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랑탕트레킹을 다녀왔을 때, 그때 동행자가 탁재형(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PD와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 그리고 양정철 전 비서관 이었습니다. 현지 트레킹을 진행한 여행사의 한국인 대표가 고 심재철(파쌍) 형이었고 그들의 트레킹을 현지에서 리딩한 네팔인 가이드가 벅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여행으로 이어준 사이였습니다. 이들의 인연이 여행에서 이어진 구조는 이렇습니다.
1)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국회의원)이 네팔 트레킹을 가고 싶다고 양정철 전 비서관에게 부탁했습니다. 양 전 비서관은 탁현민 전 행정관에게 적당한 여행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고, 탁 행정관은 여행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탁재형 PD에게 히말라야 트레킹 기획을 부탁했습니다.
2) 그무렵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에서 제가 ‘어반 캠핑’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밤이 늦은 무렵 탁 PD가 놀러 왔습니다. 한참 술을 마시다 갑자기 탁PD가 네팔 트레킹 전문가의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추천해 주었습니다. 바로 네 옆에 그 전문가가 앉아 있다고. 마침 한국에 들어와 있던 파쌍이 어반 캠핑에 놀러 와 있어서 둘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3) 원래 문 대통령은 안나푸르나 코스의 트레킹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파쌍이 지진 피해를 입은 랑탕지역 트레킹을 해주시라고 역제안을 했습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들은 여행자들이 와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산사태가 난 마을 위에 다시 롯지를 짓고 기다리는데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다시 오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고. 문 전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했고 랑탕 코스를 걸었습니다. 그 트레킹의 현지 진행을 맡았던 이가 바로 네팔인 벅타였습니다.
4) 벅타에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선한 의지’였습니다. 한국에 ‘외노자‘로 일했던 그가 한국에서 배워간 것은 바로 시민운동이었습니다. 네팔에서는 시민운동이 명분을 이용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일 뿐인데 한국에서 ‘세상을 바꾸는 진짜 시민운동‘을 보고 네팔에서 이걸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문 전 대통령을 랑탕의 폐허 위로 안내했습니다.
5) 탁현민과 탁재형은 팟캐스트 <최고탁탁>을 할 때 제가 연결해 주었습니다. 둘 다 희귀성을 가지고 있고 나이도 같은데 서로 모르더군요. ‘너희 둘은 하는 짓이 똑같애, 잘 어울릴 거야’라며 소개해 주었는데, 정말 둘은 죽이 잘 맞았습니다. 둘이 더블MC 스타일로 <최고탁탁> 진행을 했고 저와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치고는 제법 할 말 한다 싶게, 박자를 맞춰 주었습니다.
6) 사실 양정철 전 비서관과 탁현민 전 행정관을 이어준 사람도 저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추모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최고의 연출가로 탁 전 행정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실제 콘서트는 연세대학교 학교 측에서 막아서 성공회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행사 준비를 하며 탁 전 행정관과 양 전 비서관은 친해졌습니다.
7) 랑탕 트레킹의 숨은 기획자였던 파쌍과의 인연은 여행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오지 여행가 김성선 대장이 주최한 금강트레킹 행사에 갔는데, 거기서 파쌍을 만났습니다(포카라에서 인사한 적이 있기도 했고요). 그는 무척 무던한 스타일이었는데 왠지 정이 갔습니다.
8) 2019년에 저는 파쌍 & 벅타와 함께 문재인 루트를 따라 랑탕 트레킹을 걸으며 이 길 위에 펼쳐진 인연을 복습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자원봉사를 했던 학교에 들러서 학용품과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랑탕 트레킹의 마지막 마을인 강진곰파의 롯지에 ‘문재인 루트’ 현수막을 걸고 왔습니다.
9) 안타깝게도 파쌍은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썼던 그였지만 히말라야의 신은 냉정했습니다. 긴급히 헬기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든든한 언덕이었던 그가 죽자 한동안 헛헛한 마음을 달갤 길이 없었습니다.
10) 그리고 코로나를 맞았습니다. 히말라야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이 벅타를 소환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저 멀리에서 고생하고 있는 벅타를 위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여행의 예약금을 보냈습니다. 다시 여행이 재개될 그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벅타에게 길 위의 정을 보여준 여행그룹은 저와 2017년에 코카서스기행을 다녀오면서 인연을 맺은 그룹입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함께 야쿠시마 트레킹과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도 구성했고 이후 스스로 해파랑길 걷기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돌로미테 트레킹과 알프스 5대 미봉 트레킹도 이들을 주축으로 구성했습니다.
올겨울 5년 만에 다시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려고 합니다. 가장 풍경이 좋다는 곳으로 알려진 ‘마르디히말’ 쪽으로 가서 히말라야의 정기를 다시 받아오려고 합니다. 물론 이 여행은 벅타가 이끌어줄 것입니다. 그와 함께 걸으며 새로운 인연의 끊들을 이어주려고 합니다.
여행에서 사람들은 다르게 만납니다. 그리고 깊이 만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냅니다.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인연을 얻어 갑니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을 구축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