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Apr 15. 2021

아이를 위한 여행감독 되어보기

엄마는 집에서 쉬고 아이랑 아빠가 가는 여행이 중요한 이유

     

회사 일로 바빠서 아이와 서먹한 구석이 있는 아빠라면 엄마를 두고 아이와 둘이서 해외여행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아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레고랜드, 호주 시드니 일대, 코카서스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일본 야쿠시마섬, 히말라야 랑탕지역을 아들과 함께 여행했는데 좋은 여행친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좋은 아빠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이에게 영원한 2지망이다(할머니가 있다면 3지망까지 밀린다). 둘이서 해외여행을 가면 아이가 아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유대감을 키울 수 있다. 어쩌면 아이에게는 엄마 없는 해외여행이 우주여행만큼 낯선 일일 수 있는데 이때 아빠가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줄 수 있다.      


맞벌이라 주중에 아이를 처가에 맡겼다.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루는 헌책을 모아 책이 필요한 곳에 나눠주는 소셜프로젝트,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늘 밖에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할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이 일이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했다. 하지만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둘만의 첫 여행지는 싱가포르였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나라라서 택시를 타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만 이용해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갈 때는 되도록 선진국에 가는 것이 좋다. 시스템이 받쳐주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있는 레고랜드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온다는 계획은 조금 무리수였다. 호텔을 출발해 총 3번 갈아타서 겨우 레고랜드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의 이름 모를 시골 읍내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타야 할 버스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정류장 음식점이 의뢰로 맛있어서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사건은 돌아올 때 터졌다. 분명히 막차 시간을 확인했는데 주차장에 가니 그 많은 버스가 다 사라지고 지금 막 출발하려고 하는 버스 한 대 밖에 없었다. 단체여행객을 실은 관광버스였다. 사정을 얘기하고 비용을 지불할 테니 태워달라고 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저쪽에서 택시운전사들이 마치 굶주린 아이가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독수리 떼처럼 우리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막차가 와주었고 젊은 말레이시아 커플의 도움으로 무난히 갈아타서 싱가포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호주 여행은 패키지여행이라 상대적으로 무난했다. 그래서 슬쩍 외도를 시작했다. 당시 나름 트위터 스타여서 해외 나가서도 번개를 제안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드니에서도 해보았다. 역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호텔이 시드니 중심가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택시비만 왕복 20만원 정도 나올 거리였지만 트위터 친구들이 픽업을 와서 데려가서 모임이 끝나면 데려다주었다. 물론 아이도 함께 해야 했다.  


코카서스 조지아 & 아르메니아 기행과 일본 야쿠시마섬 종주는 내가 이름을 걸고 연출한 패키지여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 그냥 따라가는 여행과는 달랐다. 다행히 다른 어른들이 아이를 챙겨주었다. 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어서 며칠 지나니 서로 친해져서 특별히 챙기지 않아도 잘 어울려 놀았다.      

호주 여행에서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가이드가 세 군데 정도 필수 쇼핑 옵션 장소로 데려갔는데, 프로폴리스 매장에 갔을 때 아이가 제품 설명을 너무나 재밌어했다. 마치 과학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예전에 친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가 쪽 식구들과 베트남 가족여행을 갔는데 필수 옵션이라며 다섯 살 아들까지 마사지를 받게 해서 무척 화가 났다고. 처가 식구들 눈치를 보느라 화를 참았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마사지’라고 답했다고.       


야쿠시마 종주는 예전에 갔을 때보다 힘에 부쳤다. 아이를 챙기기 버거웠는데 부쩍 자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옷과 침낭이 담긴 배낭을 메고도 너무나 잘 올라갔다. 다리에 힘이 붙었는지 아이는 선두그룹을 따라 걷고 나는 후미그룹을 챙기며 걷느라 떨어져 걸어야 했다. 그래도 정상 가는 길목에서 아이의 땀을 닦아주며 함께 내려 보던 야쿠시마 섬의 풍경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발걸음은 내친김에 히말라야까지 향했다. 이번 여행은 아들의 여행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 나이가 비슷했던 후배와 자주 캠핑을 가곤 했는데 친해져서 후배 아들이 같이 간다고 하자 아이가 냉큼 랑탕트레킹에 따라왔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우리의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 마지막 마을로 가는 산행 중이었다. 후미에서 사람들을 챙기며 올라가는데 등산로에 스틱이 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누가 저런 불량 스틱을 썼나’ 하고 생각했는데 스틱이 부러진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일부러 부러뜨린 것이었다. 아버지를 따라왔던 대학생이 산행에 짜증을 내며 그랬다. 그 대학생은 “나 같은 사람이 여기 누가 있나, 여기는 돈 벌로 온 사람하고 돈 쓰러 온 사람밖에 없지 않냐”라고 말을 했는데 듣고 보니 그랬다. 히말라야는 자기 의지로 와야 하는 곳이었다. 후배 아들도 고소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대학생과 아버지를 챙기려고 아이를 일행과 먼저 보내고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내 구름이 뒤덮이더니 골짜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큰일이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 돌돌 싸매고 왔던 아들은 걸으면서 몸이 덥혀지고 날이 풀리면서 옷을 하나둘 씩 벗었는데 그 옷을 내 가방에 넣었다. 그날 도착하는 랑탕마을이 고도 3870m인데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었다.      


겁이 덜컥 났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뛰기 시작했다. 해발고도 3천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뛰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앞서 걷는 일행에게 우리 아이를 좀 붙들어 달라고 소리치며 그렇게 계속 뛰어 올라갔다. 마을 언저리에서 아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기다리던 포터가 건네준 짜이를 아이와 같이 마셨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폭설로 랑탕마을에서 나흘 동안 고립되었다. 아이와 하루하루 도전 과제를 만들었다. 고립 첫째 날은 마을 산책을 나갔는데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졌다. 한 200m쯤 갔다가 무심히 눈 속의 건초를 찾는 야크 떼만 한참 바라보다 되돌아왔다. 둘째 날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셋째 날 일어나니 눈이 더 와서 그 눈사람이 파묻혀 있었다. 그래서 아예 눈집을 만들었다.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먼 훗날 아이에게 이 여행이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는 확신한다.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 우리 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 대상이 나의 아이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여행을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