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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선을 넘나들던 여행친구, 김명수 대장

트래블러스랩의 서해 끝단섬 트래킹을 맡고 있다

by 고재열 여행감독


엥간하네. 주최 측에서 단체버스를 제공하는데도 명수는 굳이 자기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머언먼 해남까지. 랜드로버처럼 폼나는 차도 아닌 스타렉스를. 어떻게 남이 운전해 주는 차가 아니라 자기가 운전하는 게 더 편할 수 있지?


답사 일정은 계속 포인트를 움직여야 해서 따로 차를 가지고 오면 번거롭다. 그런데 명수는 능숙한 듯 일정을 소화했다. 남도예술정원 답사가 끝나고 그 스타렉스에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서 해남의 포인트 하나를 더 찍고 목포로 넘어왔다.


명수와는 사선을 많이 넘었다.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때는 해발 3800m 강진곰파 마을에서 함께 폭설에 고립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명수는 쾌활하게 아이들과 놀아주며 희망의 눈사람을 만들었다(자고 일어나니 폭설에 눈사람이 묻혔다).



심각한 고산증으로 사선을 넘나들었던 멤버를 심폐소생술로 살린 사람도 명수였다. 손가락 열 개와 발가락 열 개를 침바늘로 전부 찔러보았는데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고 다리를 천장에 드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별동대를 이끌고 마을산책을 나갔다가 폭설에 고립되기도 했다. 쉬는 오후에 마을산책이나 가자며 명수가 사람들과 나갔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졌다. 함께 나간 네팔 산악가이드 벅타가 빙하를 보여주겠다며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가 눈에 길이 가려져 겨우 해가 져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사선을 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기도 했다. 대청도와 백령도 트레킹을 마치고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복귀하는 날 파랑이 심해 배가 운항을 하지 않았다. 모레 일본 출국, 후지산 산행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음날 배가 떴다.



하지만 운항 안 한 날 다음날은 바다가 거친 편인데 역시나 파랑이 심했다. 새벽에 먹었던 국밥이 문제였다. 제대로 게워냈다. 백령도는 쾌속선으로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인데, 파랑이 심해 한 시간 정도 더 걸렸다. 5시간 동안 5번에 걸쳐 게워냈다.


그러는 동안 옆자리 명수는 옆에서 잠만 잤다. 독,한,년!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괜히 옆에서 괜찮냐고 챙겨주면 거추장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겨우 돌아와 그다음 날 바로 후지산에 올랐다가 고산증을 영접했다.


미안한 일도 있었다. 명수를 사지에 남겨놓고 온 적도 있다. 명수는 올해 돌로미테 트레킹에 조감독으로 합류했다. 히말라야 이후 6년 만이었다. 명수는 3호차 밴을 맡았다. 그런데 일정을 2/3 정도 마칠 무렵 명수의 밴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일행을 다른 차에 나눠 태우고 명수와 밴과 캐리어만 뒤에 남겨두고 왔다. 첩첩산중이라 렌터카 회사에서 하루 뒤에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명수가 남아서 처리하고 새로운 렌터카를 빌려 남은 캐리어를 챙겨 왔다.


아웃도어 여행은 비즈니스적으로 힘들다. 내 몸으로 감당하는 여행은 지불의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편과 수고를 대신해 줬다는 생각이 안 드니. 거기다가 참가자들은 자신이 체력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면 주최자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런 힘든 영역에서 아웃도어 레퍼토리를 넓혀가는 명수가 대견했다.


역시나 명수는 올 겨울도 여전히 험하게 먹고 산다. 겨울에는 어떤 여행들을 하냐고 물으니 빙벽과 눈산행 등을 주선하며 겨울을 난다고 한다. 그래도 십 년을 버텼다. 여행업 구력으로는 나보다 업계 선배인 셈. 코로나 시기도 잘 버텼다. 앞으로 더욱 건승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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