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비싼 술을 사면 무조건 맛이 더 없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 비싼 술을 사는데 더 맛이 없게 느끼는 로직도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국인, 그중에서도 한국 남성, 그중에서도 한국 중년 남성, 그중에서도 술을 즐기는 한국 중년 남성에 보편적으로 해당할 수 있는 얘기다. 물론 이 로직은 일종의 술 뇌피셜일 수도 있다.
지난 사케투어에 이어 조지아 와인기행에서도 소주제 중 하나로 ‘더 비싼 술을 사는데 더 맛이 없는 이유’로 잡아보았다. 동일한 사케 양조장의 술 중에서 도정률이 높은 상위 스펙 사케가 도정률이 낮은 하위 스펙 사케보다 한국 중년 아재 (중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맛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와인 양조장의 사케 중 더 싼 대중방식(유러피안 와인)의 와인이 비싼 크베브리 방식 와인보다 맛있는 이유의 맥락을 잡아보았다. 아르메니아 브랜디(아라랏 꼬냑)에서도 그랬다. 12년산까지가 피크였고 그보다 더 숙성시킨 브랜디는 텐션이 떨어져서 비선호가 강했다.
술을 음식으로 접근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더 비싼 술을 사는데 더 맛이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게 나의 뇌피셜이다. 술 양조방식은 그 나라의 음식문화의 이데아를 따라간다. 자신들이 맛있다는 음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술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케 쌀의 도정률을 높이면 대체로 바디감은 미끈해지고 맛은 달끈해진다. 일본 음식과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 중년 아재는 바디감이 미끈한 것보다는 깔끔한 것을, 맛이 달끈한 것보다는 쌉쌀한 것을 선호한다. 동일 양조장의 스펙 낮은 사케가 한국 중년 아재 입에 더 맞는 이유다.
프랑스음식과 이탈리아음식을 비교하면 전라도음식과 경상도음식에 비교할 수 있다(이것도 엄청난 뇌피셜이지만). 양념을 잘하는 전라도음식은 더 복잡한 맛을 내지만 경상도는 원재료의 맛을 중시하고 양념은 소스에 멈춘다. 프랑스음식과 이탈리아음식의 차이도 그런 것 같다. 프랑스음식이 훨씬 장식적이어서 복잡한 맛을 내려하고 이탈리아 음식은 심플해서 식자재 맛에 충실하다. 이 차이가 프랑스와인과 이탈리아와인의 차이로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본다.
여기서 하나 더 고려할 것이 있다. 우리가 와인맛을 논할 때 빈티지와 떼루와를 감안하듯이 마시는 사람의 체질과 입맛에 맞춰 보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미식의 맹점은 닭고기 가슴살을 좋아하는 사람과 다리살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 와인과 사케를 마시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의 종특을 감안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은 프랑스인의 입맛이나 일본인의 입맛과는 다르니까.
군대 다녀온 한국의 중년 아재들은 총으로 표적을 겨냥할 때 영점을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영점을 잡지 않고 겨냥하면 그 총이 가르치는 표적과 내 눈이 겨냥하는 표적에 오차가 생긴다. 와인 맛을 평가하는 내 눈 내 코 내 혀의 편향성을 파악해야 한다. 단맛에 민감한지, 신맛에 민감한지, 쓴맛에 민감한지 등등. 이 보정값을 알아야 좋다는 와인이나 사케의 비결을 나에게 맞춰 커스터마이징해서 이해할 수 있다.
고급 프랑스 와인의 높은 가격은 중국의 고급 차 가격과 마찬가지 로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생산기술 발전이 만들어 낸 경지라기보다는 그들의 소비력 확대가 만들어낸 경지의 성격이 강하다. 10여 년 전 중국 차인들과 무이산 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100g에 천만 원 정도 호가하는 40~50년 된 무이암차 노차를 세 번 마셨다. 그런데 세 번 모두 에러난 맛이었다(라고 중국 차인들의 평은 '습을 먹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세 곳 중 두 곳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곳만 인정했다(아니 본인이 발견했다). 무이산차엽연구소 소장이었던 분이 내려주던 찻자리였다. 차 장사꾼이 아닌 그만이 오류를 인정했다.
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오류가 발생할 것이라고 많다. 더 비싼 와인으로 갈수록 에러가 날 확률이 높고 더 비싼 와인으로 갈수록 거짓이 더 많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겠지만. 와이너리 방문을 하다 오래 숙성시킨 것처럼 보이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와인병을 보고 저건 얼마나 비싸냐고 물으면 안내자가 웃으며 답한다. "저거 마시면 병원에 갈 기회를 얻게 될 거야, 네가 운이 좋으면 식초를 마실 거고"
프랑스와인과 중국차 가격이 비쌀 수 있는 이유는 특정 지역의 와인과 차에 대해서 정의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불리는 와인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불리는 차는 이래야 한다'는 정의에 합의를 이뤄냈다. 정의를 내리면 정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따라 등급을 매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와인과 중국차의 가격은 층층시하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생산자의 논리다. 그 등급이 결코 맛을 담보할 수 없다.
횡성한우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기 전에 수많은 항생제의 세례를 받듯이, 어제 방문한 조지아 와이너리 빈야드의 포도들도 수확까지 10번 정도의 화학적 과정(비료 & 농약)을 거친다고 했다. 구소련 시절 국영 와이너리로 운영될 정도로 좋은 땅에 자리 잡은 빈야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 역시 생산자와 유통자의 논리에 너무 현혹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