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니지의 시디부사이드와 이집트의 샤름엘셰이크. 키프로스(사이프러스)와 크레타 그리고 코토르와 같은 지중해 섬과 연안 휴양지들. 마지막으로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와 몰도바의 시기나우와 같은 도심 휴양지. 유럽 일정 뒤에 며칠 정도 휴양하기 좋은 ‘유럽 사람들의 동남아’들이다. 단순히 유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곳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의 피로를 여행지에서 풀고 온다’고 할 때 딱 좋은 곳들이다.
몰도바를 선택한다면, 여행의 테마는 와인과 미식이다. 먼저 와인. 와인에 대해서라면 몰도바는 조지아와 함께 '와인 강소국'으로 꼽힌다. 와인 좀 마셨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도바 푸카리 와인과 조지아 크베브리 와인을 안 마셔본 사람은 없다. 동유럽의 빈국이지만 와인에 대해서라면 입지가 확실한 나라들이다.
와인에 대해서 몰도바는 와인 종주국 조지아와 다른 매력이 있다. 와인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가진 조지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시던 와인 맛에 함몰되어 일반 소비자의 기호와는 다른 와인을 많이 만들지만 와인이 철저하게 수출품이었던 몰도바는 소비자 기호에 맞춘 와인이 많다.
미식에 대해서도 몰도바는 루마니아와 비슷한 장점이 있다. 몰도바는 예전 루마니아를 이루던 세 개의 공국(왈라키아, 트란실바니아, 몰다비아) 중 하나인 몰다비아 영토였다(구소련 시절 분리). 몰도바는 ‘동유럽과 발칸의 이탈리아’로 불리는 루마니아 음식의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는다. 수프가 짜지 않고 간이 딱 좋다.
이번 키시나우 방문 때는 처리할 일이 많아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저녁 외출을 길게 두 번 다녀왔는데 도심에 있는 ‘Black Rabbit’는 2박3일 일정 중 두 번이나 간 곳이다. 첫날 음식과 와인 초이스가 안 좋았던 것 같아 다음날 푸카리 와인과 & 안심스테이크로 재도전해보았는데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4~5만 원에 이 둘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몰도바 와인을 세계에 알린 푸카리 와이너리는 키시나우에서 100km 남짓이다. 내키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다녀올 수 있는 위치다. 와인호텔도 겸한 곳이라 1박2일 다녀오면 딱 좋을 곳이다. 마트에 가보니 몰도바 와인을 세상에 알린 푸카리보다 비싼 고급 와인들도 많아서 탐구정신을 자극했다. 암튼 괜찮은 ‘유럽 사람들의 동남아’ 중 한 곳을 발견했다.
몰도바 와인 vs 조지아 와인 :
몰도바 와인은 조지아 와인과 비교되는 부분이 훨씬 입에 잘 맞는다. 내 생각엔 조지아 와인은 자신들이 수천 년 동안 마시던 방식(크베브리)을 고수해서 그런 것 같고, 몰도바 와인은 처음부터 수출품으로 발전한 와인이라 외국 소비자 입맛에 맞춰서 그런 것 같다. 조지아 농가 다니면서 내추럴 와인 = 맛없는 와인이라는 선입견이 굳어졌는데, 몰도바 와인 마셔보니 와인은 역시 장치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카리 와이너리는 제법 규모가 있었다. 지난번 조지아 와인기행 때 보니 새롭게 부상하는 와이너리는 서유럽 방식으로 양조하면서 장치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었다.
몰도바의 와인매장에서 발견한 푸카리의 스페셜 에디션 ‘Freedom Blend’를 보고 울컥했다.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의 대표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 과거에 러시아에 얻어맞은 나라(조지아, 2018), 지금 러시아에 얻어맞고 있는 나라(우크라이나, 2022), 앞으로 러시아에 얻어맞을 지도 모르는 나라(몰도바, ????)의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 세 나라의 국기를 선 몇 개로 표시해 놓았다. 푸카리 와이너리에서 만들었다. 라벨 디자인은 우크라이나의 국기, 하트, 비둘기를 형상화 했는데, ’Peace Blend’가 아니라 ‘Freedom Blend’다. '러시아의 압제'를 상정하고 있는 셈.
몰도바 와인의 정치성 :
보르도를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키워낸 곳이 영국 황실인데 그 영국 황실이 가장 선호하는 와인 중 하나가 몰도바 푸카리 와인이고, 특히 빅토리아여왕이나 엘리자베스여왕이 좋아했다고 해서 검증되었다고 생각했고(다이애나비 결혼식 때도 만찬주로 쓰였다고), 러시아 황제 차르들도 좋아해서 몰도바 와인은 영국 과 러시아 황실의 더블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막기 위해 영국이 전략적으로 이 와인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바로 아래가 푸카리 지역이고 크림반도에서 해안선 따라 내려오면 만나는 곳. 몰도바는 옛 루마니아 3국, 왈라키아/트란실바니아/몰다비아 중 몰다비아의 일부고 루마니아어를 쓰는 루마니아 별책부록인 나라. 영국 찰스왕의 외할머니라 루마니아공주였는데, 이 혼인도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혼인이 아니었나 싶고.
몰도바 스탑오버 투어 :
몰도바는 항공편이 안습이다. 수도 키시나우 공항은 세계 수도 공항 중 가장 비행기가 적었다. 우리가 흔히 '국적기'라 부라는 FSC(full service carrier)는 터키항공과 오스트리아 항공뿐이었고 대부분 유럽의 저가 항공 비행기였다. 항공편이 하루에 한 편 이상 연결된 도시는 이스탄불, 부쿠레슈티(루마니아), 런던, 바르샤바, 비엔나 정도다. 특기할 만한 것은 터키의 최고 휴양도시 안탈리아가 하루 한 번 이상 연결 편이 있다는 것. '시기나우 - 안탈리아'를 연결하면 괜찮은 여행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