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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04. 2021

겨울 군산 여행의 이유, 가창오리 탐조

군산은 겨울 탐조여행 1번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겨울여행은 기획하기가 쉽지 않다. 춥기 때문이다. 추우면 움츠려 들고 움츠리면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여행감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추운데도 밖에 나올만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으로는 눈만한 것이 없어서 대부분 겨울여행은 눈과 얼음을 테마로 기획하곤 한다. 겨울을 피하려 하기보다 겨울엔 차라리 ‘겨울맛’을 제대로 보는 것이 낫다. 눈꽃 트레킹이나 얼음 트레킹을 주로 기획하는 이유다.      


모든 시작은 사소하다. 지난겨울 군산 탐조 여행도 그랬다. 조수남 사진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가창오리 사진이 눈에 확 띄었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가창오리 군무 사진을 보니 ‘이것이 겨울의 맛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탐조 여행을 만들고 싶어서 바로 연락을 했다. 군산 구불길 사무국장이었던 조수남 사진가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라 흔쾌히 응해주었다.     


군산 하구언 지도를 보면 ‘금강철새조망대’가 있다. 그런데 탐조를 위한 집결지는 ‘금강철새조망대’가 아니라 금강 하구 어느 지점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원래는 조망대 앞에 철새들이 몰려왔는데 조망대가 생기고 나서 그 거대한 모습에 겁을 먹어서 그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새를 쫓아낸 조망대’라니, 말하자면 새들에게 조망대는 거대한 허수아비였던 셈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하늘이 약간 어스름해질 무렵 일군의 사진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투 준비 태세는 완벽했다. 대포처럼 생긴 고성능 렌즈를 장착한 묵직한 카메라를 튼튼한 삼각대에 장착했다. 그들이 듬직한 포병이라면 우리는 보잘것없는 소총수 같았다. 포병의 수가 수백 명으로 늘었을 무렵 드디어 가창오리 떼가 나타났다.   


    


가창오리는 기대만큼 가까이 와 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섭섭할 정도로 멀리 가지도 않았다. 강둑에는 이미 수백 명의 사진가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수백의 포식자들이 군집한 셈이니 가까이 올 리가 만무했다. 그 정도 거리에서라도 그들의 군무 관람을 허락해준 것에 감사했다. 매서운 강바람과 겨울 추위를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가창오리가 많아서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하나의 유기체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드론이 유기체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상이었다. 하늘에 거대한 아메바라도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저 가창오리들이 부딪치지 않고 저렇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이동하는 비결이 뭘까’라고 생각하면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가창오리는 서서히 상류 쪽으로 사라졌다. 강둑에서 대포알 렌즈로 풍경을 사냥했던 포병(사진가)에게 물으니 가창오리 사진 중에 선호하는 사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창오리 떼가 석양을 배경으로 나는 사진이다. 사진가들이 서 있는 곳에서 가창오리 떼가 서쪽 방향으로 날아줘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인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강물이 잔잔해서 가창오리 떼의 음영이 강에 비추는 사진이다. 이는 정말 드문 경우라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은 내 사진을 보니 초라했다. 내 눈이 본 것을 핸드폰 카메라는 재현하지 못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환상적인 군무를 보여주었던 가창오리가 아니라 핸드폰 화면에는 얼룩이 진 것 같은 형상으로 검은 점들이 지저분하게 찍혀 있었다. 부러운 마음에 가창오리를 찍지 못하고 그들을 찍는 대포알 렌즈 포병들을 찍었는데 그 사진만 그럴듯하게 나왔다.      


조수남 사진가가 그동안 찍은 가창오리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출력해서 달력을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멋진 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눌러 찍은 시간의 힘이었다. 그는 매년 겨울 가창오리를 애인처럼 끼고 산다. 앞서 대포알 포병들이 선망하는 사진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창오리를 단지 풍경으로만 탐하는 사진가는 아니었다. 가창오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가창오리가 80만 마리 정도가 왔는데 현재는 25만~30만 정도로 개체 수가 줄었다. 이상태로 간다면 다음 20년 후에는 가창오리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벼를 벤 후 짚을 곤포로 말아가니 낙곡이 줄어서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류독감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지자체들이 먹이주기를 멈춰서 먹을게 더 없어졌다. 먹이가 부족하니 가창오리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가지 않던 곳으로 가곤 한다. 겨울철에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광인데 이를 잘 보존하려는 노력이 없어서 안타깝다.”  


   


다음날은 근처 저수지로 큰고니를 보러 갔다. 큰고니 탐조 역시 정보력이 핵심이었다. 조수남 사진가가 아침부터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더니 우리가 갈 저수지를 정해주었다. 폐교된 대학 옆의 저수지였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큰고니 무리가 있었다. 인간에게는 폐교로 황폐해진 곳이지만 큰고니에게는 위협이 사라진 안전한 피신처였던 셈이다.      


조심조심 저수지를 돌며 큰고니 무리를 관찰했는데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곧추서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나 가마우지처럼 물 위를 스치듯 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서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큰고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찍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관찰할 때는 그런 무도한 사람은 없었다.      


큰고니 탐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군산 구불길 5코스(물빛 길)를 걸었다. 구불길 조성 초기 사무국장을 했던 조수남 사진가는 ‘휴식 같은 순간’을 제공할 곳으로 이곳을 추천했다. 구불길을 걸을 무렵에는 날씨도 풀려서 여행의 망중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행에는 텐션을 주는 스케줄과 이완시켜 주는 스케줄이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좋은데 가창오리 탐조에서 생긴 긴장을 이완시키기 좋은 트레킹 코스였다.   


     


올해 이 세시풍속에는 순천만 습지의 흑두루미 탐조를 포함시키려고 한다. 조수남 사진가가 말한 가창오리의 피난처 중의 한 곳이 바로 순천만이다. 순천만 습지의 터줏대감 격인 흑두루미와 가창오리 떼가 어우러져 요즘 장관을 펼치고 있다고 최덕림 선생이 기별했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꼽히는 최덕림 선생은 순천시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 순천만 습지를 되살리는 일을 맡았다. 우리가 가면 순천만 탐조 여행을 직접 안내하겠다는 그의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 자원을 개발한다면서 자꾸 무엇을 짓는데 역으로 없애는 발상을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순천만 습지를 개선할 때 3년 동안 치우기만 했다. 그랬더니 20만 명 오던 연간 관광객이 300만 명으로 늘었다. 생태관광이 별 게 아니다. 막힌 곳을 뚫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현장에서 해야 설득력이 있다. 순천만 습지를 개선할 때 해외 30곳 정도를 답사했는데 직접 가꾼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만 나중에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내가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여행감독’을 표방하면서 여행을 기획하는데 이런 탐조 여행은 어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내 안의 소년과 소녀를 이끌어내 주기 때문이다. 세상일에 싱거워질 무렵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거기에 추위를 극복하면서 ‘불편한 사치’를 맛보면 나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탐조 여행을 ‘재열투어 여행 세시풍속’의 겨울 리스트에 포함시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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