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복덕방’을 연 이유
평교사 대상 특강보다 교장 대상 특강에서 반응이 더 뜨거웠다. 현직 교수보다는 은퇴한 교수들에게 더 인기가 좋다. 현직 단체장보다는 전직 단체장들과 더 살갑게 지낸다. 50대보다는 60대 멤버들이 더 적극적이다.
여행감독으로 나선 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세 가지 있다. 부자 연습, 백수 연습 그리고 노년 연습. 돌아보니 ‘백수 부자 노인’의 삶에 뒤처지지 않는다. 거의 비슷한데 아주 사소한 차이 하나가 있다. 벌어 놓은 게 없다는 점. 대부분 노년을 경제적으로 준비하는데…
지켜보니 대부분의 경우 노년은 도둑처럼 온다. 누가 노년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은퇴하면 바로 노인이다. 아주 명확한 구분법이다. 일상의 루틴이 사라진 사람이 노년이다. 그렇게 도둑처럼, 우울하게 다가온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하드웨어형.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모형이겠지만, 노년의 꿈을 담은 ‘꿈의 궁전’을 구축하는 것으로 준비한다.
그런데 그런 ‘꿈의 궁전’이 잘 운용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 먼저 그 공간에서 꿈같은 시간을 함께 할 주변인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적합한 사람이 드물다. 부르면 짐 되고 후회되는 사람들뿐이다.
또 하나 그 공간을 운용할 소프트웨어가 빈곤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즐기고 살아온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단 남들이 좋다는 것을 끌어다가 채운 공간이 대부분이다.
부러운 공간은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과시가 아니라,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공간. 그리고 뭔가를 창조하고 창작하는 공간. 그래야 공간이 지겹지 않다.
다시 노년 연습으로 돌아와서, 여행을 설계할 때 ‘어른의 여행’을 고민하듯 공간을 활용할 때도 ‘노년 연습’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방향을 찾았다. ‘꿈의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우리만의 공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공간은 영혼을 갈아 넣어야 비로소 꼴이 나온다. 하지만 여행감독의 마음은 한 공간에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여행을 고민할 수 없다. 그래서 공간 활용의 구조를 고민하는데 나를 갈아 넣었다.
그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지구복덕방이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후원/구독회원 멤버들 중 세컨드하우스가 있은 멤버들을 결집했다. 그리고 이 세컨드하우스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모형을 구축 중이다. 당장의 활용을 고민하지 않고 미래를 보고 구조를 만들고 있다. 남들이 ‘꿈의 공간’을 짓는 동안 여행클럽만의 에어비앤비를 구축한 셈이다.
반응이 좋다. 꿍쳐둔 공간을 슬쩍 들이민다. 지구복덕방에 판돈을 내거는 것이다. 나보고 쓰라는 공간을 같이 쓰는 구조로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다. 물론 공간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핑계로 나도 가보려고 한다. 이 공간을 두루 누빌 나의 노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