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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6. 2020

여행이 '죽음을 준비하는 한 형식'인 이유

차가운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죽는 것이 오히려 객사다


코로나 시대 모두가 ‘언택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여행이라는 고전적인 ‘컨택트’의 방식에 주목한다.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자처하면서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목적도 ‘여행을 통한 네트워크 공유’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을 갈라놓을수록 외로움이 더해지고 그 반작용으로 관계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분자화 될수록 트레바리나 프립처럼 소셜 플랫폼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혼밥 혼술 등 ‘언택트’ 문화 뒤편에는 이런 도도한 ‘컨택트’의 흐름이 있다. 새로운 네트워킹 창구인 소셜미디어에서 점점 더 오프라인화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그 연결을 다들 도시에서만 하려고 한다. 같이 책을 읽거나, 같이 취미활동을 하거나 하면서. 여러 소셜 플랫폼이 도시에서 답을 찾는데 함께 도시를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소셜하다. 함께 여행을 떠나면 오히려 안 친해지기가 힘들다. 훨씬 더 솔직해진다. 도시에서 명함을 건네며 친해지는 사이, 섬에서 사연을 건네며 친해지는 사이, 어느 쪽이 더 진솔할까?      


현대인들은 도시에서 분자화 되어 있다. 그 강력한 원심력이 개인을 방에 가둔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익숙해진다(혹은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갈라놓은 도시를 떠나면 다시 그룹을 형성하려는 구심력이 작동한다. 도시를 떠나면 무장해제하고, 익숙하지 않은 비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한다. 


출발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어시장의 동태 상자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음이 있다. 그런데 여행에서 친해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바뀐다. 스르르 얼음이 녹고 말문이 트인다. 저녁이 되면 펄펄 끓는 해물탕이 되고 아침이 되면 편안한 어죽이 된다.      


사람들 사이의 공기가 바뀌는 것이 주는 감동이 크다. 전부 자기 고백적이 된다. 그리고 남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이런 여행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은 그들에게 인생 ‘중간 정산’이 되고 좋은 여행친구는 그들에게 인간관계 ‘중간 급유’가 되어준다. 숱한 여행을 통한 임상 경험이 내어준 결론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재열투어’에 오는 사람에게 공지하는 것은 세 가지다.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 ‘불편한 사치’ ‘선을 넘지 않는 배려’를 유념해 달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충족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을 되찾을 수 있다.      


여행을 연출하는 일은 설렘을 연출하는 일이다. 여행의 성패는 설렘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로 결정된다. 여행의 설렘은 어떻게 연출하는가? 설렘은 만남에 대한 기대에서 나온다. 여행 연출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문명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절묘한 만남'을 연출하는 것이다. 사람과 문명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만남에 대한 정보는 이미 많다. 그래서 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주목한다. 이 만남에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연출하는가? 여행 연출의 핵심은 끌어냄이다.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고 자기 역량을 끌어올리고 자기 지식을 발휘하게 한다. 끌어내고 끌어올리고 발휘하게 하면 절묘한 만남이 이뤄진다. 서로 솔직해지고 서로 도움이 되고 서로 나누는 여행이 가능해진다.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나는 여행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내 인생의 변곡점을 꼽아본다면?’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가고 싶은가?(혹은 두고 온 근심은 무엇인가)’ ‘내가 이 여행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가?(내 직업이 혹은 내 취미가 나에게 남겨놓은 장점은 무엇인가)’ 이 세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렇게 끌어내고 끌어올리고 발휘하게 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 그들이 또 한 명의 여행감독이 된다. 어찌 보면 포교 활동과 비슷하다. 여행감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여행을 기획해준다. 여행감독이 많아진다는 것은 여행의 결이 다양해진다는 얘기다. 좋은 여행감독의 자격이란 별 거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들이 여행감독으로 빛날 수 있도록 나는 여행 프로듀서가 되어 뒤에서 받쳐준다. 그들의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은 나중에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감독이 될 것이다.  

    


나는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플랫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반환점을 돈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번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나이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을 조율하는 것이 인생을 더 값지게 사는 길이라고 본다.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마음의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여행을 함께 하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된다. 외롭거나 지쳤거나, 대부분의 중년은 그렇다. 마냥 심심하게 지내다가 여행에 온 사람은 별로 없다. ‘마음의 병원’을 찾았어야 할 정도로 외롭거나 지친 사람들이 온다.      


여행에서 죽는 것, 우리는 그것을 객사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객사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냥 고독하게 죽는 것이 객사다. 차가운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죽는 것이 오히려 객사다. 좋은 여행친구들과 같이 여행하다가 죽는다면 마음의 마을 안에서 죽는 것이다. 호상이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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