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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12. 2021

아직도 끝나지 않은 김규리 죽이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그녀

   

배우 김규리 씨에게 또 한 번 혹독한 북서풍이 불었다. ‘TBS 백만 구독 캠페인, 

#1합시다’에 출연한 것을 두고 사전 선거 운동이라며 선관위에 고발당한 것이다. 일단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당분간 시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규리는 배현진이 아닌데 왜 이런 시비에 계속 휘말리는 것일까? 그녀의 시련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청산가리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보수 누리꾼들의 타깃이 된 그녀는 이명박근혜 시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여배우로 가장 중요한 시절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시 내가 기록했던 내용이다.           



끔찍한 살해 현장에 대한 보도를 본 사람과 사형수가 교화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잔인한 살해 현장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에 찬성하게 되고 사형수의 교화 가능성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에 회의적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접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문제를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가해자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피해자의 고통을 알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자칫 피해자에 시선이 집중되어 가해자가 흐릿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이, 그것도 문화 예술을 진흥해야 할 문화부 공무원이 문화예술인들을 감시하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진 후 블랙리스트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가해의 구조’도 선명해지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이 어떻게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정보원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수행되었는지 어둠의 경로가 드러나고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들의 ‘검은 시간(Black Time)’이 아닐까 싶다. ‘검은 시간’은 블랙리스트가 보낸 암울한 시간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했던 배우 김규리 씨가 자살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블랙아웃’ 되었던 시간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 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다. 2011년 작성된 ‘MBC 고정출연제한 심의 규정’을 보면 자사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사규를 확정하고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작가 이외수 공지영, 배우 김여진 문성근, 만화가 강풀, 방송인 노정열, 화가 임옥상, 교수 제정임 최영묵 김창남 홍성태, 언론인 홍세화와 함께 필자가 포함되었다(총 21명). 방송을 가욋일로 하는 필자에게는 이런 블랙리스트가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연예인의 경우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배우 문성근 씨가 블랙리스트로 가장 고통받았던 연예인으로 꼽은 김규리 씨는 ‘검은 시간’의 농도가 짙었다. 여배우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밝혀지자 그녀는 SNS에 “이 몇 자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렸네. 10년이란 소중한 시간이” “내가 그동안 낸 소중한 세금들이 나를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니” 등의 글로 심정을 표현했다.     


블랙리스트는 후유증을 남긴다.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국정원 댓글부대가 사라졌지만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일베 등 극우 누리꾼들의 공격이 계속된다. 심지어 요즘 나오는 김규리 씨 피해 관련 기사에도 악플이 달린다. 그렇게 되면 배우는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괜히 피해자임을 말했다가 ‘네가 못나서 배역을 못 맡은 것이지 그게 왜 블랙리스트 때문이냐’라는 비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단지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위축을 겪는다. ‘나랑 친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저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회관계도 위축된다. ‘나 때문에 작품이 피해를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물러나기도 한다. 사회참여 연예인을 ‘소셜테이너’라 불렀는데, 그들이 보낸 ‘검은 시간’을 살펴보면, 마치 전성기를 지난 뒤 쇠락해가는 모습처럼, 연예계에서 조금씩 입지를 잃어갔다.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면 그 연예인을 찾는 시민사회단체도 많아진다. 그런 곳의 요구를 다 들어주다 보면 점점 더 이미지가 고착화된다. YB밴드를 이끄는 윤도현 씨가 블랙리스트로 찍혀 있어 정상적인 연예활동이 불가능할 때 민주노총 파업출정식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무대 뒤편에는 ‘이명박 퇴진’이라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이런 사진이 매체에 노출되면 윤도현 씨는 반체제 가수로 고착화되게 된다.     


연예인의 사회 참여를 ‘잘난 척한다’고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소셜테이너들은 어설픈 경계인이 되곤 한다. 가수 이승환 씨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행사에서 해직언론인들을 위해 공연했는데, 자신이 공연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서 현장의 기자들이 전부 카메라를 내려놓은 적이 있다. 알 권리를 위해 싸우던 기자들이 알려지지 않을 권리를 위해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셈이다.     


국가정보원에서 연예인들을 정치 성향 때문에 감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만약 CIA가 할리우드 배우나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가수를 이런 식으로 감시했다면 아마 정권을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일을 버젓이 저질렀고 박근혜 정부는 감시 대상을 더욱 넓혔다.     


‘검은 시간’을 보냈던 문화예술인들은 그 시간 동안 상대적으로 위축된 활동을 했다. 간혹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한 사람도 보이지만, 그들은 사회 참여 활동을 아예 끊은 경우였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심지어 사회 참여 활동 자체도 위축된다. 그렇게 해서 리스트는 그 목적을 달성한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검은 시간’을 성숙의 시간으로 보냈지만,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함께 살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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