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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4. 2020

외로움이라는 도시인의 만성 질환

중년의 외로움은 청춘의 외로움보다 더 고질적이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만성질환을 하나 꼽으라면 ‘외로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이비 종교도 이 외로움을 파고들고 많은 다른 사회 병리들도 이 외로움 속에 깃든다.      


중년의 외로움은 청춘의 외로움과는 다르다. 더 고질적이다. 청춘은 아직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있지만 중년을 그렇지 않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상태라 외로움이 더 깊다. 청춘의 외로움이 물리적이라면 중년은 화학적이다. 치료가 더 어렵다.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이 외로움을 치료하는데, 치료는 안 되더라도 완화하는데, 혹은 달래는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내가 만들었던 여행 뒤에 ‘마음의 마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는 다르게 만난다”라는 확신과 “고기자 주변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라는 평가를 기반으로 여행자 플랫폼을 시작했다. 여행에서 다르게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간다면 다시 인간에 대한 호기심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할 때 ‘여행을 통한 네트워크 공유’를 내걸었는데 이 네트워크는 사회생활 네트워크와는 조금 다른 의미다. 사회생활 네트워크가 이해관계에 기반한다면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정’에 기반한다.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서는 이성과 합리가 많이 작용한다. 그래서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기 십상이다. 여행에서는 좀 더 감성과 공감이 많이 작용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얘기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게 된다.      


사회에서의 만남과 여행에서의 만남을 간단히 비교하면, 여행에서는 ‘계급장 떼고’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붙여준 계급장을 때면 다들 그냥 ‘아저씨’ ‘아줌마’ 일뿐이다. 존재감을 잃고 그렇게 묻히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도 있겠지만(그래서 ‘나 좀 알아봐 줘’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사회적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다르게 만나면 다른 얘기를 한다. 주식과 부동산 얘기는 안 한다. 직장상사 뒷담화 나누는 시간도 아깝다. 서로 재밌는 얘기를 열심히 찾는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나누는데 집중한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영양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사람도, 사회에서는 관심 없던 얘기도, 여행에서 만나면 궁금하고 재밌다.      


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즐겁다. 함께 즐거운 추억을 나눌 수 있고 즐거운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친구가 생기면 삶에 활력이 생긴다. 이런 친구가 생에 전환기에 꼭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재발견은 때로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다음은 네트워크 공유에 대한 부분이다. 공유를 할 때는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행자 플랫폼이 무작정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라면 굳이 공유할 가치가 없다.      


다행히 공유할만한 네트워크를 내가 가지고 있다(라고 확신한다). 여행친구로 소개할만한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여행으로 맺어진 인연이 많다. 그들이 사회인으로서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여행지에서는 좋은 친구였다. ‘비포 선 라이즈’에 만나기 좋은 사람은 ‘비포 선 셋’에 만나기 좋은 사람과 다르다.    

  

여행자 플랫폼에 이들을 모아둔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어디로든 가는 여행을 만들 수 있어서다. 나랑 친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최고다. 그런데 사회생활에 바빠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가슴이 떨리는 시간을 지나 다리가 떨리는 시간으로 가면 늦다.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여행 계획의 가장 큰 장벽이다. 일정을 맞추기는커녕 맞추다 서로 빈정만 상하기 쉽다. 그래서 사람에 시간을 맞추지 않고 시간에 사람을 맞추는 방식을 고안했다. 일단 좋은 여행을 만들고 거기에 오면 ‘좋은 여행친구가 될만한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여행도 즐기면서 관계도 확장할 수 있다.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니 다행히 처음 구상한 그림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확신한다). 여행자 플랫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외로울 겨를’은 없어 보인다. 조금씩 곁을 내주고도 있고.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한다며 뚜렷한 비즈니스모델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9개월 전에 나의 비즈니스모델은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들이 외롭지 않다면 나의 외로움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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