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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Nov 29. 2023

최고도 최선도 아닌, 최적을!

'어른의 여행'을 위한 기획 가이드라인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다 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다. 그러면 윤석열이다. 그를 보라 그렇게 뱉어 놓고 그렇게 퍼지니 그가 입으로 싼 똥 치우고 행동거지 뒤치다꺼리 하느라 참모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가. 그런데 뭔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린 느낌이 들고 기자 할 때 버릇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참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가기 전에,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앞단에서 해결할 것은 해결해 줘야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곤혹스럽지 않다. 여행감독은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과 기대하고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협상가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약속을 가지고 만나는 사이처럼 불행한 관계는 없다.


협상가로서 나의 전략은 '최적의 값'을 찾는 것이다. 어른의 여행에 적합한 노력은 최고를 추구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닌, 최적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 기획에서 최적이란 본인이 해결해야 할 숙제와 함께 추구할 목표를 구분하는 일이다. 본인이 해결할 일을 잘못 떠안으면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이 힘들고 함께 추구할 목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참가자가 헛걸음하게 된다.


최고는 쉽다. 여행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스펙을 높이면 된다. 비행기 비즈니스 이상에 앉히고 5성급 호텔에 재우고 파인다이닝에서 먹이면 된다(이런 걸 최고 상품이라고 내놓는 프리미엄 여행사도 있다). 여기엔 사소한 장벽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이를 위해 최고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려 사안이 아니다.


최선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건 젊었을 때나 도모할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함부로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 왜?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나서 뒤에서 최선을 다해 욕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최선을 다한 것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른의 여행'에서는 최적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정 비용, 적정 노력의 가이드라인을 긋고 이를 기획/진행자와 참가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그들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최적을 찾으려는 노력은 여행감독으로서 생존 전략이다. 맞춰주려는 노력이 아니라 맞는 사람을 찾는 노력을 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또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여행클럽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맞는 사람을 찾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떠날 사람들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함부로 그들 안의 '어른이'와 협상하면 안 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나와의 관계는 특별하니까' 나를 특별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에게나. 물론 그런 그들을 나도 특별하게 대하고 싶다. 그래야 서로에게 특별한 시간이 된다. 그러나 단체여행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차별받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제주기행을 기획했을 때 가이드라인은 3박4일, 44만원/55만원, 제주까지 비행기 타고 와서 대평리까지는 오고 가는 것은 알아서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기획자들이 기분 좋게 '소비자가 아닌 손님을' 맞아 제주여행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여행감독의 역할이었다.


3박4일 44만원/55만원이라는 얘기는 기획자 둘과 내가 받아야 할 공임(하루 최소 100만원)이 빠져있는, 일종의 '여행 재능기부'라는 얘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행사에서 기획하는 패키지여행과 헷갈리고, 그들을 가이드로 착각한다. 이 정도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고를 추구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린다. 왜? 그렇게 하면 두 번은 안 할 테니까. 


여행을 진행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이번에만 이렇게 하고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여행을 진행했을 때다. 내가 기획/진행하는 여행에서는 그런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주도하는 여행을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 철칙이다. 


이 여행이 좋은 여행이 되려면 기획/진행자를 따까리로 만들면 안 된다. 스스로 해결할 것은 해결해 준다면 기획/진행자들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 전전긍긍하지 않고 그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제주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최적의 모형을 위해 굳이 악역을 맡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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