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10. 2021

예술가들이 반한 섬, 굴업도

이 아름다운 섬에 풍력발전소라니 난 반댈세


8년 전 굴업도에 예술가들과 함께 간 적이 있다. 희귀 지형과 천연기념물의 보고인 굴업도가 개발 바람에 휩싸였는데 CJ그룹 계열사가 섬을 사들여 골프장과 대형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들이 재벌의 섬 독점을 막기 위해 예술 행동에 나섰고 취재를 위해 굴업도 여행에 동행했다.      


그때 문제가 된 CJ그룹 계열사가 씨앤아이레저산업인데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굴업도에 1조 원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 단지를 건설하겠다고 해서 이슈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CJ그룹 3세 승계와 관련해 일감 몰아주기 비판을 받고 있는 기업이기도 한데 이 해상 풍력발전 사업이 온전히 진행될지 의문이다. 예술가들과 굴업도에 갔을 때 함께 굴업도를 예술섬으로 만들자는 결의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불린다. 바다에 면한 드넓은 초지는 모든 백패커들의 꿈이다. 더군다나 그 초지가 기암절벽 위에 조성되어 있다. 수평선까지 눈에 걸리는 것이 없다. 배를 타고 한 번에 갈 수도 없어서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패커들이 굴업도를 찾는 이유다. 사람들이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꼽으라면 나는 굴업도를 꼽는다.  


   


백패킹의 성지가 아니더라도 굴업도는 매덩(매력덩어리) 섬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서인수 씨와 최인숙 씨 부부가 운영하는 굴업도민박의 음식 맛이다.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을 낸 아귀탕과 꽃게탕도 맛있었다. 직접 거둔 해물과 직접 기른 채소로 꾸민 밥상이 풍성하게 손님을 맞았다. 상을 차릴 때마다 밑반찬이 바뀔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밤참으로 내놓는 우럭구이는 ‘술 도둑’이었다. 술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반건조가 아닌 그런 급랭 우럭을 찾아보았지만 찾기 어려웠다.      


다른 민박집들은 보통 5~10월 성수기에만 운영하고 겨울 비수기에는 큰 섬으로 빠져나가지만 서 씨 부부는 겨울에도 민박집을 지킨다. 단골손님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집을 비우면 기업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부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년 전 민박집을 지을 때 땅 주인에게 땅을 나중에 사는 조건으로 지었는데, 땅 주인은 그들이 아닌 기업에 땅을 팔아버렸다.     


CJ그룹의 부동산 개발 계열사인 씨앤아이레저산업은 굴업도 땅의 98.5% 이상을 사들여 이 섬에 골프장과 대형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마을 이장이었던 서 씨는 이 개발 계획을 맨 앞에서 막다가 이장직에서도 밀려나는 등 마음고생을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제주 강정마을이 분열되었듯이 굴업도의 주민들도 나뉘었다.      


인천에서 서남방으로 70㎞ 떨어진 면적 1.7㎢(52만 평)의 작은 섬 굴업도는 섬의 다섯 귀퉁이가 들쭉날쭉 삐져나와 마치 도마뱀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굴업도는 지난 100년 동안 큰 시련을 두 번 겪었다. 서해안 민어 어장의 중심지 중 하나로 민어 파시가 열렸던 굴업도는 이름난 어항이었다. 그런데 1923년 여름, 큰 해일이 일어 어선 200여 척이 파손되고 사상자 1000여 명이 발생하는 피해를 당했다. 이후 민어 어획량도 줄면서 굴업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바다에서 나온 굴업도 주민들은 땅콩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었다. 초지가 많아 땅콩 농사에 유리했고 해풍에 알이 굵어져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땅콩 수매가가 떨어지자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서 섬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 1994년 정부가 굴업도에 핵 폐기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 수가 적어서 반대 목소리가 작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굴업도에 지진대가 지난다는 사실이 밝혀져 무산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지금 굴업도에 ‘개발’이라는 이름의 해일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다. 


    


굴업도를 답사하고 든 생각은 재벌의 굴업도 개발은 섬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굴업도를 재벌이 독점 개발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설악산이나 한라산을 독점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굴업도는 특이 지형과 천연기념물의 보고다. 재벌의 굴업도 독점을 방관하는 것은 후손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태안반도 신두리해수욕장 등 불과 몇 곳에서만 형성된 해안사구가 굴업도에 있다. 바닷가 모래가 날아와 만든 사구 지형은 일종의 사막 지형으로 통보리사초, 갯메꽃 등 희귀 동식물이 많이 자란다. 그리고 동섬과 서섬 사이의 목기미 해변에는 500m 정도의 연육사빈이 형성되어 있다. 여수 사도에서도 관찰되는 연육사빈은 사리(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때)에는 물에 잠기지만 보통 때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굴업도는 드물게 화산과 지진 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으로 화산암괴가 두루 형성되어 있다.     


굴업도는 국내 최대의 이팝나무 자연군락지이기도 하다. 자생지가 적은 산가막살나무, 백선 대군락도 있다.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동시에 나타나는 곳으로 식생이 독특해 (사)생명의숲과 산림청이 ‘2009년 아름다운 숲’ 대상으로 선정한 곳이고, 같은 해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지정한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에서 환경부장관상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희귀 취약종인 금방망이와 갯방풍을 비롯해 다양한 희귀 식물이 자란다.    


 


굴업도는 ‘철새들의 정거장’으로 불린다. 굴업도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된 비결은 철새들의 먹이인 곤충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곤충이 많은 것은 굴업도에 초지가 많아서이다. 도마뱀 모양의 섬 목덜미 부분에 제주 민오름과 비슷한 형태의 넓은 초지 언덕이 형성되어 있다. 이 초지가 굴업도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굴업도의 초지에는 성인의 검지만 한 메뚜기 등 다양한 곤충이 서식한다. 멸종 위기동물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의 국내 최대 군락이 있고, 멸종위기 동물인 먹구렁이, 애기뿔소똥구리가 산다. 새가 많으니 새를 잡아먹고사는 천연기념물인 매도 서식한다. 부속섬인 토끼섬은 이름난 매 서식지이다. 이것이 굴업도를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번 굴업도 답사를 주도한 곤충생태 사진가 이수영 씨는 “섬 지역은 지형에 조금만 손을 대도 기후가 변하고, 기후가 변하면 식생이 변한다. 그런데 골프장 공사처럼 대규모 공사를 해서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우면 이런 특이 생태계가 다 파괴된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처럼 위기에 처한 굴업도를 구해야 한다며 그는 굴업도 생태여행안내를 도맡았다.     


이수영 씨와 같은 ‘외부 세력’이 굴업도를 찾아 보존 활동을 펼치자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섬에 철조망을 두르고 경고판을 설치했다. 사유지이므로 허락 없이 드나들지 말라는 것이다. 재벌의 섬 독점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굴업도에서 씨앤아이레저산업의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이르는 길과 두 곳의 해변뿐이다. 이 독점을 막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굴업도 답사를 갔을 때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섬에 클래식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현악 4 중주팀 ‘이상 콰르텟’이 굴업도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공연을 시작하자 피서객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북 연주가 김보성 씨, 오보에 연주가 오은정 씨, 생황 연주가 김효영 씨도 굴업도를 지키기 위해 재능을 보탰다. 심지어 가족과 피서를 왔던 장구 연주가 권슬기 씨도 ‘고양두레 12채 가락 설장구 앉은반’ 연주로 함께했다.     


〈노래하는 섬, 굴업도〉라는 이 음악회를 주관한 단체는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다. 2011년 5월 조직된 이 모임은 지난 6월에도 〈춤추는 섬, 굴업도〉 행사를 열었다. 정유라·박은성·박명숙·이선희 등 중견 무용가가 굴업도에 대한 느낌과 굴업도를 지키려는 몸짓을 무용으로 표현했다. 건축가 김원 씨가 대표를 맡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는 연출가 표재순 씨, 미술평론가 김홍남 씨, 화가 정영목 씨, 무용가 정유라 씨 등 중견 문화예술인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재벌의 전근대적 개발에 현대적인 예술 시위로 맞서는 이들은 가을에 시인들과 함께 다시 굴업도를 찾았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건축가 박민영 씨는 “골프장 건설을 고집하는 CJ그룹의 오너에게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굴업도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라고 말했다.     


굴업도 지킴이 서인수 씨는 매월 굴업도를 방문한 사람의 수를 파악해 기록한다. 굴업도를 보고 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곳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굴업도는 백문이 불여일견인 섬이다. 북서풍이 잦아들면 굴업도를 다시 찾아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3박4일 99만원짜리 국내여행에 사람들이 올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