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연습 하는 곳으로는 여기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1박에 300만 원 이상인 마라케시 만수르호텔. 하얏트 힐튼을 여인숙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 모로코 전통 숙소인 리야드 방식으로 전 객실이 스위트룸인 럭셔리 호텔.
매년 마라케시에 올 때마다 여기 프렌치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부자연습을 한다. 되도록 좀 일찍 가서 낮잠을 잔다. 삼백만 원짜리 낮잠을. 작년엔 정원 소파에서, 올해는 수영장 옆에서, 비싼 낮잠을 즐겼다.
마라케시에는 부자연습 3종 세트가 구비되어 있다.
1) 바히야 정원 : 19세기 모로코 권력자의 후궁의 정원
2) 마조렐 정원 : 20세기 이브생로랑이 말년에 은거한 정원
3) 만수르호텔 정원 : 21세기 졸부들의 플렉스 정원
오전, 오후, 저녁에 이 세 곳을 차례로 방문하게 되는데 대체로 만수르호텔의 만족도가 제일 높다. '사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대별 답을 주는 곳이다. 현대의 졸부들이 이브생로랑이나 모로코 귀족보다 더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만수르호텔 프렌치레스토랑의 저녁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하나의 관광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호텔 입구에서 레스토랑 좌석에 앉기까지 대략 한 시간이 걸린다. 넋을 잃고 호텔을 둘러보다 보면 그렇다.
작년에는 프렌치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모로코 와인을 주문해서 마셨는데(이런 호텔에서 선택하는 현지 와인이 궁금해서), 올해는 모로코 와인이 전부 사라졌다. 물어보니 총괄 셰프 바뀌고 나서는 오직 프랑스 와인만 취급한다고. 와인 리스트가 프랑스 산지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프랑스인 줄 알았다.
현지 여행사 대표가 이 셰프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 총괄 셰프의 스펙이 엄청났다. 런던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총 3곳 있는데 그중 하나를 운영하던 Hélène Darroze. 이 셰프가 작년 하반기에 로얄만수르의 총괄 셰프로. 이 셰프는 영국에서 4개, 파리에서 2개, 총 6개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다고.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식자재를 어떻게 다루나 궁금했는데, 보이는 것보다 지닌 맛에 충실했다. 식전 빵에서 자기 스타일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고(러프하면서 디테일한…). 자신이 소스의 마법사라는 것을 여러 번 증명하고. 양파수프나 부야베스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건조하게 만들어서 국물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써빙), 농어와 열기(금풍생이 정도의 식감) 비슷한 거 주문했는데, 생태보다 반건조를 이용해서 풍미를 더 나게 하는 것 같고, 바지락은 약간 보관 불량 - 클레임 걸어도 될 정도로.
모로코는 아직 미슐랭가이드가 안 들어온 곳인데, 조만간 진출하는 것 아닌지, 그래서 이런 스타 셰프를 미리 영입한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녁식사를 음미했다. 이 셰프의 런던 레스토랑에서는 와인까지 포함하면 인당 40~50만 원 정도 든다는데, 여기에선 인당 10만 원 정도면 충분했다.
암튼 이 총괄 셰프를 영입한 만수르호텔은 마라케시 최대 야시장인 제마알피나 시장의 맞은편에 있는데, 수많은 짝퉁이 판치는 제마알피나와 극적 대비. 어디가 진짜고 어디가 가짜인지는 헷갈리지만. 제마알피나는 ‘거짓으로 가득 찬 진짜 인생’이 있는 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