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1m가 왔다.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러쎌 산행을 해야 했다. 눈을 밟아 다지면서 전진해야 했는데, 힘에 겨웠다. 목표 지점에 한참 못 미치는 곳에서 벤또를 먹기로 했다. 이렇게 눈밭에서 먹는 것도 별미라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돌풍이 불어 나무에 쌓인 눈이 폭포처럼 쏟아부었다. 눈물 아니라 눈에 젖은 도시락을 먹으며 새해를 시작.
@ 2월, 남미기행에 항공편 결항
고시보다 어렵다는 볼리비아 비자를 어렵게 페루 리마에서 받았다. 그런데 후발대의 LA-리마 항공편 결항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리마 일정이 하루 있어서 전체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지만 아찔했다. 안데스 산맥을 넘을 때 콘크리트 침대에서 자는데, 냉기가 똥침처럼 내장을 찔렀다고들 추억하심.
@ 3월, 남미 귀국편 결항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해 로마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오는 항공편을 예약했었다. 귀국 다음날 일본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공항 파업이라며 항공편 스케줄이 하루 늦춰졌다. 뒤 일정을 진행할 수 없게 된 상황. 어렵게 어렵게 대체 항공편을 구해서 귀국했다.
@ 4월, 망통의 빼박 골목
남프랑스 소도시기행 중에 망토에서 어마어마하게 좁은 골목에서 앞뒤로 차에 끼였다. 전진 방향은 VAN 차량이 지날 수 없는 길이어서 몇 백 미터를 후진해야 하는 상황, 벤츠 긁는 거 아닌가 엄청 후달렸음. 다음엔 쓸데없이 고급 차종 렌트하지 않기로.
@ 5월, (뭐 없었나?)
@ 6월, 돌로미테 트레킹 중 차량 이상
3호차 차량이 이상했다. 안전을 위해서 차량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3호차 드라이버를 뒤에 남기고 시르미오네로 이동하는 일정을 진행했다. 3호차 드라이버가 차분히 차량 교체해서 본진에 합류했다. (내가 고생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숙제였음)
@ 7월, 알프스 트레킹 중 혼유
2호차가 혼유로 스위스 고속도로에 퍼졌다. 렌터카 회사의 늑장 대처로 대체 숙소를 구해서 숙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호차는 원래 예정된 숙소에서 묵었고 2호차는 고속도로 옆 호텔에서 숙박했다. 결국 우리가 직접 수리해서 끌고 왔다.
@ 8월, 뱃멀미와 산멀미(고산증)
백령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너울이 심해 심한 뱃멀미를 했다. 하필이면 배 타기 전 새벽에 숙소 유리창을 열었는데 24시간 국밥집이 보였고, 하필이면 맛집이어서 한 그릇을 다 비웠는데, 하필이면 너울 심한 날 배를 타서 제대로 뱃멀미를 했다. 그렇게 5번 정도 토하는 심한 뱃멀미를 하고 다음날 바로 일본 후지산 산행 있어서 올라갔는데 정상 부근에서 처음 제대로 고산증(원래 거의 없는데) 겪음.
@ 9월, 돌로미테 트레킹 중 문 고장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딴생각하다가, 호텔 주차장 진입로가 좁은데 굴곡져서 차를 좀 긁었다. 하필이면 뒷문의 부품이 파손되었는지 덜렁거려서 수리소를 찾았다. 겨우 찾아간 수리점에서 이탈리아 수리 장인이 단돈 10유로에 고쳐 주심.
@ 10월, 코카서스 트레킹 중 목양견에게 물릴 뻔.
트레킹 코스의 언덕 위에 양 떼 있어서 에둘러 가기로. 가이드가 코카서스 목양견은 거칠다고 해서. 그런데 언덕 아래 목동 베이스캠프가 있었는데 거기 있던 목양견들이 거칠게 짖으면서 달려들었음. 곧장 빤스런~
@ 11월, 역대 최저 참가자
아드리아해 소도시기행은 취소했어야 하는 여행이었다. 직전 취소가 많았던 여행이었다. 결국 유료 참가자는 부부 한 쌍과 여성 1명뿐. 취소하는 것이 맞는 여행이었는데 부부가 참가 의지가 강했다. 100만 원의 후원금도 보낸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답사 삼아 여행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분 부분은 가봤던 곳이지만 아드리아해 코스로 엮어서는 처음이었다.
@ 12월, 버섯 독에 배탈 제대로
중국 운남성은 버섯이 유명한 곳이다. 포르치니 버섯을 '우간균'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맛이 있다. 운남에서 사 온 우간균 버섯을 집에 있던 볶음밥에 섞어 먹었는데 심한 복통이 왔다. 아홉 번이나 쏟아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사온 것은 포르치니 버섯 중 하나인데 독성이 있는 종류라 반드시 30분 이상 익혀 먹어야 하는 버섯이라고 했다. 다행히 병원은 안 갔는데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