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을 떼니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
기자직을 내려놓았다. 기자일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다른 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조금 시원섭섭 하기도 하지만 20년 동안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가능성보다 더 게을러질 가능성이 큰 것 같아 후배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내려놓기로 했다.
무거운 갑옷을 벗는 기분이었는데 갑옷을 벗으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회사가 달리 보였다. 따져보니 내 글에 대해서 가장 원고료를 많이 쳐주는 곳이 회사였다. 월급으로 생각하니 적었는데 원고료로 생각하니 많았다. 기자 갑옷을 벗고 글을 쓰면 회사에서 기사를 쓰는 만큼 써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내가 담당했던 필자들이 생각났다. 나보다 공력이 뛰어난 그들에게 그동안 턱없이 적은 원고료를 주고 글을 받아왔던 셈이다. 다른 언론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명 작가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원고료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원고를 덤으로 쓰는 사람의 글을 받아온 것인데, 그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의 생각밖에 대변하지 못한 셈이다.
보이지 않는 특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특권은 ‘질문할 권리’였다. 기자는 어떤 일의 책임자에게 접근할 특권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특권이었다. 일반 국민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려고 하면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하거나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책임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직접 물어본다.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들을 때도 특권은 똑같이 적용된다. 때로는 문제 당사자보다 기자가 앞서기도 한다. 2018년 연말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체부 고위 공무원들이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관련해 사과하는 행사를 할 때도 그랬다. 사과를 받아야 할 문화예술인보다 기자들을 앞에 앉혔고 문화예술인들이 사과의 형식과 내용과 관련해 따져 묻자 “이 자리는 기자들에게 설명할 자리니 기다려달라”라며 그들을 외면하려 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던 기자석은 특권석이었던 셈이다.
일반인들은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편하게 앉아서 받아본다. 보도자료가 이메일로 꼬박꼬박 들어온다. 보도자료 내용을 확인도 안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부지기수다. 기자간담회에 가면 ‘프레스킷’이라는 이름의 자료 종합 선물 세트를 준다.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는 건 그야말로 손 짚고 헤엄치기다. 손을 땅에 짚는 것마저 귀찮아하는 기자들도 많고.
취재원들은 켕기는 게 있을 때는 안 알려주고 안 보여주기도 한다.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따지는 것도 기자의 일이다. 그럴 때면 기자들은 ‘독자의 이름으로’ 따진다. 독자는 국민의 이름으로 확대되기 마련이어서 자신에 대한 박대는 국민에 대한 박대라고 확대 해석한다. 답을 주지 않으면 답을 줄 기회를 주었는데 답을 주지 않았다고 알리겠다며 경고한다. 그때는 그것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기자는 아무것도 스스로 이루지 않고도 ‘자격을 가진 자’가 되곤 한다. 영화 담당 기자는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것만으로 평론가처럼 영화를 평하고, 공연 담당 기자와 미술 담당 기자 역시 그렇게 공연과 그림을 평한다. 영화전문 기자나 공연전문 기자 미술전문 기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엊그제까지 다른 부서에서 일하다 오더라도 문화부만 오면 갑자기 평론가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기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착각하곤 한다. ‘스스로 이룬 자’ 옆에 서서 그들의 지위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것이다. 그들의 옆에 서기 위해 스스로 한 것도 없으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훈수를 두기도 한다. 여러 직업 중에 염치없는 것을 미덕으로 가르치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저먹던 시간과 이별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자격을 가진 자’가 되었듯이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자격 없는 자’가 된 셈이다. 기자라는 완장을 떼려고 보니 어디에 원고를 쓸 때도 나에게 자격이 있는지 묻게 된다. 그동안은 오랜 문화부 기자의 경험과 다양한 자문위원회 참가 경험으로 원고를 썼지만 이름 뒤에 붙는 ‘기자’가 부담을 덜어 주었다. 완장을 떼고 보니 나에게 필자의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럽다.
옛 동료들이 ‘기레기’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기러기처럼 떠나오니 마음이 무겁다. 기자라는 완장을 떼고 더 이상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뚜벅뚜벅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걱정도 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갑옷을 내려놓아서인지 마음은 한없이 가볍다.
당분간은 입은 닥치고 손발은 굴리면서 살아보려고 한다. 입바른 소리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참견을 해왔다. 그렇게 참견하면서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었나 생각하니 스스로 부끄럽다. 여행은 참견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의 세계다. 손발을 움직인 만큼 경험하고 경험한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깨닫는다. 완장을 떼니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