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다른 이름, by 김정아
죽는 날까지 신나게 살기
- 여행의 다른 이름 by 김정아
1부
폐쇄적으로 살아온 삶
오래전 대학 동창회에서 동기 한 사람이 '아침에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아침 마당을 보는 일을, 날마다 꿈꾼다'라고 말해 혼이 쏙 빠지게 바쁜 아침을 살고 있던 친구들 모두 공감하며 크게 웃었던 적이 있다. 60 무렵까지 직업인으로서 뿐 아니라 집안에서 책임져야 하는 여러 역할로 미친 듯이 바쁘게 살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디자! 거의 다 되었다! 라며 나를 다독인 세월이었다.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아침 시간이다. 완전하게 자유롭다고 느끼는 그 시간은 중독성이 강하다.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또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조건에서 자유로운 일은 완벽한 행복감까지 느끼게 해 준다. 짙은 색을 넣은 선글라스를 쓰거나 화장 끼 하나 없는 얼굴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모자를 눌러쓴다면 더 완벽하다. 아침의 햇살이 여리게 주변에 내려앉은 상쾌한 날도 좋고 우중충한 잿빛의 날씨에 비가 내리는 날도 괜찮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공간에서 한쪽 구석을 차지한 채 무념무상 보내는 시간은 행복하다는 말로는 완전하지 않다.
2부
날아보기
드디어 작은 아이가 대학을 들어갔다. 벌써 10여 년 전인데 내가 계획한 대로라면 나는 이제 훨훨 날아야 했다. 그러나 삶이 그리 녹녹하더냐 크게 저질러 놓았던 내 사업이 몇 년째 정체되더니 더 이상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일터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시 모든 것을 추슬러야 했고 현실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또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날 수 없으면 살살 걷거나 기어라도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니게 된 것이 대만이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다니다가 가족여행으로도 다녔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혼자 집을 나서게 되는 데 성공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주는 재미는 불안과 흥분 그 어디쯤인데 초창기에는 도착지 공항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진을 찍곤 했었다.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머무는 날짜도 살금살금 늘려나갔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만은 족히 15번 넘게 갔을 듯하다. 그러다가 이게 웬 하늘에서 뚝 떨어진 로또더냐! 남편이 하노이로 발령이 났던 것. 현모양처 포지션으로 베트남을 오고 갔다. 처음에는 하노이를 베이스로 하루 코스를 다니다가 다음에는 일박해 보기, 그러다가 멀어서 어쩔 수가 없네 라는 변명을 하며 하노이 북부를 원 없이 걸어 다녔다. 이 무렵의 여행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갈증을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낯선 곳에서 홀로 서기의 예행연습이 되어 주었다.
3부
나에게 여행이란
어릴 때 나는 상상력이 꽤 좋은 당돌한 아이였다. 호기심이 많고 좋아하는 일이 분명했다. 목표 세우기를 좋아하고 그 목표가 간절하다면 거기까지 가는 길을 즐길 수 있게 훈련되었다. 당시 상상했던 일중 나를 사로잡았던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스파이가 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나게 모험을 떠나는 일이었다.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접기는 했지만 군인이 되거나 국정원에 들어가는 일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시기도 있었다. 모험을 떠나는 일은 아직도 최고로 신나고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일인데 이런 신남이 없이는 세상이 너무나 지루할 것 같다.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때론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길을 잃기도 한다. AI로 동선을 계획하는 일은 예전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했던 것 하고 비슷한 일인데 그때 보다 좀 더 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그 외 디테일 한 부분에 대한 정보 찾기가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나도 계획 단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연계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많이 탐색하는 편이다. 쓸데없이 개성이 강한 편이라 남들이 좋다는 곳이 첫눈에 매력적인 경우는 드물다. 나한테 여행은 모험이면서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완성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각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만나야 하는 골치 아픈 작업이기도 하다. 도시에서는 현지인들처럼 노면전차와 버스를 타고 다니고 그들이 오래전부터 먹어온 소박한 음식을 먹고 싶다. 자연 속에서는 그들의 방식대로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미천한 존재이며 결국에는 그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곳에 머무는 시간 내내 알아가고 싶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진 생명체를 사랑한다. 그러다 보니 새로 만들어진 것들에서 큰 감흥은 없다. 파괴된 상태 거나 관리가 허술해서 무엇을 봐야 될지 모르는 유적지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는다. 매일 같이 뜨고 지는 해지만 낯선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은 울컥함이 매번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출 일몰 성애자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는. 현지인들을 만나는 일이 참 좋다. 홀로 여행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데 혼자 다닐 때 경험하는 일은 팀으로 다닐 때 하고는 아주 많이 다르다. 심지어 둘 만 다녀도 사람들의 시선은 다르다. 티 나게 여행객인 사람이 낡은 시골 버스에 오르면 행여나 부담을 줄 까봐 조심하면서도 모두가 힐끔거리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두리번 거리거나 누군가 한 테 말을 걸었다 하면 버스 안은 온통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여행객을 돌봐 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험이다.
4부
앞으로의 계획
1. 여행과 여행을 잇거나 여행 사이에 여행을 끼워 넣기.
10시간 이상의 비행이 필요한 곳은 오래 머물수록 남는 일인 것 같다. 한 도시만 혹은 한 나라만 한 달 이상 여행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으니 최대한 양보해서 나만의 여행을 꾸릴 계획을 세운다. 지난여름 고재열 감독님과 같이 했던 노르웨이 로포텐 트레킹 여행이 그러했는데 로포텐에 가기 위해 오슬로로 가야 했다. 오슬로 역시 직항이 없어 고민하다 선택한 곳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기서 5박을 하고 오슬로로 가서 다시 로포텐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야 했다. 고백 건데 이 여행을 하기 전 까지는 노르웨이, 그 먼 곳까지 왜 가는지 몰랐던 나라였다. 거기다 트레킹 여행이라니... 나의 평소 체력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계획이었는데 몇 번의 여행을 같이 했던 고감독님을 믿고 결정하게 되었다. 14일의 로포텐 여행만으로는 부족하여 노르웨이 현지 여행사인 넛셀투어를 이용해서 베르겐 까지 이동했다가 오슬로로 돌아왔다. 피오르드를 크루즈로 이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산악열차, 버스등을 바꿔 타면서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한자동맹의 도시, 베르겐으로 이동했다. 넛셀투어의 장점은 노르웨이의 거의 모든 곳을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는데 프로그램 내에서 기차와 버스등 탈것이 원활하게 연결된다. 중간중간 액티비티를 끼워 넣을 수도 있고 여려 형태의 숙소도 제공된다. 게다가 오슬로부터 베르겐까지 짐을 옮겨주는 서비스가 유료로 제공된다. 나는 3박을 계획했는데 기항지를 가능하면 작은 마을로 선택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동네 아이의 세례식에 참석했었고 누군가의 생일잔치에서 건네주는 접시를 받기도 했다. 크게 뭔가를 계획할 필요도 없고 웅장한 대자연에 나를 맡겨 놓고만 있어도 되는 정말 독특한 여행이었다. 오슬로를 떠나면서도 여행의 허기가 덜 채원진 걸까. 벨기에에서 4알 울 머물렀다가 다시 암스테르담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뿌듯하게 잘 계획된 아쉬움이 없는 여행이었다.
2. 여행메이트를 계속 고민한다.
팀으로 여행하는 일이 장단점이 있듯이 혼자 다니는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큰 단점이 숙소나 교통편에서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인데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식이 따로 또 같이 여행이다.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동선이 같을 때 여행을 공유하는 형식인데 정말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딱 한 가지 함정이라면 사람은 아무리 오랫동안 알아왔어도 여행을 해 보기 이전에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인데, 이것도 경험치가 쌓이면 해결되리라 기대해 본다.
3. 나라별 여행 방식 찾기
인프라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자유여행 하기가 힘들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기차를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무도 답을 못해준다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나라에서 도시 간 택시 운영을 막아 놓은 곳도 있다. 도시 간 이동할 수 있는 택시가 따로 있는데 가격이 욕이 나올 지경이다. 이런 나라를 여행할 때는 사전 정보를 많이 찾아봐야 한다. 또 괜찮은 숙소 잡는 일에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그 숙소에서 현지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받는 것이 좋다. 종교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도 가슴 떨리다 못해 손이 떨릴 지경인데 다른 종교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고 숙지하고 가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4. 여행의 콘셉트 잡기 혹은 여행지의 콘셉트 잡기
유명한 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여행을 해보니 내가 추구하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여행이 옳다는 생각이 더 굳어진다. 여행도 경험치가 쌓이니 그 도시를 중심으로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 여행할 수 있는지의 그림이 더 빨리 그려진다.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혹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여행이 구상되곤 한다.
5부
여행시 신경 쓰면 좋은 것들.
여행박스 만들기- 여행지의 현장감이나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다음번 여행 박스를 정리하기
욕심을 절제할 줄 알기- 위험성 계산하기. 전문가들의 조언 듣기
무조건 짐 줄이기 - 가져갈 수 있는 가방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짐 챙기기. 20 인치 가방에 20리터 용량의 배낭 정도.
에너지 분산 시키기- 자신의 몸의 소리를 계속 들으며 여행하기. 걷고 타고 보고 말하고 듣는 일 자체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임. 증상이 느껴지면 바로 동면하기
비상 약은 플러스알파의 여유가 되게 챙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