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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Feb 14. 2024

남아시아인의 '선량미'

선량함은 큰 미덕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량함은 큰 미덕이다. 특히 여행에서 만나는 선량함은 낯선 곳에서의 불안을 달래준다. 태국의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남인도의 3개 주(케랄라/타밀나두/카르나타카)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 코스까지, 올 겨울에 여행한 남인도 3부작의 매력을 한 단어로 꼽으라면 이 선량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는 어느 롯지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 주인은 조용히 볕이 좋은 곳에 의자를 놔준다. 화장실도 특별한 허락 없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호의적인 롯지가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트레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인도의 선량함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 때 발휘된다. 누군가 허락도 없이 자신을 앵글 안에 담는 것이 불쾌할 수 있는 일인데 오히려 그들은 미소로 화답한다. '인도 신기하지? 사진 찍어가고 싶어? 그럼 내가 포즈 좀 취해줄까?' 하는 태도다. 내가 폰카 욕심을 채우고 나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함께 찍기를 청하곤 한다. 덕분에 어디에서든 사람이 있는 풍경을 담아낼 수 있었다.  

 

태국의 선량함은 청년 밴택시 운전기사가 보여주었다. 가족과 함께 밴택시를 대절해 치앙마이 교외를 일주했는데 환전을 충분히 못한 상태였다(환전한 돈을 거의 사용한 상황이었다). 우리로 치면 고 이외수 선생의 화천 집필실 같은 곳이 있었는데 부인이 음식 솜씨가 좋아서 미슐랭을 받은 전통식당이었다. 첩첩산중에 있는 집이었는데 가보니 카드를 안 받는 곳이었다. 현금과 계좌이체만 가능하다는데, 당연히 계좌는 태국은행 계좌였다. 그 집만 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난감했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태국 기사가 자기가 이체해 줄 테니 내려가서 달라고 해서 겨우 해결했다.  

 

 ‘사람이 여행이다’는 관점에서 세 곳의 남아시아 여행지를 요약하는 매력 포인트는 ‘선량미’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선량함이 그 모든 불편과 불쾌와 불결을 견디게 해 주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선량함이 아직 그들에겐 깃들어 있었다.


불교와 힌두교와 티베트불교 등 종교의 영향일 수도 있고, 기후의 영향일 수도 있고,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가난은 그들을 각박으로 내몰지 못했다. 현실을 둘러보면 온통 문제 투성이인데 그들은 그 많은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웠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해소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남아시아에서 일주일 이상 보내다 보면 ‘그러려니’하고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익숙해진다. 포기한 뒤에는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으면 건져 올릴 것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차와 우마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엉킨 인도의 도로와, 먼지와 스모그와 안개가 뒤엉킨 쾌쾌한 카트만두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내려놓기다.



건져 올리는 것은 힘을 줘야 하지만, 내려놓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머리를 못 감고 샤워를 못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할 수 있는 양치질도 안 하면서,

불편함 없이 잠을 청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진짜 걱정해야 하는 문제에,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을 내려놓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암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비결이 바로 남아시아인들의 ‘선량미’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기도 하고. 가난 속에서도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에, 많이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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