 마음의 고향을 하나 만들고 왔다’고 이번 여행을 평했다. 며칠 동안 샤워도 못하는 불편함의 극치인 곳이었지만, 편안함의 극치인 료칸과 비슷한 매력이 있었다. 말 그대로 ‘불편한 사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의 몽골 답사 여행 결론은 ‘다음 여행을 위해 게르 한 동을 지어둔다’는 것이었다. 참가자 중 몇 분이 돈을 모아 게르 구축 비용을 쏨야에게 전달했다. 내년 몽골 여행은 더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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