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했던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창직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직업은 ‘여행작가’다. 여행작가와 여행감독은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작가가 시인이라면, 여행감독은 그냥 시인이 아니라 시조 시인이다.
여행작가는 여행의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여행의 불편을 자기 신이 감당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작가가 하는 여행은 자유시다. 형식을 벗어날수록 사랑받는다.
반면 여행감독은 여행의 형식에 구애를 받는다. 여행의 불편을 감당할 수를 내면서 가야 한다. 단체 숙박과 식사와 이동을, 최적의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다녀야 한다. 심지어 적절한 타이밍에 화장실 이용하는 것도. 3장 6구 45자 이내라는 형식을 따라야 하는 시조와 비슷하다.
여행감독에게 현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솔루션과 큐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선택지를 내놓아야 한다. 여행작가는 주로 큐레이션을 담당한다. 솔루션이 안내되기도 하지만 여행지 소개는 주로 큐레이션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여행지에 대한 안목을 요구받지만, 막상 가서는 해결 능력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여행작가는 여기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본인만 감당하면 되기 때문에 솔루션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룹 여행에 대해.
여행클럽을 구성해서 '수제 패키지여행'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행작가가 아니라 여행감독이 필요하다. 솔루션과 큐레이션 능력을 모두 가진 사람. 그래서 함부로 여행작가에게 여행을 맡기지 않는다.
솔루션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언어 소통능력과 운전 능력이다. (운전 능력이 없다면 최소한 거리감 방향감 시간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짐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짐이다.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여행 체력. 여행 참가자보다 먼저 지쳐서는 안 된다. 더 많이 걸을 수 있어야 하고 더 오래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비상 상황에 대비할, 준비된 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여행을 현지에서 진행할 여행감독을 선택할 때 몇 가지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도시에서 좋은 사람과 여행에서 좋은 사람은 다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여행을 책임지는 경우엔 더더욱!
여행을 다녀보니 손발이 부지런한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손발이 게을러서 꼰대가 되고 진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시 손발을 움직이기 싫어서 남이 해주길 바라는 것이 바로 꼰대고 진상.
참고로 여행 체력이 좋은 편이지만 체력을 다 소진하지 않는다. 개인여행으로 왔다면 맘껏 달리겠지만. 언제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해서 체력을 남겨 놓는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더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여행력이라는 게 별 거 없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고, 쌀 수 있을 때 싸두고, 잘 수 있을 때 자두는 것이다. 이것만 한 여행력이 없다. 가리는 음식이 많고 화장실을 맘대로 이용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곳은 여행의 장벽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사람을 가리지 않는 능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오랜 기자생활을 통해 ‘유난한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갖게 된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경험치. 여행은 철저하게 경험치의 세계. 여행지를 책으로 익힌 사람은 현장에 가면 표가 난다.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플랜 B가 약하다. 반면 경험치가 많은 사람은 다양한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지난 쿠바기행을 잘 이끌어준 김춘애 작가님을 칭찬하기 위해 한 이야기다. 좋은 여행감독의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쿠바 홀리데이>를 쓴 여행작가지만 이런 면을 두루 구비했어서 이번 쿠바여행에서 좋은 여행감독 역할을 해주었다.
김춘애 작가님이 있어서 허리케인을 맞고 1박2일 일정을 송두리째 날리고도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전이 되고 통신도 두절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아바나를 빠져나갈 버스를 구해냈다.
이런 문제해결이 가능했던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유창한 스페인어 능력. 현지인과 직접 소통하며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은 여러 해 동안 다진 현지 인맥. 문제 상황에서 김 작가님을 위해 그들이 나서 주었다. 다음은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집요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스스로 여행을 즐긴다는 것. 이것이 일로 여행을 하고 늘 같은 코스를 반복적으로 도는 일반 가이드와 차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을 즐기는 김작가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내년 2월 트래블러스랩의 쿠바여행도 김 작가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