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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06. 2021

북한의 바다로 가는 여행을 상상하다

여행감독의 북한여행 큐레이션 제10편

 

부산은 접경도시다. 우리의 상상력은 이 언명에서 출발한다. 남북 교류 시대에 부산은 유라시아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부산은 서울에서 출발한 길의 종착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북한으로, 중국 동북3성으로, 러시아 시베리아로, 그 넘어 유럽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연거푸 만났을 때,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그 중심에는 철도가 있었다. 열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처럼 베트남도 갈 수 있고 또 유럽으로도 갈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린다는 기대감이 ‘유라시아 상상력’으로 이어졌다. 반면 해운을 통한 ‘환동해 상상력’은 그만큼 발휘되지 않았다. 철도로 연결되는 것처럼 동해권이 크루즈로 연결될 수 있는데 말이다.     


크루즈로 연결되는 ‘환동해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 보자. 북한의 항구들이 개방되면 물류 혁명이 일어나 환동해 경제권이 살아나고 환동해 크루즈 루트가 개설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의 부산항 동해항 속초항, 북한의 원산항 김책항 청진항,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항 사할린항, 일본의 니가타항 오타루항이 유기적으로 네트워킹 된다면 발트해 경제권 이상의 환동해 경제권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환동해 경제권이 살아나면 러시아도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고 북송선이 출발하던 니가타항도 다시 옛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러시아 극동 지역과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모피 무역이 이뤄지던 원시 환동해 교역로도 복원되고 홋카이도 아이누족과 사할린 한국인 동포사회 등 마이너리티 문화도 재조명될 수 있다.     


발트해의 항구도시는 자국의 수출입 화물 위주로 처리하는 항구와 통과화물을 처리하는 항구로 구분된다. 폴란드의 그단스크, 덴마크의 코펜하겐, 스웨덴의 스톡홀름, 핀란드의 헬싱키는 전자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는 후자다. 중국 동북 3성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후자의 모형을 참고해 ‘환동해 경제권’을 구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바다를 너무 모른다. 북한에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웠던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를 비롯해 1045개 섬이 있다. 압록강·청천강·대동강· 예성강 등 큰 강 하류와 리아스식 해안의 만에 주로 분포하는데, 압록강 하구의 비단섬, 황금평, 반성열도가 대표적이다. 비단섬은 작은 섬들이 신도열도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을 섬 북쪽에 제방을 쌓아 연결해 만든 인공섬이다. 황금평도 버려진 갈대밭을 간척 사업해 만든 곳으로 북한 내 단위면적당 수확고가 가장 높은 황금 들판이 되었다.      


북한 동해안에는 서해안처럼 큰 섬은 없지만 경관이 수려한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산만 일대에 섬이 주로 분포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도 있다. 북한은 동해안에는 명승지가 몰려 있다. 관동팔경 중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가 북한 지역에 있다. 원산의 송도원과 갈마반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름난 휴양지였다.   


   


원산은 1914년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각광받았는데 명사십리에는 서양 선교사를 위한 해수욕장이, 송도원에는 일반인을 위한 해수욕장이 들어섰다. 근대문학가들도 이곳을 다녀간 뒤 찬사를 보냈다. 소설가 현상윤은 “규모로 보나 욕객의 수로 보나 전 조선을 통하여 제일 되는 해수욕장”이라고 묘사했고, 소설가 김동인은 “물로 첨벙 뛰어들었고, 물은 소리를 치면서 환영했다. 이것은 젊음이라고 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이다. 해수욕장은 젊음의 상징이다”라고 찬양했다.     


북한은 원산에 송도원국제휴양소를 설치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받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상은 더 크다. 원산·갈마지구에 마식령스키장까지 더해서 세계적인 마이스(MICE· 부가가치가 큰 복합 전시 사업) 중심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매년 신년사를 할 때마다 삼지연 지구와 함께 이곳의 공사 진척 상황을 챙기는데 공사가 마무리 국면이다. 자료사진을 보면 김일성이 원산에 오기 위해 만들었던 원산공항과 바다 사이에 조성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아산에서 금강산 관광을 총괄했던 심상진 경기대 교수는 쿠바처럼 북한도 관광이 주력산업으로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관광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여타 산업과 비교하여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북한은 개방 후 관광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주변국과 관광산업 연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원산은 크루즈 기항지로도 각광받는다. 세계적인 크루즈 회사들이 한국을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보는 이유는 제주·부산 등 이미 검증된 기항지가 있고, 아시아 크루즈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아 이가 빠진 상황이었는데 원산항이 열리면 부산-원산-블라디보스토크- 일본으로 이어지는 크루즈 루트가 완성된다.     


과거의 바다에 대한 고찰은 이렇게 미래의 바다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선사시대 이래의 북한 바다를 보여주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일본 항로는 앞으로 북한이 개방했을 때 환동해경제권의 물류가 어떻게 이동할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고구려와 발해의 일본 항로는 니가타와 청진을 오가던 북송선 항로와도 대체로 비슷하고, 기항지는 북한이 경제특구로 설정한 나진·선봉지구와도 인접해 있다. 


    


‘겨울철 물고기잡이 전투를 힘 있게 벌이자!’ 

‘바다가(바닷가) 양식을 대대적으로 하자!’ 

‘남포 갑문 건설을 힘 있게 지원하자!’ 

‘배마다 만선기 휘날리자!’ 

‘모두 다 정어리잡이 에로’ 

‘청소년들이여! 모두 다 해양체육 에로!’      


2019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잊힌 바다, 또 하나의 바다, 북한의 바다〉전에 전시되었던 북한 포스터에 쓰인 구호다. 이런 요란한 구호 사이로 들어서면 또 다른 선전·선동의 바다가 관람객을 맞았다. 광복절 해양 기념식에서 북한 청소년들이 선상에서 매스게임을 하고 바다소년단이 해양 활동을 하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북한 어린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절도 있게 백기와 홍기를 들고 있었다.      


북한식 사회주의 프로파간다는 수산업 관련 사진에도 이어졌다. ‘맛 좋은 젓갈품을 더 많이 생산 공급하자!’는 구호 아래 젓갈을 담그고, 생선을 갈아 어묵을 만들고, 양식장에서 어패류를 걷어 올리고, 선봉수산사업소에서 어류 연구를 하는 장면을 두루 볼 수 있었다.      


해금강, 명사십리, 송도원 등 북한이 내세우는 명승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주민 사진도 있었다. 산업항으로 거듭나 대형 크레인이 열을 지어 있는 나진항과 대규모 리조트가 건설 중인 원산 해변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서 북한의 변화상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사진 속 ‘억지 행복’이 부자유스러웠다. 그 바다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 깊어졌다. 


“우리는 올해에도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대건설 사업들을 통이 크게 벌여야 합니다. 전당, 전국, 전민이 떨쳐라. 삼지연군을 산간 문화 도시의 표준,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훌륭히 변조시키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새로운 관광지구를 비롯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대상 건설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여야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다. 그는 백두산 삼지연지구와 함께 원산갈마지구의 관광 자원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제가 봉쇄된 상황에서 관광으로 외화를 획득하는 쿠바식 모형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엇보다 숙박 인프라 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저 시설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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