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트레킹 오마카세 - 나가노현편
시라카바호수는 일본에서 가장 산책하기 좋은 호수 중 하나다(호수의 절반만. 나머지 절반은 별로). 일본판 산정호수인 셈인데, 우리나라 산정호수보다 1000m 정도 더 높은 1400m 고원에 있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일본 트레킹 오마카세(나가노현편)에서 호반 트레킹을 진행하는 곳이다.
시라카바호수의 절반은 정말 환상적이다. 일부러 가꾼 것인지, 아니면 잘 보전한 것인지, 호수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매력을 다 보여준다. 들꽃부터 이끼류와 각종 수상식물에 자작나무까지, 호반 식물원이다. 가꾼 듯 안 가꾼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편리한 것이 시라카바 호수 산책로의 매력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호수 안팎에서 펼쳐지는 일본인들의 다양한 여가 풍경이다. 정말 다채롭다. 산책과 달리기는 기본이고 피크닉 낚시 카약 스케치 파크골프 등등 일본인 여가의 박람회장이다. 걷기와 달리기 위주인 우리동네 석촌호수와 대비되었다.
이제는 국민소득도 같은 35000달러 안팎인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삶의 풍경은 아직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삶이 훨씬 가파르다. 일본인 특징상 문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삶의 여유에서는 우리가 한참 뒤지는 듯 싶다.
여가에 진심인 일본인들을 보니 한국인과 일본인의 캠핑문화 차이가 새삼 떠올랐다. 한국은 어떤 캠핑장에 가느냐, 가서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서 캠핑 이야기가 끝난다. 캠핑 자체가 목적이고 먹방이 앙꼬다. 캠핑 유튜버들의 영상도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캠핑이 수단일 뿐이다. 트레킹, 조류 관찰, 낚시, 별 관찰 등 액티비티를 위한 도구다. 먹고 마시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니 단출하다. 우리는 이걸 준비하는 게 바로 캠핑 준비인데, 일본에서는 액티비티가 핵심이다.
매력적이지 않은 시라카바호수의 나머지 절반은 파크골프장을 품은 테마파크다. 전체적으로 쇠락한 이미지인데, 그 테마파크가 호수 산책로 일부를 막아서 돌아가야 한다(다음에는 이쪽 절반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라카바호수의 숙소들은 일본의 호황기(1980년대~1990년대)에 ‘와꾸’가 잡힌 것 같았다. 숙소나 식당이나 대체로 평점이 낮았다. 불황기에 리모델링을 제때 하지 못하고 낡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다음엔 여기에서 숙박하며 호수의 아침과 석양을 맞아보고 싶다.
흔히 장기 불황에 시달린 일본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잃어버린 30년’인데 일본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 30년 동안 잃어버렸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가진 게 많다는 거야?’ 그들이 호황시대에 이룩한 부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게 된다.
시라카바호수보다는 스와호가 있는데 이곳은 춘천초럼 호반 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일본알프스에 둘러싸인 곳이라 스위스나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의 호반도시 못지 않았다. 여기에 마츠모토나 다카야마와 같은 산악도시를 가지고 있다니, 정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